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다”…일본전 ‘영봉패’ 막은 김휘집의 깨달음[APBC]

배재흥 기자 2023. 11. 1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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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집이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APBC 일본전 9회 솔로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지난 17일 일본과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23 예선 2차전에서 1-2로 패배했다. 점수 차이만 보면 ‘석패’다. 그러나 경기 내용에서는 분명 ‘1점’ 그 이상의 격차가 났다.

한국 타선은 이날 일본 좌완 선발 스미다 치히로의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제구가 잘 잡힌 시속 140㎞ 후반대 빠른 공만으로도 위협적인데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까지 날카롭게 떨어졌다. 스미다는 7이닝 동안 77구를 던져 3안타 1사사구 7삼진 무실점 투구로 한국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류 감독은 경기 뒤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데, 모든 구종으로 스트라이크를 잡는 능력이 있었다”며 “영상에서 확인한 것보다 공이 좋았고, 제구가 잘 됐다. 공략하기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일본 좌완 스미다 치히로가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APBC 한국전에서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타선은 8회 나온 요코야마 리쿠토를 상대로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영봉패의 그림자가 드리운 순간이었다. 9회에는 2023시즌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세이브 2위 투수인 좌완 다구치 가즈토(야쿠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구치는 이번 시즌 50경기에서 33세이브 평균자책 1.86을 기록한 일본 대표팀의 확실한 마무리 자원이다.

한국의 마지막 공격. 4번 타자 노시환이 3구 만에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고, 문현빈은 초구를 타격했다가 3루수 땅볼을 쳤다. 류 감독은 이어진 손성빈 타석에서 김휘집(21·키움) 대타 카드를 꺼냈다. 김휘집은 올 시즌 110경기에서 타율 0.249, 92안타 8홈런, OPS(출루율+장타율) 0.712를 기록한 내야수다.

다구치 가즈토가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APBC 한국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연합뉴스



0-2로 뒤진 9회초 2사에서 이번 대회 첫 출전 기회를 얻은 그는 침착하게 다구치의 볼 3개를 골랐다. 3B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빠른 공을 하나 지켜본 김휘집은 다구치의 5구째 시속 141㎞ 높은 직구를 때려 왼쪽 담장을 그대로 넘겼다. 후속 타자 김주원이 범타로 물러나며 더이상 일본을 추격하지 못했지만, 김휘집의 ‘한 방’은 침체한 선수단 분위기를 확실하게 끌어올렸다.

류 감독은 “영봉패를 했으면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것”이라며 “홈런 덕분에 좋은 분위기가 대만전에서 이어질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경기를 마친 김휘집은 “왼손 투수가 마무리인 것을 알고 있어서 9회 대타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저를 대타로 기용해준 것에 보답하고 싶었다”며 “3B-1S일 때 사실 ‘치지 말까’ 생각했다. 어차피 몰리면 불리하고, 2점 차이라서 직구를 노리고 빠른 타이밍에 스윙을 가져갔다”고 홈런 상황을 설명했다.

김휘집이 APBC 대회 전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국내 소집훈련에서 훈련하고 있다. KBO 제공



첫 국제대회인 APBC를 ‘해외여행’에 빗댄 김휘집은 이번 대회를 통해 야구 선수로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

그는 “이런 자리에 뛸 수 있다는 게 너무 영광스럽다. 제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며 “일본뿐 아니라 호주 선수들도 저마다 장점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는데, 저는 이 대회를 통해 세계가 넓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김휘집은 선발에 대한 욕심보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오늘처럼 뒤에 나가든, 잘 돼서 선발로 나가든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며 “결승에서 일본에 설욕할 수 있도록 대만전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도쿄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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