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Z 신병들은 군대에서 미술 치료 받는다던데… ‘부대 안의 미술관’ 차린 윤수진 작가
“6년 전 이맘때였죠. 군대에 간 큰아들이 첫 휴가를 나와 힘없이 고개를 떨구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순간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죠.”
지난 2일 오후 본지와 만난 윤수진(52) 작가는 지난 9월 말 출간한 자신의 저서 ‘명화, 병사에게 말 걸다’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윤 작가는 지난 2019년부터, 군 입대 후 신병교육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 받은 전입신병들을 대상으로 미술 치료를 진행한 뒤 이를 바탕으로 지난 9월 책을 냈다.
윤 작가가 미술 치료에 나선 계기는 지난 2017년 아들의 군 입대였다. 훈련소에서 반장까지 맡으며 원만하게 군생활에 적응하는 줄만 알았던 아들. 평소 쾌활한 성격의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고 2개월이 지나 첫 휴가를 나와 “더 이상 군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며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윤 작가는 군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들을 지켜보며 신병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그 전까지는 부적응병사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는데, 적응과 부적응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한 뒤 ‘들꽃그림 화가’로 활동했던 그는 이를 계기로 미술 치료 공부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인하대에서 인문융합치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윤 작가는 해당 과 초빙교수가 됐다. 윤 작가는 “그동안 그림을 그리면서 저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심리를 치유하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윤 작가의 저서인 ‘명화, 병사에게 말 걸다’에서는 병사들이 미술 작품을 통해 어떻게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미술 치료는 병사들이 명화를 감상한 뒤 이를 통해 느낀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을 직접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바스키아의 그림 ‘무제’를 본 병사 A씨는 “제 마음과 비슷해 보여 이 그림을 골랐다”며 “(제가 그린 그림에) 몸에 빨간색을 칠한 이유는 선임에게 혼이 많이 나서 마음에 상처가 많기 때문”이라 토로했다.
병사 B씨는 샤갈의 그림 ‘나와 마을’을 본 뒤 자신과 여자친구를 겹쳐서 그리고 가운데 ‘보고 싶다’고 썼다. 그는 “여자친구 생각이 많이 나 이런 그림을 그렸다”며 “여자 친구가 많이 그립고 여자친구 생각이 군생활을 하는 데 많은 위안이 된다”고 했다.
쩡판즈의 ‘가면’을 감상한 또 다른 병사 C씨는 ‘웃는 입’이 강조된 그림을 그렸다. 그는 “군에서는 항상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거짓 웃음을 짓고 있어야 한다”며 “(군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진심으로 웃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근 육군은 윤 작가와 함께 55사단과 3사단 등에서 전입신병들을 대상으로 미술 치료를 진행했다. 윤 작가는 “MZ세대에게 국가는 ‘우연히 태어난 곳’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종속시키기보다는 개인적인 요소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며 “세대 특성에 맞는 군생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 강조했다.
윤 작가는 “명화를 감상하고 그리는 교육을 통해 병사들이 서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있다”며 “이는 병사들의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높여 우리 군의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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