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커지는 '마약 공포'···"처벌 강화로는 절대 해결 못해" 전문가들 잇단 지적 [일본相象]
‘일본相象(상상)’은 이웃나라 일본의 다양한 이슈를 전해드립니다. 아울러 한국과 닮은 사회적 현상·맥락을 짚어보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배우 이선균(48)과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마약 스캔들’에 휩싸이는 등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일본에서는 대마 유사 성분이 포함된 젤리(구미)를 먹고 신체 이상을 호소하는 사례가 꼬리를 물며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마이니치·산케이신문·후지뉴스네트워크(FNN)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전날 밤 오후 11시 30분께 20대 남녀가 도쿄의 한 주택에서 "젤리를 먹었더니 몸 상태가 이상해져 괴롭다"며 119 응급구조 신고를 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 남녀는 생명에 지장은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번화가인 이케부쿠로의 한 상점에서 젤리를 산 뒤 집에 와 한 알씩 먹었다고 전했다.
문제의 젤리 봉투에는 오사카의 회사명과 대마 유래 성분과 구조가 비슷한 'HHCH'라는 이름의 합성 화합물 성분명이 적혀 있었다.
앞서 지난 4일 도쿄 고가네이시 인근 무사시노 공원에서 열린 축제에서도 40대 한 남성이 무료로 나눠준 젤리를 먹은 10~50대 5명이 응급 이송됐다. 이 젤리도 같은 성분을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젤리를 나눠준 40대 남성은 경찰에 "젤리를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 것뿐"이라고 진술했다.
하루 전인 3일에도 도쿄 스미다구 오시아게역 플랫폼에서 몸 상태의 이상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된 20대 남녀 4명도 대마 유사 성분의 젤리를 먹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전철을 타기 전 대마 젤리를 먹었다"는 취지로 진술을 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이 섭취한 것은 오사카의 한 회사가 제조한 망고 맛 젤리다. 경찰 조사 결과 대마 성분인 '칸나비노이드'가 포함된 것이 확인됐다.
해당 젤리에는 칸나비노이드뿐 아니라 'HCH(헥사히드로칸나비헥솔)'이라는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이 성분은 대마에서 환각을 유발하는 유해 성분인 'THC(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와 비슷하게 만들어진 합성화합물이다. THC와 달리 HHCH는 일본에서 불법 약물로 규제되고 있지 않아 실질적인 처벌이 어렵다. 그러나 향후 환각작용이나 기억장애 등 인체에 악영향이 확인되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HHCH의 제조 방법이나 다른 약물과의 관련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막론하고 마약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유통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청년층을 위주로 대마초 흡연자가 급증하고 있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NHK는 지난해 대마 사범 검거자 가운데 20대 이하가 3765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가토 가쓰노부 후생노동상은 “사이버 공간을 악용한 약물 밀매와 밀수를 엄중히 단속하겠다”는 뜻을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일본의 청년층에서 대마가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 ‘대마를 합법화한 나라도 있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현지 경찰 간부는 “미국 일부 주나 캐나다·태국·우루과이 등 대마를 합법화한 나라에서는 불법 약물을 경험한 적이 있는 시민의 비율이 높다”며 “국가 관리 아래 둠으로써 암시장을 없애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것일 뿐 대마의 위험성을 부정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의들도 대마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신경과학을 전공한 기무라 후미타카 지케이의료과학대학 교수는 “대마에 함유된 칸나비노이드라는 물질이 뇌에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물질이 신경회로의 가지를 잘라내고 신경세포에서 다음 신경세포로의 정보 전달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억장애나 시각 및 청각 정보가 뒤틀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인격을 형성하는 전두엽의 신경회로는 20세까지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무라 교수는 “젊은층이 대마를 사용하면 신경회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인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며 경각심을 일깨웠다. 해외에서는 대마를 한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은 14세 어린이의 대뇌피질이 정상적인 형태를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기무라 교수는 “대마가 의존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각성제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매체는 대마초를 흡연한 뒤 꿈과 시간이 멈춰버린 젊은이 A씨의 사연을 소개했다. A씨는 대학교 입학 시절 새내기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의 권유로 대마를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중독된 채 3개월 후 스스로 대마를 구입하는 처지가 됐다.
대마는 SNS를 통해 어렵잖게 구매할 수 있었다. 엑스(옛 트위터)에서 ‘○○’라 불리는 판매자를 검색해 연락하면 텔레그램으로 접선 장소를 정했다. 조폭, 화이트칼라 직장인, 전문직 여성 등 판매자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A씨는 대마초의 영향으로 편두통이 심해졌다. 두통약을 과다 복용하는 사태에 직면했고 여러 사람에게 망상이 가득한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정신과 병원에 입원한 뒤 약물중독자 시설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대학은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대마초로 잃어버린 것을 묻자 그는 “시간과 장래의 꿈”이라고 매체에 답했다.
가쓰노 신고 기후약과대 명예교수는 “그동안 약물 문제에 대한 일본 대학들의 교육이 허술했다”면서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정보를 토대로 대마초 남용 위험성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일본 경찰은 대학들을 순회하며 약물 남용 방지를 호소하는 세미나를 개최 중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6월 역대 두 번째 규모의 불법 각성제 밀수 사건이 적발되기도 했다. 각성제는 중추 신경을 자극하는 약물로 일본에서는 필로폰 등을 불법 각성제로 분류해 규제하고 있다. 일본 경찰은 중국 국적의 남녀 7명을 밀수 용의자로 체포하고 밀수된 각성제 700㎏을 압수했다. 시중 유통가격 기준으로는 434억엔(약 4057억원)에 달하는 물량으로 일본 내 단일 밀수 사건 압수량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
애초 이 물량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출발해 중국을 경유해 지난 3월 일본에 입항한 선박 컨테이너에 숨겨져 들어와 지바현의 창고 등에 분산 보관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번 밀수에 국제적인 범죄 그룹이 관련돼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 역시 마약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로폰 매수 및 투약 혐의로 돈 스파이크(본명 김민수)에게 징역 2년형이 확정된 가운데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 이선균, 지드래곤 등 유명인이 마약 투약 혐의로 도마에 올랐다.
이는 비단 유명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경찰에 검거된 마약류 사범이 1년도 채 안 돼 1만3000명에 육박하며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검거된 마약사범은 총 1만2700명에 달했다. 이는 최근 10년 이내 역대 최다였던 작년의 1만2387명을 웃도는 수치다.
2013년 5000명 대에 머물렀던 연간 마약사범은 꾸준히 증가해 2016년 8000명 대를 넘어섰다. 이후에도 계속 늘어 2019년부터 작년까지 연간 1만∼1만2000명 대를 기록했다.
마약사범 증가세는 청소년과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검거된 10대 마약사범은 659명으로 작년(294명)의 배 이상으로 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 마약사범도 지난해(1829명)보다 66.5% 많은 3046명 검거됐다. 여성 마약사범도 처음으로 4000명 대를 넘겼다. 남성 마약사범이 작년 8707명에서 올해 7929명으로 8.9%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올해 마약사범을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20대가 3731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60대 이상 3046명, 30대 2351명, 40대 1597명, 50대 1292명, 10대 659명 등이 뒤를 이었다.
장 의원은 "마약범죄가 끊이지 않는 데 더해 취약한 청소년과 고령층에서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며 "유통·판매 조직을 뿌리 뽑는 데 수사 총력을 동원하고 마약관리 시스템을 연령대별로 더 세밀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과 강남, 홍대 등 번화가, 유흥가를 중심으로 마약 범죄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경찰의 분석 결과가 지난달 23일 나오기도 했다. 공정배 서울 성동경찰서 경위와 김민정 안양만안경찰서 경위 등은 최근 학술지 '경찰학연구'에 실린 '마약 범죄에 대한 공간적 영향요인 분석 -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논문을 통해 이들 유흥가를 중심으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이 2020년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마약 범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용산에서 강남·서초구 북부로 이어지는 지역과 홍대 일대, 영등포·구로·금천구 접점 지역에서 마약류 남용 범죄가 성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핫스폿' 3곳의 마약범죄는 단란주점·클럽, 관광숙박업소 수 등과 일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팀은 "소외된 빈곤 지역에 집중된 외국의 마약범죄와 달리 한국의 마약 범죄는 부유한 번화가·유흥가에서 주로 발생한다"며 "'핫스폿'으로 특정된 홍대, 용산(이태원), 강남과 서초 북부 지대는 실제로 단란주점과 클럽 등이 서울에서 가장 집중된 곳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지역을 집중적으로 단속·계도해 마약 범죄를 억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또 전자댄스음악(EDM) 클럽과 마약 투약 간 상관관계를 소개한 해외 논문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도 클럽 '마약 파티' 같은 환경에서 마약 범죄가 학습된다고 추측할 수 있다"며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렇게 국내 마약 범죄가 크게 늘자 미국의 마약단속국(DEA)과 같은 통합 컨트롤타워 구축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국내 마약 단속 권한은 경찰·검찰·해양경찰·관세청 등으로 분산된 형태이기 때문에 수사를 할 때마다 공조를 요청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불가피하다.
상호 기관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지난달 경찰은 인천공항 세관 직원이 필로폰 밀반입에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세관 직원 4명을 입건했다. 세관 직원이 마약 운반책들과 공모해 편의를 제공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관세청은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경찰과 대립하는 모양새다.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지 못한 채 대립할수록 단속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마약 분야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지닌 통합 기구를 출범해 예산과 인력·권한을 집중해 단속 효율성을 높이자는 주장도 이어지고 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한국마약퇴치본부연구소장)는 “모든 마약 관련 수사 기관·유관 기관들의 인프라를 모아야 한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공조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효율성을 높여 단속 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매일경제를 통해 강조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마약 전문 치료시설 확충도 필요하다. 국내 마약 전문 치료시설은 현재 전국 21곳에 그칠 뿐더러 인구가 집중된 서울에 시립은평병원, 국립정신건강센터, 강남을지병원 등 3곳이 전부다. 최근 3년간 치료 실적이 아예 없는 병원도 12곳에 달했다. 윤흥희 교수는 “국립 시설이나 민간 치유 기관에서 재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매체에 전했다.
정부의 2024년도 약물 중독자 치료 지원 예산은 당초 보건복지부가 요구한 금액(28억600만원)보다 무려 85%나 줄어든 4억1600만원으로 책정됐다. 올해 예산도 이미 소진해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 운영비를 끌어 쓰는 현실마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배한진 법무법인 온강 대표 변호사는 “국가는 마약 사범을 잡아넣는 것뿐 아니라 마약을 투약한 사람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다시 마약에 안 빠지게 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적절한 치료책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16년 차 전문의이자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의 저자인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마약 정책은 진보·보수 다 똑같이 (무능하다). 보수 정부는 처벌에 주력하고, 진보 정권은 치료 문제로만 접근한다”라며 “정부의 의지는 예산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치료 예산은 얼마인가. 정부 예산에다 지자체가 지원하는 것까지 더하면 8억 원대다. 모든 정권에서 치료 예산을 적게 편성했다. 마약 중독자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면 전체의 이득인데도 지원하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다. 표가 되지 않아서다”라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국내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장 처벌 수위를 끌어올린다고 해서 마약 범죄율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게 전반적인 학계의 견해다. 양 과장은 "마약을 범죄 혹은 질병으로만 생각하는 양극단의 자세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처벌을 강화해도 마약 공급을 차단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마약의 가격만 뛰고 수익성이 오르기 때문에 역효과만 불거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마약 공급은 전 세계적 문제다. 미국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아편을 막지 못했다. 세계가 (코카인 최대 생산국인) 콜롬비아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도 마약 공급을 100% 차단할 수 없다”며 “차단 효과도 3년 내외다. 중독자들은 돈과 상관없이 마약을 한다. 공급이 줄면 약값은 더 뛰고 수익성을 쫓는 더 많은 사람이 마약 유통에 뛰어든다. 처벌로는 마약을 해결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근본적 해결책으로 중독자 치료 예산을 늘리고 강력한 예방교육이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마약은 절대 막을 수 없다. 정치권은 항상 마약을 양극단으로만 본다. 마약과의 전쟁, 즉 처벌 강화로 접근하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고 접근 비율도 낮출 수 있다”며 “하지만 중독된 사람들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할 존재로 악마화하게 된다. 마약 뉴스에 '사형시키라'는 댓글이 많이 달리지 않나. 반대로 마약 중독자를 환자로만 생각하면 경각심이 약화될 수 있다. 때문에 마약은 투트랙, 마약 공급 엄정 차단과 마약 중독자 치료 이 두 가지로 가야 한다”고 매체를 통해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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