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수많은 기사보다 가치 있는 드라마
[리뷰] 정신병을 극단적 사례로만 다뤄온 미디어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좋은 '안내서'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드라마 줄거리와 관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울함이 심할 때 제일 두려운 건 아침이었다. 매일 찾아오는 아침에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다. 반대로 행복했던 때 가장 기다렸던 건 내일 또 찾아올 아침이었다.
'아침이 오는 것'에 대한 감정은, 내 마음 상태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척도였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도 '아침'이라는 장치가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정신병 환자에게 위험 도구로 쓰일 수 있어 커튼을 없앤 정신병동은 “다른 병동보다 아침이 제일 빨리 찾아오는 곳”이다. 우울증으로 보호 병동에 입원한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도 치료를 지속하며 “아침이 오는 게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드라마는 불면증, 강박증, 양극성 장애, 조현병, 우울증, 공황장애 등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정신병을 다룬다. 주인공인 다은에게 '우울증'이 온 것은 아마도 가장 흔한 정신병 중 하나인 우울증이 가장 사소한 것으로 치부돼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혼자만 유난이야'라는 말로 타인에게도 스스로도 무시해버리기 쉬운 정신병은, 결과적으론 나를 향한 비난으로만 끝나며 치료 없이 증상이 악화되기 쉽다.
우울증이 온 적이 있다. 우울증은 무기력으로 이어져 종일 잠만 잤다. 무기력에 잠식돼 3시간 동안 화장실에 가고 싶은 걸 참았다. 집중력이 흐려져 글도 읽지 못하고 음악도 듣지 못했다. 힘이 없어 머리와 허리를 숙이고 땅만 보고 걸어야 했다. 드라마는 다은의 모습을 통해 이렇듯 현실적인 우울증 증상을 묘사한다. 달리는 차에 뛰어드는 정다은은 '저 차가 나를 치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반복했을 것이다. 자기혐오에 빠져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는 일상적인 정신병의 증상부터 원인, 관리 방법을 '정신병동'이라는 배경을 통해 알려준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기혐오와 불안증세를 겪는 환자, 가족의 죽음으로 죄책감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살생존자 등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와 치료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통해 다층적으로 정신병을 다룬다.
그런 면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안내서'다.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옆에 있는 주변인들에게도, 무심코 내 마음을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정신병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럽고도 일상적인 병'이라는 점을 알려준다. 우울하거나 불안감에 숨이 안 쉬어질 때, 당황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환자의 주변인들에겐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전한다. 우울해하는 다은을 억지로 즐겁게 해주려 애쓰는 송유찬(장동윤 분)에게 과외선생님이자 정신과 의사인 황여환(장률 분)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현관에 나가 운동화를 신을 기운이 없어. 숟가락을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숟가락을 들라고 하면 폭력이겠지?”라고 말해준다. 극 중 환자가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게 질문하고 기다려주는 의료진의 치료 모습도 보여준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 괴롭게 했던 나에게 괜찮다는 말 한마디는 실제로 많은 걸 괜찮게 했다.
드라마는 정신병을 향한 사회적 낙인도 꼬집는다. 주인공인 다은은 치료받는 게 알려지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질까 치료를 거부한다. 실제 '아픈 분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거 자체가 욕심'이라는 병동 보호자들의 다은을 향한 낙인도 현실적이다. 이들을 향해 “왜 하필 우리 애가, 왜 하필 우리 가족이, 왜 하필 내가…정신병이라는 건 그런 겁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예상할 수 없는 병이요. 본인들만 안 아플거라고 장담하지 마세요”라는 수간호사(이정은 분)의 말은 사회적 낙인에 익숙해진 우리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수간호사의 대사처럼 매일 아침이 찾아오듯 정신병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서서히도 갑자기도 찾아올 수 있다. 병을 부인하거나 극복하는 것보다 병을 마주하고 스스로 어떻게 대응하는가가 중요한 이유다. 극 중 워킹맘으로 버티며 강박적으로 애쓰다 해리 증상을 겪은 환자는 이젠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려 노력하고, 면접 중 다시 공황장애가 온 유찬이는 “나만의 안전장치”인 친구가 선물해준 넥타이를 다잡는다. 난 우울함이 심해질 땐 감정을 하나하나 기록해둔 메모장을 가지고 병원을 찾았고, 지금은 날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멈추려 '쉼'을 택한다. 내게 우울함은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극 중 공황장애 약에 대한 의존이 우려돼 약을 끊고 싶어 하는 유찬에게 의사는 “자전거 처음 배울 때 뒤에서 누군가 잡아주면 안심되죠? 약도 그래요. 흔들림이 덜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을 끊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어느 순간 손을 놔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저절로 약 없이도 일상을 잘 생활할 수 있게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 병이 그렇다.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오래오래, 일상에서,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동안 미디어는 정신병을 극단적 사례로만 다뤄왔고, 우린 그대로 소비해왔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살아간다. 정신병은 늘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병이다. 그 병을 어떻게 마주하고, 대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 알려준 이 드라마가 반갑다.
아침이 제일 빨리 찾아오는 정신병동에서, 우리는 스스로 마주할 용기를 찾는다. 아직 혼자서만 병을 안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드라마는 말한다. “편견과 낙인이라는 얼룩도, 언제 어디서 생긴 지 모를 크고 작은 얼룩도, 흉터에 가려져 얼룩인지도 몰랐던 얼룩도, 내가 스스로 엎지른 물 때문에 생겨버린 얼룩도, 모두 깨끗이 씻어내고 털어버리자. 언젠가 올 깨끗한 아침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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