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 불량” 인정은커녕 책임 떠넘기는 軍…공방 뒤로 숨은 ‘책임감’ [저격]
[저격-2] 군필자라면 대부분 기억할 전투식량. 저도 군필자라 전투식량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요. 즉각취식형(전투식량3형) 아몬드케이크는 그럭저럭 먹을만 한데, 정작 주식(主食)인 비빔밥 등은 먹으면 사기가 저하되는 맛이라고들 하지요. 그럴 땐 전설의 조미료 ‘맛다시’(군 장병들에게 사랑받는 볶음고추장의 상품명)만 있으면 사기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A사에서 납품한 전투식량2형은 유통기한 설정이 잘못된 ‘불량’이라는 것.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계약 당사자인 방위사업청, 품질보증기관인 방사청의 산하 기관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과 국방기술진흥연구소(국기연)가 유통기한에 대한 검증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서 검증조차 하지 않아 장병들이 불량 전투식량을 먹게 됐다는 것입니다.
본지와 방사청의 생생한 공방 과정을 통해 문제의 전투식량에 ‘진짜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품목제조보고서에는 식품 포장 방법도 포함됩니다. 당연히 포장 방법이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포장 방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A사가 납품한 전투식량2형의 포장 방법이 왜 문제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사가 납품한 전투식량2형 참기름 품목제조보고서에는 1차(폴리에틸렌+나일론), 2차(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나일론+폴리에틸렌) 재질의 4겹 포장재로 이중 밀봉 포장했을 때 유통기한 39개월이 유지된다고 써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령’이 유통기한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요. 옥수수유와 참기름은 품목제조보고서에 적은 대로 포장하여 유통기한을 유지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옥수수유는 일반 비닐로만 포장시에는 권장 유통기한이 12개월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투식량은 유통기한이 임박했을 때 장병들이 취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지난 수년간 장병들에게 유통기한이 지난 전투식량을 먹여온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본지는 유통기한 설정시험서 위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방사청은 ‘A사가 2016년 전투식량 납품 당시, 참기름과 옥수수유를 납품한 협력업체가 품목제조보고를 하였고, 이 때 2012년 ‘중앙대 산학협력단’의 연구결과 보고서를 근거로 하였으나, 이는 동일한 품목에 대해 동일한 포장방법을 사용한 연구방법을 근거로 하였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9월 본지 보도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참기름과 옥수수유 제조업체는 ‘유통기한 설정 기준 위반’으로, A사는 ‘유통기한 설정 기준 위반 제품 사용에 의한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처분 요청 조치됐습니다.
B교수는 처음 보는 것이며 자신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답변했으며, 찍혀 있는 자신의 인감도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이를 해결하려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난 10월 10일 ‘2020년에 식약처, 기품원 등이 A사에 대해 합동위생점검을 실시하여 원자재 및 완제품의 유통기한 등을 점검한 결과 유통기한에 대한 문제점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라는 내용을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습니다.
식약처는 중앙대에 공문을 보내 해당 내용(유통기한 설정시험서 위조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식약처 특별사법경찰관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전투식량 2형의 납품검수는 주로 납품업체가 제출한 품질보증 관련 서류(전투식량2형 종합 품질실험보고서·참기름 등 각 구성제품에 대한 성분검사 및 유통기한 설정실험서·품목제조보고서 등)의 이상유무를 통해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기연은 지난 7~8월 3차례에 걸쳐 제기된 A사 전투식량2형 감사청구 민원에 대해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기품원(국기연)은 해당 지자체 및 식약처의 승인 결과를 원용하게 됨으로 (유통기한 등의) 허위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제한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자체와 식약처는 본지에 공식적으로 유통기한을 승인하는 기관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통기한을 ‘승인’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유통기한은 식품 제조 업체가 제3기관에 의뢰하거나 유사한 제조방법이나 제품군의 유통기한으로 갈음하여 ‘설정’을 받습니다. 이후 해당 업체와 계약하는 업체 또는 기관이 이를 ‘검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짬짜미 의혹은 이렇습니다.
본지 취재 결과, A사에 참기름을 납품한 업체는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의 유통기한 설정시험서를 빼돌려 이를 기반으로 유통기한 39개월 참기름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고 납품했습니다. A사는 이를 알거나, 혹은 확인하지 않은 채 참기름을 사용한 의혹을 받습니다.
또 방사청은 품질보증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검증 과정에서 이를 적발하지 못해, 혹은 알면서 짬짜미로 불량 전투식량을 2016년부터 줄곧 장병들에게 먹여온 의혹을 받습니다.
기존 국방규격은 외포장상태에서 유통기한 설정시험을 통해 내부 음식물이 유통기한 36개월 이상이 넘는지 확인하여 납품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투식량 안에 들어가는 제품 중 참기름, 옥수수유 등 개별적으로 유통기한이 36개월이 넘지 않는 제품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사의 전투식량도 외포장상태에서 유통기한을 점검했을 때 내용물 모두 36개월이 넘어 이상 없는 제품이었습니다.
2018년 방사청은 돌연 허위 유통기한 제품을 사용한 A사에 맞춰 외부 업체에서 들여오는 제품에 개별 유통기한을 찍도록 ‘국방규격’을 바꿔버렸습니다. A사와 똑같은 업체의 참기름을 사용하고 있던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는 이로 인해 2018년부터 참기름을 빼게 됩니다. 해당 참기름 업체가 정상적으로 납품하는 유통기한은 최대 24개월이었고, 현실적으로 개별 유통기한 36개월이 넘는 참기름은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A사는 ‘유통기한 39개월짜리 참기름’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식량1형과 같은 업체의 참기름을 사용하는데, 전투식량1형 납품업체는 참기름을 빼고 A사는 계속 사용했다는 점. 또 방사청이 단 한 번도 A사의 외부 시험서 등 문서 검증(품질보증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짬짜미 의혹을 뒷받침합니다.
이후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약속이 사실이라면 본지가 지적한 130만개의 A사 전투식량2형에 대한 검증 절차를 밟고 있을 것입니다. “軍장병이 봉인가…전투식량에 ‘수상한 중국산’ 참기름”(▶9월 18일자 A23면 보도)
방사청 스스로 말한 ’전투식량 품질문제 제기에 대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하고 한치의 의혹이 없도록‘ 하는 어떤 조치도 하고 있지 않다면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것이 되겠지요.
이번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불량 전투식량에 대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부터 (전투식량 제조업체가) 전투식량2형 유통기간을 속이는 문제, 그리고 유통기한 설정시험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드러났다”며 “장병들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제품(전투식량)에 대한 책임 있는 수행을 해줘야 되겠다”고 지적했습니다.
허건영 기품원장과 손재홍 국기연 소장은 “책임감 있게 업무 수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전투식량은 평시 훈련뿐만 아니라 전시에서도 먹는 매우 중요한 군수물자입니다. 요즘 군 간부들은 맛이 없다고,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고 전투식량을 잘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선택사항이 없는 병사들은 불량을 주면 주는대로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방사청과 기품원·국기연이 공식적으로 한 ‘책임감 있게 조치하고 업무 수행하겠다’고 한 말.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고 지적을 넘기기 위한 영혼 없는 약속이 아니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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