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남들 투자 줄일 때 늘리는 까닭
전기차 수요 급감에도 '2조'투자 EV 공장 건설
"현상황 일시적"…전기차 방향성 맞다는 판단
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현대차그룹의 큰 그림
현대차그룹이 울산에 전기차 공장을 건설합니다. 1996년 충남 아산에 공장을 세운 이후 한국에선 29년 만의 공장건설 입니다.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자금만 2조원입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에 전력투구 중입니다. 그 시작을 '전기차'로 꼽았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질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년 대비 2.7% 증가한 684만5000대를 판매했습니다. 토요타와 폭스바겐에 이어 글로벌 3위입니다. 올해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는 548만1000대입니다. 글로벌 3위 입니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품질을 높이고 경쟁력 있는 차종을 지속적으로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공격적인 마케팅과 해외 시장에서 제값 받기에 나섰던 것이 시장에 안착되면서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전기차 시장 형성기에 발 빠르게 대응한 것도 한몫했다는 평가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해왔습니다. 조만간 내연 기관 자동차의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를 전기차가 메울 것이란 판단 때문입니다. 전기차 이외에도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에 맞는 '모빌리티'를 제공해 미래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전략입니다. 이번에 울산에 짓기로 한 전기차 전용 공장도 이 같은 전략과 궤를 같이 합니다.
확 바뀐 시장
최근 전기차 시장이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급성장했던 전기차 성장속도가 낮아진 모습입니다. 중고차 시장에도 전기차들이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들립니다.
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37% 증가한 870만대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대수가 전년 대비 113% 증가했던 것을 감안하면 성장폭이 크게 둔화되는 셈입니다. 국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국내 순수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전년대비 4.3% 줄었습니다.
현대차의 올 1∼10월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9.4% 감소한 5만4460대 였습니다. 특히 10월에는 전년동기 대비 44.6% 감소한 5076대 판매에 그쳤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런 추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전기차 수요가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입니다.
전기차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내연기관 모델 대비 높은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 안전성에 대한 우려 등이 꼽힙니다. 업계에서는 초기 전기차를 구입했던 소비자들의 경우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많았는데 이젠 이들의 전기차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기차 확산을 위한 필수 요소, 즉 대중적 모델이 부재하다는 것도 전기차 성장둔화 이유로 꼽힙니다.
숨 고르기
상황이 이렇자 그동안 전기차 개발 및 판매에 열을 올리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잇따라 전기차에 대한 투자 규모와 시기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급감한 마당에 계획된 투자를 이어갔다간 당장 실적에 큰 타격을 입기 때문입니다. 수요 개선을 지켜보면서 투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GM의 경우 내년 상반기까지 전기차 40만대 생산계획을 철회했습니다. 디트로이트 전기차 공장 가동 시기도 연기했습니다. 포드도 120억달러 규모의 전기차 투자 계획을 연기했습니다. 폭스바겐은 오는 2026년 설립키로 한 전기차 전용공장 계획을 폐지했고, 테슬라도 멕시코 기가 팩토리 착공 시점을 연기했습니다.
전기차 업체들이 투자 속도를 늦추자 후방업체들도 숨 고르기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터리 업체들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 코치와 짓기로 했던 튀르키예 합작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SK온도 오는 2026년부터 가동키로 했던 미국 켄터키 2공장 투자 계획을 연기했습니다. 전기차 업체들이 속도를 줄이니 배터리 업체들도 줄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전기차 판매 확대를 독려했던 각국 정부들도 속도 조절 중입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줄였거나 줄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은 중국도 보조금을 올해부터 폐지했습니다. 가뜩이나 내연 기관 모델에 비해 가격이 비싼데 정부 보조금마저 줄어들거나 없어지면서 전기차 시장은 더욱 위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간다
이런 상황에도 현대차는 전기차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감행했습니다. 경쟁업체들이 투자를 줄이고 속도 조절에 나선 것과 대조적 입니다. 현대차도 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투자에 나선 것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남들이 줄일 때 미리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시장을 대비하겠다는 겁니다.
현대차는 '최근 전기차 성장둔화가 성숙기로 가기 위한 과도기'라고 봅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울산 전기차공장 기공식에서 "기존에 해왔던 투자이고 비용 절감이나 여러 가지 방법도 있겠지만, 큰 틀에서 어차피 전기차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운영의 묘를 살려서 해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전기차 방향성을 확신하는 만큼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시장 장악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입니다.
현대차의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은 연간 20만대 규모입니다. 부지 규모만 해도 축구장 80개에 해당하는 54만8000㎡의 대규모 공장입니다. 여기에 각종 첨단 장비와 시스템을 구축해 오는 2025년부터 양산에 들어갑니다. 시장이 혼란에 빠졌을 때 과감한 투자를 통해 승기를 잡겠다는 의미입니다. 현대차의 역발상이 모험일지, 신의 한 수일지 살펴보시죠.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