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에요 어머니…" 일산 지역 초교 학폭사건과 담임의 눈가림 [단독인터뷰]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피해학생 아버지 단독인터뷰➊
11명 동급생 장애학생 폭행
오히려 가해학생 두둔한 학교
틱 증상 이유로 꾸준한 따돌림
따돌림 사실상 방치한 학교
‘쌍방폭행’ 운운하며 진실 감춰
프레임 짜기 위한 설문조사까지
피해학생 父의 눈물 섞인 호소
# 한가지 가정을 해볼까요? 당신의 초등학생 아들이 10여명의 동급생에게 둘러싸여 집단폭행을 당했습니다. 평소 '틱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왔는데, 끝내 '학교폭력'으로 이어졌습니다.
# 작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은밀하면서도 무서운 학폭 사건에 'TV 속 일'이라고만 여겨왔던 당신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부모라면 "잘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할 겁니다. 학계와 미디어에서 학폭 문제를 수없이 다뤘을 뿐만 아니라 교육 당국도 해결책을 쏟아냈으니까요.
# 그런데 이게 웬걸, 담임교사는 아들을 보듬긴커녕 "네가 때렸지"라면서 몰아세웁니다. 당신에겐 "아들이 폭행한 아이의 부모에게 빨리 연락해서 사과하라"고 종용합니다. 학교의 관리자인 교감은 쌍방폭행을 운운하면서 대안학교로의 전학 얘길 꺼냅니다. 가해학생은 교실에서 아들의 틱 증상 때문에 불편했던 일을 적으라면서 설문조사지를 돌립니다. 어떤가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실 건가요?
#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가정假定'이 아닙니다. 일산에서 벌어진 '초등학생 집단폭행 사건'의 실제 스토리입니다. 학폭이란 참담한 현실에 분노해 '소송'이란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일산 지역 초등학교 집단폭행' 사건의 피해학생 아버지 A씨를 만났습니다.
"저는 평소에 엄한 아빠였습니다. 아이가 정을 원할 때도 모질게 대할 때가 많았죠. 남자니까 몸과 마음이 단단하게 컸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모조리 후회가 되더라고요. TV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보도될 때만 해도 '애들끼리 일인데 서로 사과하고 잘 마무리하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 가족이 당사자가 되고 나니 저는 참 못난 아빠였습니다. 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짐작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게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지난 8월 29일, 일산 고양시 초등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학년 동급생 11명이 학생 1명을 집단폭행했습니다. 이른바 '일산 초등학교 집단폭행'으로 일컬어진 이 사건은 신문과 방송에서도 조명을 받았습니다.
더스쿠프가 이 사건의 피해학생 아버지 A씨를 직접 만났습니다. A씨는 "언론에 드러난 것 외에도 심각한 부조리가 있었다"면서 "절망적인 건 우리 아이가 끔찍한 폭행을 당했음에도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한탄했습니다.
✚ 괴로운 기억이겠지만, 폭행 당시의 정황을 설명해 주시겠어요.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내가 '이거 한번 들어봐'라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이 담임교사와의 통화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이었어요. 요약하면 우리 아이가 하교하는 도중에 동급생 10여명을 때렸다는 거예요. 그중 심각한 피해를 입은 부모가 화가 단단히 났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담임교사는 그러면서 '빨리 사과해야 한다'고 종용했습니다."
✚ 아이가 피해를 본 게 아니었나요?
"당시 녹취록에 담긴 교사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지금 대박이에요, 정말로. 근데 제일 세게 맞은 애가 제가 봤을 때는 옆 반에 ○○거든요.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사과하셔야 할 거 같아요.'"
✚ 언론에서 드러난 사건과는 정반대의 설명이군요.
"처음엔 기가 찼습니다. 아들이 덩치가 큰 것도 아닌데요. 10여명을 한꺼번에 때렸다는 게 납득이 안 됐어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애가 시라소니야?' 그때만 해도 장난치듯 친구 여러 명과 치고받다가 어떤 사고가 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었죠. '아니야, 나 억울해. 맞기만 했어. 때리는 걸 막다가 어떻게 했을진 몰라도 때리려고 한 게 아니야.'"
누가 진실을 말했을까요? 놀랍게도 아이입니다. A씨의 아들 B군은 여러 동급생으로부터 폭행을 당했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조치결정 통보서에서 드러난 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당일 체육시간이었습니다. B군의 학급은 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피구공을 활용한 따돌림이 벌어졌습니다. 몇몇 학생이 B군에게 공을 던진 겁니다. "…가해학생은 체육시간에 B군에게 동시에 공을 던지는 행위로 괴롭힘을 느낄 정도의 불쾌감 등의 정신적 피해를 준 부분이 인정된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B군도 공을 던졌는데, 실수로 당시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가 맞았습니다. 동급생들은 '체육교사에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하굣길에 B군을 붙잡았습니다. 이때 B군이 저항했고, 집단폭행이 발생했습니다. B군이 진술한 폭행과 따돌림의 강도는 더 심각했지만, 학폭위 조치결정 통보서에서 인용한 내용만 추리면 이렇습니다.
"하굣길에 B군의 신체를 붙잡아 가지 못하게 하는 폭력행위가 벌어졌다. 주변 친구들에게 폭력행위의 도움을 요청해 다수의 학생이 집단위력 행사에 참여했다. 주변의 도구(우산)를 이용해 머리와 어깨 등 신체를 가격해 신체적 상해를 입혔다. 머리를 때리거나 책가방과 팔을 잡고 가지 못하게 막은 부분도 인정된다."
11명의 학생은 B군에게 신경외과 2주, 정형외과 2주 진단이 나오는 상해를 입혔습니다. B군은 정신적 충격도 컸습니다. 현재 아동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의사는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습니다.
✚ 우발적인 사고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사실 아들이 5학년으로 진학한 이후론 교우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짐작하자면, 아마 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은 투렛증후군(Tourette syndrome)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흔히 '틱 장애'로 불리는 그것입니다."
✚ 아이가 더 힘들었겠네요.
"사건 직후 말하더군요. '아빠 나 틱 장애 있잖아. 애들이 나 싫어해도 괜찮아. 내가 이상한 소리를 낸 거니까. 내가 잘못한 거잖아. 그래도 나는 애들 다 용서하고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어. 난 이제 친구가 아무도 없어.'"
✚ 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자책했군요.
"그땐 정말 숨이 멎을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혼자 주차장으로 가서 차 안에서 문을 잠그고 펑펑 울었습니다. 몇년을 끊었던 담배도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해자 부모에게 찾아가 무릎 꿇고 호소하고 싶었습니다. 폭행은 없던 일로 할 테니 제발 우리 아들과 편견 없이 놀게 해달라고요."
✚ 그런데 사건 이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담임교사가 '아들이 때렸다'라고 연락을 한 것부터 낌새가 이상했습니다. 교사와 가해학생 부모가 '쌍방폭행'으로 몰아가려는 시도가 엿보였어요. 사건이 일어난 직후, 아들과 담임교사가 통화를 했습니다. 이때 담임교사의 말에 그런 뉘앙스가 물씬 풍겼습니다. 녹취를 그대로 옮겨보기면 이렇습니다. '도망가지 마. 집에 갈 때 왜 자꾸 도망을 가. 네가 도망가니까 애들이 잡으려고 더 한다고… (너도 때렸다는 걸) 발뺌하고 아니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알지….'"
✚ 확실히 가해학생 측을 두둔하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집단폭행이 벌어진 뒤, 가해학생 중 한명은 교실에서 동급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돌렸어요."
✚ 설문조사요?
"내용은 황당하게도 'B군에게 피해당한 사실을 쓰시오'였습니다. 정치판 선거를 앞둔 것도 아니고, 이런 조사지가 초등학교 교실에서 돌아다니는 걸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5학년 학생이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리도 없고, 이를 교사가 방치하는 건 더더욱 납득할 수 없었고요. 아마 가해학생 부모와 교사는 '쌍방폭행'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아,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가 당하겠구나'고 직감했습니다."
✚ 이런 일들도 아이에겐 큰 충격이었을 텐데, 지금 B군은 어떤 상황인가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조치는 아니라는 겁니다."
✚ 그러면 왜 등교를 하지 않고 있죠.
"처음 집단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땐, 아이는 학교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잘못한 게 없으니 떳떳하다'면서요. 저는 이를 존중했고, 며칠은 나갔어요. 그런데 그새 학부모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우리 아이의 틱 증상 때문에 같은 반 학생들이 수업방해를 받고 있고, 이 때문에 우리가 전학을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었죠. 자칫 학교를 보내 수업을 참가하게 했다간, 꼬투리가 잡힐 것 같았습니다."
✚ 아이의 틱 증상과 폭행사건은 별개의 문제인데요.
"사실 집단폭행 사건도 '작은 파편'에 불과합니다. 학폭위를 통해 처분이 이미 나왔고, 대부분의 가해학생과 부모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도 받았어요. 다만 저는 따돌림과 폭력을 막지 못한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따져보니 구조적인 이유였습니다. 제가 언론에 호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학교와 제도권 시스템이 우리 아이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으니까요."
학폭 사건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입니다. 고위공직자들이 직職을 내려놓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죠. 유명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도 학폭에 연루되면 운동장이나 스크린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하지만 학폭을 예방하는 시스템도, 학폭 피해학생을 위한 구제책도 아직 미흡하기만 합니다.
학폭을 당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하지 않은 학교가 숱할 정도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교육 당국과 학교가 학폭 가해자에게 엄정한 처분을 내리고 있는지 의문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버지 A씨와 그의 아들 B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현재 A씨는 B군의 따돌림을 주도한 가해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 그리고 담임교사와 교감선생, 기사에 조롱하는 악플을 단 누리꾼을 대상으로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특히 A씨가 분노한 건 학생의 방패 역할을 해줘야 할 학교 측이 혐오와 차별을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더 자세한 얘기는 '일산 초등학교 집단폭행 사건 피해학생 아버지 단독 인터뷰 두번째 편'에서 들어보겠습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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