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향한 마음, 시계 속에 담다 [김범수의 소비만상]

김범수 2023. 11. 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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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우주로 나간지 62년이 지났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의 산물인 ‘우주경쟁’은 20세기 최고의 이벤트이자 이념 갈등 속에 피어난 긍정적인 과학 기술의 진보였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면서 인간이 만든 시계도 우주에 나가게 됐다. 우주인에게 있어 시계는 필수품이었다. 컴퓨터가 발달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정확한 로켓 발사와 궤도 진입, 우주 유영, 달 착륙 등 일련의 과정을 기계식 시계와 수식 계산으로 해결해야만 했다. 따라서 우주 시계는 정확성은 반드시 갖춰야 하는 기능이었고, 동시에 극한의 상황에서 견딜 수 있는 강한 내구성도 필요했다.

시계 제조사들도 우주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자신들이 제조한 시계가 우주에 나가게 된다면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은 물론 마케팅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시계가 우주 시계의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주비행사에 못지 않은 여러가지 테스트에서 통과해야 우주 시계라는 영광스러운 자격을 얻었다. 

시계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에는 우주비행사가 어떠한 시계를 착용했는지 크게 관심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우주 시계가 과학의 발전사에 있어 한 부분을 채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과 스투르만스키 시계
1961년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유인 우주선인 보스토크 1호에 탑승하기 직전의 모습. 하단 사진은 오늘날 판매되는 스투르만스키 가가린 모델.
18일 업계에 따르면 최초의 우주 시계는 다름 아닌 러시아(구 소비에트 연방)의 ‘스투르만스키(Sturmanskie)’ 시계다. 스투르만스키 시계가 최초의 우주 시계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1961년 4월12일 처음으로 우주로 나간 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착용한 시계였기 때문이다.

유리 가가린은 소련의 첫 유인우주선 계획인 ‘보스토크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로 우주로 나간 비행사였다. 당시 미국보다 우주경쟁에서 우위에 있었던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에 이어 세계 최초로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무사히 생환한 유리 가가린은 소련의 영웅은 물론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가 우주로 나가면서 “가즈아(Поехали)!”라고 외친 것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우주는 매우 어두웠으나, 지구는 푸르렀습니다(небо очень и очень темное, а земля голубоватая)”라고 말한 것은 역사에 남았다.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에 나가면서 착용했던 시계는 ‘항해자’라는 뜻을 가진 스투르만스키 시계였다. 가가린은 1957년 소련 공군 비행학교를 졸업할 때 소련 공군 전용으로 제작된 이 시계를 선물로 받았다.

가가린이 착용했을 때만 해도 스투르만스키 시계는 독립적인 브랜드가 아닌 ‘모스크바 시계 공장 1호’에서 만든 모델로, 일반인에게는 판매되지 않은 시계였다. 가가린의 스투르만스키 시계는 우주에서 고장 없이 완벽한 성능을 발휘했고, 지금은 모스크바 우주비행 기념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스투르만스키 '가가린' 시계 언박싱(Unboxing).
소련이 사라진 후 스투르만스키 시계는 독립적인 브랜드로 살아남았다. 또한 이 시계 브랜드는 1961년 당시의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헤리티지 디자인의 시계를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시계에 ‘가가린’이라는 이름과 그의 초상화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인 시계 제조사다.

최근 해외직구로 구한 스투르만스키 가가린 모델은 다소 클래식 한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또한 유리 가가린이 착용한 스투르만스키 시계는 33mm의 비교적 작은 크기였지만, 오늘날 유행에 따라 40mm 크기로 구입했다. 성능이야 오늘날 스마트워치에 비교할 순 없지만, 뒷면에 새겨진 유리 가가린의 초상화는 최초의 우주 시계라는 사실을 간직하고 있었다.

◆최초로 달에 간 ‘아폴로 계획’과 오메가 ‘문워치’
1969년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처음으로 달에 갔던 미국 우주 비행사 버즈 올드린의 모습. 그의 손목에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문워치'가 착용됐다.
처음으로 우주에 나간 시계가 스투르만스키 시계라면 처음 달에 간 시계이자 가장 유명한 우주 시계는 ‘오메가 스피드마스터’(Omega Speedmaster)다.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선 ‘문워치’(MoonWatch)로 잘 알려져 있는 모델이다.

문워치는 처음에는 자동차 경주를 위한 시계로 탄생했다. 시계에는 특정 구간의 평균 속도와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타키미터’(Tachymeter) 기능이 탑재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명품 기계식 시계로 평가 받았겠지만, 스피드마스터라는 이름이 특별해진 것은 1962년 미국의 ‘머큐리 프로젝트’ 부터다.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우주인이 가혹한 우주 환경에서 착용할 시계가 필요하다고 판단, 정부 주도 하에 우주탐사에 사용할 손목시계 선정에 들어갔다. 개인의 시계를 그대로 가지고 우주로 갔던 유리 가가린 때와 대조적이다.

NASA는 1964년 오메가를 비롯한 롤렉스(Rolex), 론진(Longines), 부로바(Bulova), 미도(Mido), 해밀턴(Hamilton) 등의 시계를 테스트했다. 테스트 항목은 말할 것도 없이 ‘정확성’이 우수해야 했고, 어두운 우주에서 쉽게 시간을 읽을 수 있는 ‘가독성’이 뛰어날 것과, 스톱워치 기능의 ‘크로노그래프’를 탑재해야 했다. 또한 고온과 저온, 고기압과 저기압, 습도, 진동과 충격 등을 버틸 수 있어야 했다. 수 많은 조건을 부합하는 시계는 바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였고, ‘문워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NASA의 모든 테스트를 통과한 후 작성된 보고서. 우측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실버 스누피 어워즈 에디션 2020'.
오메가 문워치는 1969년 7월 아폴로 프로젝트에 따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갔던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마이클 콜린스에게 지급됐다.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은 자신의 문워치를 착륙선에 놔두고 내렸고, 두 번째로 달에 내린 버즈 올드린의 오메가 문워치가 첫 번째로 달에 도착한 시계로 기록됐다. 또한 우주공간에 직접 노출된 첫 번째 시계로 남았다.

오메가에서는 스피드마스터 모델을 우주 비행 적합 판정을 받은 스펙과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오늘날에도 ‘문워치’라는 마케팅으로 판매하고 있다. 또한 오메가는 NASA의 비공식 마스코트인 만화 <피너츠>의 캐릭터 ‘스누피’를 시계에 넣은 에디션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또 다른 ‘문워치’ 부로바… 다양한 우주 시계들
부로바의 '루나 파일럿'. 최초로 달의 표면을 탐사한 시계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이외에 ‘문워치’로 인정을 받는 것은 미국 시계 브랜드 부로바의 ‘루나 파일럿’(Lunar Pilot)이다. 1971년 최초로 달의 표면을 탐사했던 아폴로 15호 선장 데이비드 스콧은 지급받은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유리가 파손돼 개인이 미리 준비했던 백업시계로 빈자리를 채웠는데 이 시계가 부로바의 루나 파일럿이었다. 

오늘날에도 부로바 시계는 자사의 루나 파일럿을 ‘문워치’로 홍보하고 있다.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데다가 가격도 오메가에 비해 월등하게 착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시계 크기가 45mm로 상당히 큰 점은 손목이 비교적 작은 한국 시장에서 단점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미국의 우주비행사 피트 콘래드는 1965년 제미니 5호와 1966년 제미니 11호에 탑승하면서 오메가 시계가 아닌 ‘글라이신 에어맨’(Glycine Airman)을 착용했다. 글라이신은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계 브랜드이지만, 1960년대 제미니 계획 때만해도 오메가와 비슷한 위상을 가진 시계 브랜드였다.
우주비행사 피트 콘래드가 착용했던 글라이신 '에어맨' 모델.
또한 일본 시계 브랜드인 세이코(Seiko)의 ‘6139 모델’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시계로 꼽힌다. 1973년 미국의 첫 번째 우주정거장 프로젝트에 따라 스카이랩 4호에 탑승했던 윌리엄 포그는 자신의 세이코 시계를 비공식적으로 차고 갔다.
세이코 '포그' 6139 모델.
세이코 시계 이전 오메가를 포함한 우주시계는 중력의 힘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손으로 태엽을 감는 ‘수동식 크로노그래프’ 시계였다. 하지만 세이코 시계는 우주에서도 태엽을 감지 않아도 작동하는 첫번째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시계로 기록됐다. 노란색 다이얼이 인상적인 이 세이코 시계는 착용자의 이름을 따 ‘포그’(Pogue)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지금은 단종된 상태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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