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믿고 적자 견뎠는데 ”…빚·재고 떠안은 종이빨대 업체 ‘망연자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3. 11. 1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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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대금 등 적자 경영에 수억대 빚
업계 “자금 지원, 판로 확보 등 시급”
서울 시내 한 카페에 비치된 매장용 종이빨대 [사진 = 연합뉴스]
종이 빨대 생산업체들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 정부가 당초 23일 종료 예정이었던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지난 7일 갑자기 발표했기 때문이다.

계도기간이 끝나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금지돼 종이 빨대 사용량이 늘어날 것으로 종이 빨대 생산업체들은 기대했지만, 불과 보름을 남겨두고 정책이 뒤바뀌면서 재고 등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 정책 발표 후 업계에 종이 빨대 반품 요청이 쏟아진 것이다.

18일 환경부의 ‘재질별 빨대 생산 단가’ 비교 자료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는 개당 10~15원, 종이 빨대는 35~45원이다. 개당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꾸면 월 약 5만원(매장 평균 소비량 약 2500개 기준)의 추가 비용이 든다.

생산업체들은 종이 빨대 사용이 의무화만 믿고 종이 빨대를 생산했다가, 재료비, 운영비 등 부담만 지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계도기간 종료를 앞두고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미리 대량 생산한 종이 빨대는 무도 재고로 남게 됐다.

종이빨대생존대책협의회(협의회)는 지난 16일 “10여 개 회원사들의 현재 재고량을 종합하면 약 1억4000만개, 여기에 회원사 이외의 업체 재고량까지 더하면 약 2억개”라면서 “회원사들의 월 생산량은 약 2억7000만 개지만 판로가 막혀 생산기계 가동을 급하게 멈춘 상태”라고 말했다.

업체 대다수는 친환경에 투자하기 위해 적자경영을 견뎌 왔다. 종이 빨대는 지금까지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인 스타벅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래처에서 많이 찾는 품목이 아니었지만, 친환경 수요가 늘어나고, 계도기간 종료를 기점으로 종이 빨대 사용이 보편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종이 빨대 생산업계는 “친환경 정책 기조에 맞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환경 보호에도 기여한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업체가 미래를 보고 투자를 해왔다”며 “피해 규모는 다 다르지만, 지금까지 돈을 번 곳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A생산업체 대표는 “플라스틱 빨대 금지 계도기간 연장이 발표되면서 거래처들이 주문을 취소하거나 내년도 구매 계획을 철회했다. 종이 빨대 완제품과 원자재는 종이 쓰레기가 됐고 100평이 넘는 공장도 쓰레기 보관소가 됐다”면서 “종이 빨대 재고가 1000만개나 되는 상황에서 더 생산할 수는 없고 이에 10명이 넘는 직원들도 더는 함께할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로 인한 피해인 만큼 정부 책임이 크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생산업체 대표는 “정부 정책을 믿고 종이 빨대 사업에 투자한 게 후회된다. 환경부가 계도기간 무기한 연장을 발표한 7일이 공장에 기계를 설치하는 날이었는데, 밤낮으로 연구·개발하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느낀 게 물거품이 됐다”고 분노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몇 년 동안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해서 일궈냈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게 됐다. 천재지변이나 시장변화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실패 때문에 일어난 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는 긴급 자금 지원, 계도기간 시한 지정, 판로 확보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협의회 관계자는 “전국 업체 현황을 보면 올해 안에 도산하게 되는 중소업체들이 대부분”이라며 “긴급 자금 지원이 당장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 계도기간의 정확한 일정 발표 및 시행이 시급하다”도 덧붙였다.

정부는 정책을 발표한 지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환경부는 종이 빨대 업체 지원방안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는 지난 13일 식음료 프랜차이즈 업체들과도 만나 플라스틱 빨대는 소비자가 요청할 때만 제공하고 매장 내 소비자 눈에 보이는 곳에는 종이 빨대만 비치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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