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메이커] 비틀스, 영국 싱글 차트 1위 外
▶ 비틀스, 영국 싱글 차트 1위
비틀스의 마지막 신곡이 베일을 벗은 건 지난 2일 오후 11시. 1996년 '리얼 러브'를 발표한 이후 무려 27년 만에 마술처럼 등장한 비틀스의 신곡.
반 세기 전 해체된 후, 멤버 두 명이 고인이 된 비틀스가 신곡을 발표하자 전 세계 팬들의 관심이 집중됐는데요.
특히 신곡, <나우 앤드 덴>은 비틀스의 모든 멤버가 참여한 마지막 노래라고 밝혀 궁금증을 더했습니다.
반 세기 전 해체한 비틀스가 마지막 신곡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비밀은 <나우 앤드 덴>에 담긴 목소리에 숨어있습니다.
비틀스가 신곡을 발표할 수 있었던 건 바로 AI의 음성 복제 기술 덕분인데요.
<나우 앤드 덴>은 당초 앨범 '리얼 러브'를 만들 당시 함께 수록하려 했지만 존 레넌의 목소리가 피아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외됐습니다.
하지만 최근 AI가 레넌의 목소리를 반복 학습한 뒤 그의 목소리를 피아노 음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하면서 30대 청년 레넌과 80대인 폴 매카트니가 함께 노래하게 된 건데요.
AI 덕분에 현실에는 없는 새로운 비틀스가 탄생한 겁니다.
이제 80대가 된 매카트니는 지난해 미국의 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완성했는데요.
작고한 멤버 조지 해리슨의 1995년 기타 연주 등도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매카트니는 노래를 녹음한 후 초현실적인 경험이었다고 밝히며 레넌의 목소리가 아주 선명했고, 진짜 비틀스의 녹음이었다고 회상했는데요.
2023년에도 여전히 비틀스가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는 건 아주 신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신곡 발표도 모자라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요.
비틀스의 나우 앤드 덴이 오피셜 싱글 차트 톱 100에서 1위를 차지한 겁니다.
그들이 1위를 기록한 건 무려 54년 만인데요.
유튜브를 통해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도 1주일 만에 조회수 2,500만 회를 돌파하며 비틀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습니다.
▶ '전설의 롤렉스' 주인 오지환
"한국시리즈 MVP에게 전해달라…". 고 구본무 LG 선대회장이 25년 전 값비싼 롤렉스 시계를 구매한 후 남긴 메시지입니다.
1998년 구 선대회장은 LG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야구 우승을 간절히 기원하며 당시 8천만 원 상당의 고가 명품 시계를 구입했는데요.
하지만 LG트윈스가 번번이 우승과 연을 맺지 못하면서 구 선대회장은 끝내 LG트윈스의 우승을 지켜보지 못한 채 지난 2018년 눈을 감았습니다.
롤렉스 시계 역시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구단 금고에 오랜 시간 보관돼 왔는데요.
드디어 25년 만에 시계가 주인을 찾게 된 겁니다.
구본무 LG 선대회장이 남긴 시계의 주인공은 2023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오지환 선수!
오지환 선수는 지난 8일 경기에서 3연속 경기 홈런을 치며 단일시즌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 경기 홈런 신기록도 세웠는데요.
맹활약한 덕분에 기자단 투표에서 90표 중 무려 83표를 받는 압도적인 지지로 영광의 MVP 자리에 올랐습니다.
오지환 선수가 오랫동안 금고에 갇혔던 LG 구단의 시계 주인공이 되자 그와 LG의 깊은 인연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LG가 준우승을 한 2002년 LG 팬이 된 오지환 선수, 입단 전부터 '유명한 LG팬'이었습니다.
고교 3학년이던 2008년에는 소셜미디어에 "빨리 가고 싶다 LG 트윈스여!"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이후 실제 LG가 오지환 선수를 택하면서 오지환 선수와 LG의 오랜 숙원이었던 우승까지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계의 주인공이 된 오지환 선수, 롤렉스 시계 소식이 전해지자 의외의 반응을 보였는데요.
"해당 시계는 선대 회장의 유품이라고 생각한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으면 한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시계를 기증함으로써 LG트윈스 우승의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영원히 역사의 한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는 큰마음을 보여줬습니다.
▶ 전보, 1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전보는 우편보다 더 빠르게 소식을 전달할 수 있어 19세기와 20세기, 급한 소식을 알릴 때 주로 사용되던 통신수단이었는데요.
1965년 시외전보료는 10글자에 50원, 당시 라면 한 봉지가 1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때문에 글자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게 중요했는데요.
간략히 보내려다 보니 주로 한자어를 사용해 뜻을 전달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차마 웃지 못할 전보 오기 사고가 발생해 재판이 열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모친 상경'이라고 친 전보가 전신국의 실수로 '모친 사망'으로 전달되면서 아들이 장례를 준비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요.
이후 잘못임이 밝혀지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이후 재판부는 "45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리기도 있었습니다.
그럼 국내에서 첫 전보를 보낸 건, 언제일까요?
국내에서의 첫 전보는 1885년 당시 한성전보총국이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보를 보낸 게 처음이었는데요.
광복 이후에는 체신부와 KT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서비스가 이관돼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전자우편과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이용량이 급격히 줄었고 2010년대부터는 경축용이나 선물용으로만 명맥을 유지해왔는데요.
전보 서비스는 세계적으로도 종료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06년 전보 서비스를 종료했고 독일 역시 올해 1월부로 서비스를 중단했는데요.
국내에서 전보 서비스를 맡아왔던 KT도 다음 달 15일부로 전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전보를 대체할 수 있는 우체국의 경조 카드 등 유사 서비스는 남아있는데요.
13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지는 전보, 하지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던 그 온기의 역사는 또 다른 통신수단을 통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주간 뉴스메이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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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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