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의 문은 결국 거대 양당의 무능이 열어주는 것”

정용인·김찬호 기자 2023. 11.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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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총선 전, 신당 창당 가능성 전망’ 좌담회
지난 11월 12일 열린 ‘신당’ 관련 좌담회. 왼쪽부터 김경율 회계사, 한지원 새로운선택 정책위원장,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한국 정치에서 제3지대에 대한 열망은 신기루와 같다.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가 어느새 실체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선거 때만 되면 ‘새로운 대안’을 자처하는 정당이 우후죽순 생기지만, 이들도 끝내 사라지고 말 것임을 유권자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결국 남는 것은 이름만 바꿔가며 존속하는 보수, 진보를 대표하는 그 거대 정당들뿐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정당을 지지하느니 ‘미워도 다시 한 번’, ‘울며 겨자 먹기’ 심정으로 양대 정당 중 하나를 찍는 것이 정치 무력감을 줄여주는 그나마 나은 선택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레바퀴가 선거를 앞둔 ‘정치의 계절’이 찾아오면 고장도 없이 어김없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늘 그렇듯 없던 선택지가 생기며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신당’ 바람이 불고 있다. 역시나 기존 정당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주역이다. 결과가 보이지만 그렇다고 지켜보지 않을 수도 없다. 유권자들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제3의 선택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정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이마저도 외면한다면 기존 정치권에 ‘경고’를 보낼 수단이 딱히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좋든, 싫든 국회의원 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 누가 스스로 대안을 자처하는지 등을 한번쯤 정리해볼 때다. 주간경향은 정치권의 동향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는 이들을 수소문했다. 그 결과 지난 11월 12일 김경율 회계사,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지원 새로운선택 정책위원장 등이 모였다. 이들을 서울 경향신문 본사에서 만나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또다시 제3지대를 불러낸 기존 정치권, 책임은 지지 않고 일단 신당만 외치고 보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다.

한지원 “누구나 신당을 하나씩 만들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신당이 많아지는 것은 좋다. 그런데 신당을 만들겠다고 나선 인물들이 충분한 성찰과 모색을 거친 뒤 결정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진보 진영만 봐도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반윤석열 세력과 다음 대권을 노리는 세력이 진보의 재구성을 내걸고 신당을 추진하고 있다. 중도 좌파, 우파 하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모여서 신당을 만들겠다는 것인지도 모호하다.”

최병천 “신당 추진은 잘 안 될 거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신당들은 대부분 ‘여집합’ 신당이다. 가장 큰 특징은 우리 사회에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고, 원인은 이것인데, 어떻게 고쳐보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정치라는 산업이 존재하고, 이 산업계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신당을 제대로 추진하려면 적어도 비전, 세력, 인물 이 세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금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준석 신당에는 인물, 그리고 이준석을 지지하는 2030 남성이라는 지지 세력은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비전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이 전 대표가 ‘탈냉전 스마트 세력’의 세대론적 열망을 대표하는 정도다. 나머지 신당은 이것마저 없다. 단순히 윤석열이 싫다, 이재명이 싫다 정도가 전부다.”

한지원 새로운선택 정책위원장이 지난 11월 1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중도연합이든, 양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모인 여집합이든 반드시 고민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신냉전 시대의 경제와 안보 문제다. 두 번째는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대한 고민이다. 세 번째는 대통령제 개혁 문제다.” -한지원 새로운선택 정책위원장

한지원 “지금은 비전보다 여집합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신당은 여집합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싫어서 연합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세력을 형성하고 사람들의 기대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세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전 이야기해 봐야 듣는 사람이 없다. 그나마 반응이 오는 것이 비윤, 비명을 외치는 반대 세력들 아닌가. 다만 중도연합이든 양당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모인 것이든 반드시 고민해야 할 세 가지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신냉전 시대의 경제, 안보 문제다. 한·미·일 동맹을 단순한 애국 차원이 아닌 현대적 실익 차원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저성장 고령화 시대에 대한 고민이다. 이미 저부담, 고복지는 불가능해졌다. 중부담, 중복지로 이행할 때 자신들이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느냐다. 마지막 세 번째는 대통령제 개혁 문제다. 내각제로의 이행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국회를 더 싫어하는 상황이다. 국회가 어떻게 정치적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준석 신당도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준석은 페미니즘, 장애인 문제 등을 갈라치기하며 성장했다. 신당은 ‘제3지대에서 다 모이자’는 흐름으로 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자신의 태도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기존 태도를 고수한다면 모두가 함께 모이는 신당이 가능할지부터 의문스럽다. 설사 모이더라도 곧 크게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이 지난 11월 1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논의되고 있는 신당들 대부분 ‘여집합’ 신당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고쳐보자는 생각이 없다. 단순히 비윤, 비명만 외친다. 신당 추진이 제대로 되려면 비전, 세력, 인물 세 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

최병천 “신당으로 모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장애인 문제 등에 대한 인식 차이가 고민거리가 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총선에서 흥행하기 위해 이준석이 필요로 하는 사람, 이준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냐는 것이다. 정치에서 갈라치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에도 경제성장이냐, 빈부격차냐. 외세냐, 민족해방이냐 하는 식으로 갈라져서 대립하지 않았나. 다만, 어떤 내용으로 갈라치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갈라쳐야 한다. 이렇게 정책을 매개로 갈라치는 것은 정치의 ‘꽃’과 같은 것이다. 이준석의 안티 페미니즘도 새로운 우파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역시 2030 남성들 일부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이준석은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서 결합했다고 봐야 한다.”

김경율 “이준석이라는 브랜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안티 페미니즘 정도밖에 없지 않나.”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지난 11월 1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준석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복수의 정치,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잘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리더들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자기 뜻을 꺾어가며 정치를 했다. 이준석의 정치에서 그런 것을 느끼기는 어렵다.” -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 “이준석의 안티 페미니즘과 보수 우파를 동일선에서 이야기하는데 이건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과거처럼 노동, 인권, 평화를 주장하면 진보이고 자본, 전쟁을 말하면 보수라고 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표적 사례가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이 페미니즘을 말한다. 또 해마다 열리는 퀴어 축제에 미국 공화당·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주한 미국대사가 지지를 보낸다. 그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 전 대표가 보편적 권리문제를 두고 갈라치기로 악용했을 뿐이다. 확장성을 가지려면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나 금태섭 전 의원과 이런 부분에서 차이를 줄이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가 태도를 바꾸라’는 식으로 하는 것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역사를 100년 정도 후퇴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지원 “페미니즘 문제는 미래와도 관련이 있다. 역사를 시계열적으로 보면,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쟁점은 계급 문제였다. 진보와 보수가 계급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를 두고 갈라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결과 혁명이 발생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으로 오면서 새롭게 여성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인구 문제가 생겼다. 지금 대부분의 나라가 저출생 문제를 고민하는데 그 해결 방식은 여성이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갖도록 보장하고, 더 나아가 남성이 가사 양육에서 기존 여성의 역할을 함께하는 방향에서 찾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 북유럽 등의 선진국이고, 못하고 있는 쪽이 남유럽 및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이준석과 지지층을 새로운 스마트 우파라고 하는데 오히려 좀 순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를 미래 지향적으로 풀어나가기보다 뭉개고 가는 느낌이다. 신당이 이 문제를 뭉개면서 모이더라도 한 번 논쟁이 시작되면 싹 갈라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김경율 “말씀을 듣다 보니 노벨 경제학상을 탄 아마르티아 센이 말한 ‘역량’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이준석이 가장 빛났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대구에서 당대표 출마 연설을 했을 때다. 개인적으로 보수정당 대표 후보가 저런 연설을 할 수 있나 싶어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북한 방송을 개방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보수가 추구해온 자유라는 가치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가치문제가 아닌 말 한마디로 평가받으려는 것 같다. 최근 이준석이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게 영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개인적으로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이제는 이준석이 정치인보다 정치 아이돌이 되고 싶나 보다 했다. 여전히 조국, 윤미향 문제에 얽매이는 민주당, 정의당도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국민이 마주한 생활 현안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데 단순히 ‘말의 인플레’를 만들며 평가받으려는 듯하다.”

김경율 회계사가 지난 11월 1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진행된 주간경향 좌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준석이 보수가 추구해온 가치를 잘 보여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말 한마디로 평가받는 ‘정치 아이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민주당·정의당도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각 당이 극단화·화석화될수록 신당 가능성은 커진다.” - 김경율 회계사

최병천 “이준석은 진보의 미션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다른 궤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를 복귀해보면 네 가지 성과가 있었다. 나라 만들기, 압축 산업화, 압축 민주화, 압축 복지국가다. 자본주의를 할 것이냐, 사회주의를 할 것이냐를 의미하는 나라 만들기, 산업화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달성할 것이냐는 보수 우파가 승기를 가져갔다. 반면 민주화,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은 진보 좌파가 주도했다. 이 네 가지 성공을 합치면 ‘선진국’ 세 글자로 줄일 수 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각자의 성과를 상대로부터 인정받기 원한다. 이준석, 천하람을 필두로 한 세력은 민주화, 복지국가의 공을 인정하며 대안우파가 됐다. 이는 ‘탈냉전 스마트 좌·우파’의 생각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2030 남성 세대에게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을 물어보면 ‘박정희, 노무현’이라고 답한다. 이승만, 박정희의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잘한 것을 인정하는 세대다. 구닥다리 좌·우파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신들의 존립기반인 ‘과거’를 부정하는 짓이다 보니 인정할 수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준석과 과거를 쟁점화시켜 먹고사는 정치인들을 한데 묶기는 어렵다고 본다.”

한석호 “보수가 진보의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이 이준석만의 특징이라고 보진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한국 보수와 진보로는 잘 해석이 안 되는 인물들이다. 한 장관은 강연에서 농지개혁을 언급하며 이승만과 조봉암을 함께 말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풀지 못했던 인혁당 문제를 풀어내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기존 보수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오히려 이준석만의 특징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복수의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잘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뛰어난 리더들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자기 뜻을 꺾어가며 정치를 했다. 이준석의 정치에서는 그런 것을 느끼기가 어렵다. 함께해서 당장의 성과는 좀더 크게 낼 수 있을지 몰라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난장판이 되는 식이다. 윤 대통령 당선 이후 상황이 신당에서도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 당장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자기 정체성 없이 단순히 반윤, 반명 해서 모이는 것은 지속성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진보 진영에서는 이러한 인물, 사건조차 나타나지 않는 상황이다.”

김경율 : “진보 진영을 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퇴진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나. 스스로 민주, 진보를 자임하는 현역 의원이 윤석열 퇴진 집회에 나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선출된 것 아닌가. 집권 한 달도 안 돼 불법적인 것이 발견되지조차 않았는데 퇴진을 외쳤다. 민주당이 한동훈 장관이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하려고 하는 것 역시 진보적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윤석열 정부가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우경화도 매우 심각하다.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고 과거 MB 정부 인사들이 돌아오고 하는 것은 우려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이용해 민주당도 공생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진보의 역할을 정말 고민한다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 비판할 지점을 좀 제대로 찾아서 비판해야 한다.”

한석호 “민주당, 정의당 등 진보의 대표주자를 자임하는 세력이 시대적 문제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주택, 인구 문제, 기후 문제, 정치개혁 문제 등이다. 특히 주택 문제 같은 경우 자기들이 심화시키기까지 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안에 있는 이들이 수혜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에서 진보 진영이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해결책을 못 내놓았다. 진보세력이라고 하려면 지향점을 갖고 실질적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진보라고 하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당이 됐고, 정의당은 불평등에 무기력한 정당이 돼버렸다. 우리나라 민주당이 유럽의 보수당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아닌가. 단순히 ‘윤석열 정부는 검찰독재다. 민주 대연합 빅텐트를 쳐서 선거를 이기자’는 주장밖에 안 보인다.”

최병천 “유럽 사민당과 노총은 오랫동안 집권 파트너로서 함께 있었다. 그래서 노총도 집권당 마인드로 정책을 설계하는 편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을 보면 민주당은 야당 생활에 익숙하고, 노총은 반체제 운동 집단에 가깝다. 정당과 노총 모두 규탄대회 중심의 형태에 익숙하다. 이렇게 되면 정책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모여서 ‘네가 해결해’라고 외치기만 하면 그만이다. 심지어 문제의 원인 분석 자체도 엉터리다. 원인 진단을 꼼꼼하게 해서 우리 사회에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도 하고 대안도 찾아야 하는데 이런 것을 못 한다. ‘최저임금을 2만원, 3만원으로 올리면서 아무런 부작용도 없게 하라’는 식이다. 한국 진보의 정책 생태계 자체가 엉망진창이다. 보수가 주류이고 해결도 너희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역사를 생각해보면 진보 진영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입법부와 행정부를 동시에 장악했을 때다. 이러면 항상 정권을 뺏겼다. 권력은 잡았는데 만들고 싶은 세상이 없으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냥 규탄대회 진보다.”

한지원 “정치가 양극화하면 중도정치에 기회가 생긴다. 신당이 고민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도 주구장창 싸우는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형성된 와중에 어떻게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적합한 대안을 제시하느냐에 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어떻게 유권자에게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중도 진영의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일이다.”

최병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제3 정당의 기반을 키운다. 민주당 안에서 왼쪽에 있는 사람, 국민의힘 안에서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정치 양극화를 이끈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세력을 싫어하는 유권자도 분명히 있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제3지대 지지기반을 키워주고 있는 셈이다. 유권자들을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면,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권자, 싫어하는 유권자, 이도 저도 아닌 유권자들로 그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김경율 “결국 신당 가능성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지금처럼 각 당이 극단화되고 화석화된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도 신당 가능성은 대단히 커질 수 있다. 이 부분을 치고 들어가는 세력이 나올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다.”

한석호 “신당은 나올 것 같다. 이준석도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이 대구나 안정적으로 당선 가능한 곳에 공천을 준다면 몰라도 지금 그런 상황도 아니지 않나. 서울 노원이나 강서처럼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의 공천 약속으로는 남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늘 해왔듯이 민주진영 대연합, 선거연합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생각한다.”

최병천 “신당 관련해서 유의미하게 지켜볼 것은 이준석 정도고 나머지는 이준석 신당에 참여해야 의미가 있지,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의힘에선 윤석열 대통령,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신당 규모나 파급력이 결정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윤 대통령이나 이 대표가 중도 확장을 하느냐 여부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70% 정도 확률로 이준석 신당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이준석 신당론’은 이준석에게 유리하고, ‘이준석 신당’은 불리한 구조다. 이준석의 목표는 다음 대선에서 유의미한 후보가 되는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총선은 과도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복당이 어렵지 않지만,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나가면 복당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 결국 이준석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개인적으로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나가는 것, 이를 두고 누구는 노원 탈출 전략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개인 당을 만들어서 복당도 용이하게 두는 것이다. 마지막은 가능성이 제일 낮다고 보는데 정말 새로운 세력들과 함께 신당을 만드는 일이다. 정치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 아닌가. 이준석 신당의 규모가 커질수록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중도 확장을 시도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주변 상황, 인물들을 활용해 신당 연기만 피우지 않을까 싶다.”

진행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정리 |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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