[김장&젓갈] 김장, 1년 내내 먹을 건데...내 입맛에 딱 맞게

지유리 기자 2023. 11. 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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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덕후’ 서울 남자의 김장 꿀팁
김장철이 왔다. 우리 밥상에 없어선 안될 일년치 찬거리를 장만해야 할 때지만, ‘힘들다’ ‘재료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손수 김장하려는 이가 갈수록 줄고 있다. 올해는 내 손으로 내 입맛에 꼭 맞는 김치를 담가보면 어떨까. 요즘은 주부 9단이 아니어도 맛있는 김장김치를 담글 수 있다. 또 여성만 아니라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김장김치를 담그는 남성도 적지 않다. 맛있는 김장김치를 담그려면 질 좋은 우리농산물과 깊은 맛을 지닌 젓갈은 필수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김치도 있다.
빨간 양념에 버무린 배추김치를 보고 군침 흘리지 않을 한국인이 있을까. 요즘은 갓·양파·쪽파 등 재료를 풍부하게 넣어 김치를 담그는 것이 트렌드다. 분주하게 김장하는 신인호씨의 손끝이 야무지다. 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김장날 엄마·이모·할머니 등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김치를 담그는 모습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고릿적 풍경이 됐다. 먹는 사람, 만드는 사람 따로 있나. 요샌 누구나 자기 입맛에 맞춰 김치를 담가 먹는다. 특히 젊은 남성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수년째 먹방·쿡방이 인기를 끌고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 익숙한 말이 되면서다. 갖가지 김치 재료를 포장 판매하는 ‘김장 밀키트’ 제품까지 나와 김장하기가 한결 쉬워진 덕이다.
자기 입맛에 꼭 맞는 김치를 만들겠다며 김장에 나선 신인호씨.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신인호씨(31)는 자칭 타칭 ‘김치 덕후’다. 건더기를 다 먹고 남은 김칫국물까지 버리기 아까워할 만큼 김치 사랑이 대단하다. 매년 기꺼이 김장에도 나선다. 어머니·아내의 도움도 마다하는 이유는 하나다. 자기 입맛에 꼭 맞는 김장김치를 만들겠다는 것. 신씨는 “좋아하는 재료를 맘껏 쓰고 간도 제 입맛대로 맞출 수 있다”면서 “김장은 요리 솜씨 없는 사람도 해볼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치 덕후 신씨에게 김장 팁을 배웠다.

“배추 절일 때 소금 대신 소금물을 쓰세요. 골고루 간이 뱁니다. 그것도 힘들다면 절임 배추를 쓰면 되고요. 요즘 절임 배추가 얼마나 잘 나오는데요.”

김장에서 가장 어려운 과정은 ‘배추 절이기’ 아닐까.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적당히’ 간을 맞추기가 무척 어렵다. 신씨는 배춧잎 켜켜이 소금을 뿌리는 것보다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는 것이 쉽다고 일러준다. 소금물은 물 1ℓ에 천일염 200g을 넣어 만들면 된다. 2∼3시간마다 맨 아래 있는 배추가 위로 올라오도록 뒤섞어주면 더욱 좋다. 굵은 줄기를 구부렸을 때 부러지지 않으면 배추를 잘 절인 것이다. 두번 헹구고 물기를 빼면 준비 끝. 겉잎과 속잎을 뜯어 한입에 넣어 간을 보는 것이 팁이다.

“어릴 적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배추에 간이 세면 안된다고 하셨어요. 양념에 간이 돼 있어야 한다면서요. 김치 간은 양념으로 맞추면 됩니다.”

양념은 고춧가루·액젓·새우젓·무·양파·마늘·생강을 한꺼번에 갈아 만든다. 여기에 무·쪽파·갓·미나리 등을 쫑쫑 썰어 버무리면 김칫소 완성이다. 과거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양념을 짜게, 채소는 적게 넣어 만들었는데 요즘은 취향대로 갖가지 채소를 넣는다. 김치냉장고가 좋아져 오래 두고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아서다. 신씨는 “재료가 풍성할수록 맛있는 게 사실”이라며 “채소뿐 아니라 심지어 과일로 담가도 맛있는 김치가 되는 점이 매력”이라고 귀띔했다.

김장김치의 핵심은 양념이다. 신씨는 “생강은 마늘의 6분의 1 정도 넣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강 매운맛은 오래 지나면 찝찌름해진단다. 또 하나 꿀팁은 양념을 얼마큼 만드냐는 것이다. 분량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란다. 주부 9단이라도 김장하다 보면 양념이 모자라 부랴부랴 새로 만드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면 고생스러운 것은 둘째 치고, 양념맛이 달라져서 문제다. 생각보다 넉넉히 준비해야 일정한 양념맛을 낼 수 있다. 양념이 남으면 무·쪽파 김치를 담그면 된다.

“양념을 새로 만들면 처음과 맛이 달라져요. ‘남겠다’ 싶을 정도로 만들어두는 게 낫죠. 또 양념은 배추 포기수에 맞춰 미리 나눠두세요. 가령 배추 50포기를 김장한다면, 양념을 10등분 하는 거죠. 그걸로 5포기씩 버무리면 됩니다.”

재료 준비를 마친 신씨가 식탁 위에 김장 비닐을 넓게 깔았다. 널따란 바닥을 두고 웬 식탁이냐 물으니 답이 돌아온다.

“어머니들이 김장하고 나면 병이 난다고들 하잖아요. 몇시간씩 바닥에 쭈그리고 앉으면 허리가 끊어질 만큼 아플 수밖에요. 키 큰 남자는 더 해요. 요즘 집집마다 식탁 있잖아요. 그 위에 판을 벌이고 서서 하면 훨씬 편합니다.”

절인 배추를 한잎씩 떼 꽁지 쪽에 김칫소를 한움큼 얹고 끝까지 쑥 훑는다. 이제는 새하얀 배추가 뻘게질 때까지 반복의 시간이다. 함께할 동지가 있다면 지난한 과정도 재밌다.

김장을 잘 마치고도 김치를 제대로 숙성시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김치는 통에 꾹꾹 눌러 담고 맨 위에 종이 포일이나 비닐봉지를 덮어 공기가 닿지 않도록 한다. 김치는 혐기성 발효식품이라 공기에 자주 노출되면 이상 발효가 될 수 있다. 예컨대 흔히 곰팡이로 오해하는 하얀 거품인 골마지가 낀다. 아예 공기가 닿지 않도록 처음부터 비닐봉지에 담아 입구를 묶어준 다음 김치통에 보관하는 것이 방법이다. 다만, 김치는 익으면서 가스가 생기니 봉지를 꽉 묶지 말고 살짝 여유를 두어야 한다.

“김치는 반나절 정도 상온에서 숙성시킵니다. 그 사이 발효되면서 가스가 생기는데 그 상태로 냉장고에 넣은 뒤 3주 정도 개봉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가스가 다시 김치로 스미면서 탄산감이 생깁니다. 시원하고 청량한 김치가 되는 거죠. 김치를 맛있게 숙성시키는 저만의 비법입니다.”

갓 담근 김치는 무엇과 같이 먹든 맛있다. 흰쌀밥에 쭉 찢은 김치를 턱 올려 먹으면 밥 한공기 뚝딱이다. 돼지고기 수육은 누구나 좋아하는 곁들임 음식이고, 신씨는 여기에 제철 맞은 생굴을 김칫소에 버무려 먹으면 금상첨화라고 일러준다. 전복이나 문어숙회와도 찰떡궁합이다.

“김치 덕후에게 김장하는 날은 기념일이죠. 갓 담근 김치도 맛있고 내일·일주일·한달 뒤 먹는 김치도 제각각 맛있습니다. 어휴,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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