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안방서 모처럼 亞太외교…中 견제보단 '관리' 부각
대선 앞두고 미중관계 '관리모드'로 전술적 변화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간판 외교 정책인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관련국을 상대로 모처럼 외교력을 집중 투입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연례회의 마지막 날인 이날 페루에 차기 의장 자리를 넘기는 행사에서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약속은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 아태지역 주요 동맹국들과 최대의 전략경쟁 상대인 중국이 참가하는 APEC 정상회의는 미국 입장에서 인도를 제외한 인·태전략의 주요 '아군' 국가들과 상대 진영 국가(중국) 정상을 두루 접촉할 수 있는 무대였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2개의 전쟁'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잠시나마 아태 국가 상대 외교에 전념할 기회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15일 샌프란시스코 교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1년만에 양자 회담을 했고, 1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회담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한 가운데 한미일 3국 정상간에 사진 촬영을 위한 짧은 교류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3자간 실질적 대화는 없었지만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을 통해 강화한 한미일 공조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또 APEC 계기에 열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한미일 등 14개국 참여)에서 IPEF 4개의 주제 가운데 '청정 경제'와 '공정 경제' 관련 협정이 체결된 것도 작년 IPEF 창립을 주도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성과였다.
급속도로 부상하는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출범 이후 외교 전략 측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려 했다.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와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와 IPEF 출범 등은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지난달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에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외교력을 분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APEC 정상회의 개최가 미국의 순번으로 돌아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홈그라운드에서 인·태 전략에 변함이 없음을 강조할 수 있었다.
다만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취지라 할 대중국 견제는 이번에 상대적으로 덜 부각시켰고, 대신 미중관계의 안정화를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장에서 수십 km 떨어진 우드사이드의 풍광 좋은 사유지에서 약 4시간의 짧지 않은 회담을 한 뒤 시 주석과 나란히 산책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이번 APEC 외교의 성격을 규정하는 상징적인 대목이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항하는 듯한 IPEF 차원의 '핵심광물 대화'를 창설한 대목 등에서 중국 견제의 의중이 읽혔고, 미중정상회담후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독재자'로 칭하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미국을 찾은 시 주석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체면'을 세워주고, '외교'를 하려 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대러 군사지원에 나서지 않도록 묶어두고, 중러 양국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중이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양한 대중국 견제의 틀을 마련한 상황에서 최근 성장세 둔화, 부동산 위기 등으로 고전하는 중국을 보면서 미국이 대중국 견제에 '전술적 숨 고르기'를 할 '여유'를 갖게 됐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또한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중관계가 파국으로 흐름으로써 '2개의 전선'(우크라와 중동)에 더해 중국과의 갈등 심화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피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가 있는 '중국 견제'의 큰 기조를 유지하며 경쟁에서의 우위는 이어가되, 미중관계를 노련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해가며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jh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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