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터져라 “T1 우승 하자, 파이팅!” 외친 팬들…‘롤드컵 결승전’ 전야제를 가다
맹추위에도 몰려든 팬들로 북적…각종 코스튬 플레이까지
“처음에 티켓팅 할 때는 결승전 상대가 누군지 몰랐어요. 나중에 T1이 올라간 것을 안 친구들이 제게 ‘혹시 표 더 없냐’고 물어봤죠.”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2023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LoL)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김종민(28)씨는 “(다들 T1이 결승에) 올라갈 수 있겠냐고 그랬는데, 그걸 증명했다”며 이같이 웃었다. 집이 있는 경기도 용인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그는 ‘페이커’ 이상혁의 이전 우승이 오래전이라며, 19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결승전에서 T1팀의 우승을 고대했다.
출전 선수 응원 메시지로 가득한 ‘치어 월(Cheer wall)’에 방금 전 글을 적은 종민씨는 다른 게임과의 차이를 묻자, “라이엇게임즈에서 마케팅을 잘 하는 것 같다”며 “아이돌과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내일 결승전 무대에는 ‘뉴진스(Newjeans)’도 온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10여년간 롤을 즐겼다면서, 그는 “다른 게임을 하더라도 결국 롤로 돌아오게 되더라”고 질리지 않는 점을 롤만의 매력으로 언급했다.
2009년 미국 라이엇게임즈 사(社)가 개발한 ‘LoL(롤)’은 5명이 팀으로 벌이는 전투게임으로 매달 1억 명이 넘게 즐기는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인기를 증명하듯 롤드컵 결승전 좌석 1만8000석은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10분 만에 매진됐다.
중국의 ‘웨이보 게이밍 포 아우디(WBG)’ 팀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사전행사 ‘월즈 팬페스트(Worlds Fan Fest) 2023’에는 대회 열기를 몸소 느끼려는 팬들로 가득했다. 곳곳에는 게임 캐릭터 코스튬플레이를 한 팬들이 눈에 띄었고, 기념품 판매 코너 등에도 줄이 길게 늘어섰다. 세종문화회관 인근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팬들을 대상으로 한 롤 관련 문제가 출제돼 이 중 3문제를 먼저 맞힌 이에게 결승전 티켓을 상품으로 주는 이벤트가 열려 많은 관심을 끌었다.
‘T1’이 적힌 커다란 검정 바탕의 깃발을 흔드는 두 사람이 눈에 띄어 다가가 물으니 ‘신혼부부’라며 송예진(29)씨와 김상득(36)씨는 직접 만든 깃발이라고 웃었다. 아쉽게도 결승전 티켓은 없지만 그 아쉬움을 전날 사전행사에서의 즐거움으로 승화시키고자 왔다면서, “T1이 우승해 그 기쁨을 깊게 간직하고 싶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페이커’ 이상혁을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은 남편과 달리 예진씨는 “‘제우스(Zeus·최우제)’ 선수를 좋아한다”며 양손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Z’ 만드는 시그니처 포즈를 취했다. 비록 결승전은 현장에서 못 보지만 앞선 8강전과 4강전은 ‘직관(직접관람)’했다며, TV로 보는 것과의 차이 질문에는 ‘스포츠의 열정이 많이 느껴진다(송예진)’, ‘다 같이 환호할 때의 짜릿함이 있다(김상득)’는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상 게임 초기인 ‘베타서비스’부터 롤을 좋아했던 상득씨의 ‘페이커를 같이 한 번 볼래’라던 권유가 부부의 게임 문화 즐기기 출발점이었다고 한다. 남편의 권유에 함께 경기를 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T1팀 선수들의 경기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예진씨는 전했다.
미국 게임사 블리자드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PC방 문화의 시작을 알렸던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각종 중계를 챙겨봤다는 상득씨는 “언제 e스포츠를 사람들이 스포츠로 인식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며 국민에게 e스포츠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 지난 항저우아시안게임이 그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봤다.
T1의 ‘케리아(Keria·류민석)’ 이름을 나란히 마킹한 선수단 점퍼를 입은 조민경(14)양과 채지원(16)양은 이 게임이 아니었다면 평생 서로 몰랐을 수도 있는 사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게임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소중한 인연을 맺게 해줘 의미가 남다르다.
T1이 자신들에게 어떤 팀인지를 묻자, 지원양은 “올해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때 (T1팀을) 보면서 되게 행복했다”며 “같이 응원하는 친구들을 찾으면서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패배와 승리에 상관없이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면서다. 같은 질문에 “T1을 좋아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소속감’을 느꼈다”던 민경양은 옆에 있는 지원양을 ‘든든한 언니’라고 표현했다.
지난 15일 서울 중구 반얀트리 호텔에서 열린 ‘월드 2023 파이널스 미디어 데이’에서 ‘페이커’ 이상혁은 “한국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뛸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승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력하고 성장하는 기회가 있다는 데 감사하다”며 “프로 생활을 하며 스스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은 마인드의 변화”라고 했다. 아울러 “4강이 끝나고 느낀 감정은 ‘상대방을 뛰어넘었다’보다는 ‘좋은 경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였다며 “스포츠맨십으로서 보단 순순히 개인적인 감정이었고, 많은 분께 보여지는 스포츠선수로서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케리아’ 류민석은 “웨이보가 워낙 잘하는 팀이지만 저희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세트 스코어 3대 2 승리를 예측했다.
웨이보 게이밍은 T1을 향한 존중과 경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2020~2021년 T1 감독을 맡기도 했던 양대인 웨이보 감독은 “(T1은) 다 같이 게임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며 “상당히 강하구나를 알고 있었고, 아는 만큼 두렵다”고 말했다. ‘크리스프’ 류칭쑹은 “결승은 T1의 마침표”라며 “세트 스코어 3대 1로 승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주최 측인 라이엇 게임즈는 페이커를 롤의 ‘유산'(legacy)’으로 지칭했다. 제레미 리 라이엇게임즈 롤 총괄 프로듀서는 “주말에 페이커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된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고, 나즈 알레타하 라이엇 게임즈 이스포츠 글로벌 총괄은 “네 번째 타이틀에 도전하는 데 관심이 집중되고, 경기 시청자 수(뷰어십)와 게임 내용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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