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헌법과 1987년 헌법은 '일란성 쌍둥이'다…왜?
대의 과두정의 유신헌법과 1987년 헌법은 일란성 쌍둥이
흔히 1987년 헌법은 민주적인 것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비민주적 대의 과두정 및 관료 공화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신헌법을 그대로 빼닮았다. 딱 하나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유신헌법 제1조, "권력은 국민이 뽑은 대리자에 의해 행사된다", 1987년 헌법 제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되어 있다. 유신헌법은 권력을 "행사하는 이"가 누구인지(국민이 뽑은 대리자)를 말하고 있으나, 1987년 헌법은 "행사하는 이"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며, 행사하는 이가 아니다. 실로, 1987년 헌법 전편을 살펴보면, 국민은 대리자를 뽑는 권한만 가지므로, 유신헌법과 1987년 헌법의 제1조는 서로 같은 것이다. 말장난으로 뭐가 다른 것이 있는 것처럼 국민의 눈을 가렸을 뿐이다.
대의제가 다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민주적일 수도 있고 과두적일 수도 있다. 1987년 헌법은 과두적이다. 그 구분 기준은 간단하다. 대의제 선출직 혹은 그 선출직에 의해 임명된 관료의 권리 행사에 대해, 권력의 원천인 국민 민초가 감시, 처벌할 수 있으면 민주, 할 수 없으면 과두체제이다. 후자의 경우 공직에 임한 이가 권력을 오·남용해도 명색이 주인이 감시, 처벌하지 못 하면, 주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므로 과두정치가 되는 것이다.
스위스는 과두정치가 아니라 직접민주정치이다. 연방의회에서 가결된 입법안도 국민이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800만 주민 중 유권자 5만 명만 서명하면, 통과된 입법을 다시 국민투표에 부칠 수가 있다. 그래서 취소된 법안이 전체 법안의 약 1.5% 남짓 된다고 한다. 비율이 높지는 않으나, 권력에 대한 이 같은 국민의 견제장치가, 의회가 합리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참고로, 스위스에서는 대통령이 7명이다. 한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고 합의제로 결정한다. 스위스에는 26개 주(칸톤)가 있는데, 주들은 중앙으로부터 독립성이 강하고, 각기 고유한 주 헌법을 가지고 있다. 그 틈서리에서 주어지는 최소한의 권한을 연방정부에서 행사하는 데도, 그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7명의 합의제 대통령을 둔 것이다.
민주정치 여부는 국민이 권력의 오·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한국에 회자하는 심의(숙의) 담론은 요체가 결여된 절름발이로, 민주의 충분조건이 되지 못 한다. 심의란 정책의 결정 과정에 관련하는 것일 뿐, 권력에 대한 감시, 처별의 담론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탄생한 헌법재판소와 정치사법화
유신독재 헌법을 닮은 1987년 헌법이 오늘날 사법관료 독재를 연출하고 있다. 정치가 종적을 감추고, 사법관료가 정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부, 행정부가 사법부에 종속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데, 그 정점에 헌법재판소가 있다. 그 기능과 절차상의 입지는 군부독재의 전두환이 마지막으로 던지고 간 독재의 유산이다.
기능상 법을 수호하라고 만든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엉뚱하게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헌법 제111조, 헌법재판소법 제2조) 등 정치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 절차상으로는 9명의 임명직 관료가 300인 국회 위에 군림하고, 자체 결정에 대해서는 어떤 기관에 의해서도 견제받지 않는다. 헌재는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한 것이다.
헌법수호란 법률 혹은 그 법률을 빙자한 국가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못 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정부 권력에 의한 국민 기본권 침해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법원이다. 재판소원을 애초부터 금지한 것은 잘못된 재판에서 피해를 본 이들을 구제하는 것을 본업으로 했어야 할 헌재가 임무를 망각한 것이다.(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독일과 반대로 재판소원 금지한 한국 헌법재판소
우리 헌재는 독일의 것을 모방했다고 하는데, 이름만 따가지고 왔을 뿐, 내용은 딴판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6개 주(Bund)에 각기 존재하는 대법원을 거쳐 올라오는 재판소원(민원)을 처리하는데, 그 업무의 90-95%가 재판소원이라고 한다. 그중 약 13%가 판결 오류로 판사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유죄로 처벌받았다.
놀랍게도 한국 헌재는 재판소원금지를 합헌으로 정당화하면서, "최종심급에 의한 권리침해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침해 가능성에 대한 또 다른 안전장치는 법치 국가적으로 불가피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했다. 대놓고 기본권 침해에 대한 안전장치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것은 법률 수호와 기본권 침해 방지의 기능을 애초에 포기한 헌재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재판소원금지 조항이 정상적 합의를 거친 것이 아니라, 입법 테러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사실이다. 토론과정에서 재판소원금지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전두환 일당은 법안 통과 바로 전날 밤, 토론에 참가한 이들도 모르게 이 조항을 헌법재판소법에 삽입했다. 이 조항이 지금까지도 버젓이 합법, 합헌인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무소불위 과두독재의 헌법재판소
절차상으로도 헌재는 위헌이다. 9명 관료가 국회의 결정을 무효화할 뿐 아니라, 그 자체의 결정은 견제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헌재는 과두독재 기관이다. 프랑스는 그렇지 않다. 프랑스 헌재는 드골 대통령의 1958년 헌법에서 만들어졌는데, 그 기능은 엄격하게 입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에만 제한되어 있다. 한편, 2008년 헌법개정에서는, 원래 행정부 발의(대통령)만 있던 국민투표의 절차를 확장하여, 양원 의회 발의(유권자 1/10의 지지, 혹은 그 지지를 받는 양원의원 1/5에 의한 의원발의) 형식을 더하였다(헌법 제11조 3항). 헌법재판소는 양원 발의 국민투표를 사전적 규범통제의 대상으로 한다. 동시에 양원도 헌법재판소의 각종 결정에 대해 양원 발의 국민투표를 통해 다툴 수 있어, 의회와 헌법재판소 간 상호 견제체제가 성립한다고 하겠다.
검사 불기소처분 관련 재정심리 불복 헌법소원 금지한 개정형사소송법
국가기관에 대한 국민의 감시 부재는 사법관료 패권에 의한 질곡을 강화해왔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말기, 개정형사소송법에서는 법원의 재정심리 불복에 대한 헌법소원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재정심리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으로 그 타당성 여부를 법원에 호소하는 것이다. 2007년 이전에는 법원의 재정심리에 불복하는 경우, 헌법소원할 수 있었던 것을, 개정형사소송법에서 금지한 것이다. 가뜩이나 기소독점권, 기소편의주의에 편승한 검사의 자의적 기소 여부 관행은 이후 더욱더 고삐 잃은 말같이 길을 잃어버렸다. 개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검찰의 손에 희생되었다.
판사가 고의로 위법 판결해도 벌받지 않도록 한 법원 판례
법원은 법원대로, 잘못 판결해도 결과적으로 벌 받지 않도록 하는 판례(대법원 2003.7.11. 99다24218)를 만들었다. 법관이 위법하게 재판해도 그 위법이 ① '목적성', ② '현저하게 위반', ③ '취지에 명백하게 어긋나게', ④ '특별한 사정' 등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누가 어떻게 가려낼 수 있겠나? 법관이 고의로 위법하게 재판해도, 그 주관적 목적성 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므로, 결국 법관은 면책받는 존재가 되었다.
타인구조 금지 관행 깨고 국가보충성 원칙 숙지해야
한국이 당면한 질곡은 한두 사람의 상습화된 거짓 행위, 검찰 특활비 전용 등을 벌하고 없앤다고 다 고쳐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사법관료주의를 극복하고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대응, 저항적 입지를 정비하기 위해서 우선 두 가지 점에 유념해야 하겠다. 첫째, 법원의 판례를 통해 굳어져 온 타인구조 금지 관행을 깨는 것이다. 남이 당하는 질곡을 서로 협력하여 타개하지 않으면, 태산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둘째, 국가 보충성 원칙을 숙지하는 것이다. 국가는 시민 자율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맨 나중에 보충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국가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마약 단속에 골몰한답시고 이태원 사태에 손놓고 있거나, 노사 간 자율적 분쟁 해결의 판에 개입하여, 노조를 폭도로 억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최자영 전 부산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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