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언론이 이야기판을 까는 이유 [미디어 리터러시]
올해 초 ‘씨부려대구’라는 코너를 시작했다. 20~30대 패널들이 이태원 참사, 교권 침해 문제 같은 시사 현안부터 연애, 부동산 같은 잡담까지 주제를 정해 토론한다. 시민단체 활동가, 사회복지사, 교사, 자영업자,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이들이 코너를 거쳐갔다. 나는 뻗어간 이야기를 정리해 기사로 만든다. 진행자로서 주문하는 건 딱 하나다. ‘가능한 한 다른 데서 들은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대화 중 ‘나이가 어려서, 지방이라서’가 전제에 깔릴 때가 많다. 그 또한 자연스럽게 두고 기록한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 기초해 이야기하게 된다.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는 대구시의 복지제도에 대해 토론했다. ‘덕질’을 주제로 모인 날에는 매주 공연을 보기 위해 KTX를 타는 뮤지컬 덕후의 애환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홍준표 시장 홍보 매체로 전락한 대구시 공식 유튜브, 이대로 괜찮을까’ ‘대구에서 청년 활동가로 살아남기’처럼 아예 ‘대구’를 넣어 주제를 정하기도 한다.
사실 기자가 직접 사람을 모아서 기사를 쓰는 일은 드물다. 주로 토론회·집담회·간담회 등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취재를 간다. 출입처에서 열리는 일정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무엇보다 사람을 모으는 일은 번거롭다. 섬세하게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인물을 섭외해야 한다. 때로는 장소를 빌리고 진행자를 구하고 안내 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 그 결과물인 기사는 대부분 메시지가 간결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품은 드는데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기에 효율이 높은 취재 기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씨부려대구’를 계속하는 건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기 위해서다. 모임을 기획한 건 작년 겨울 또래들과 가진 술자리였는데, 각자 하는 일이 달라도 개인과 단체의 성장, 배움의 기회, 세대교체 등 하는 일이 달라도 고민은 비슷했다. 이들의 전문성과 경험이 더 많은 기회를 만났으면 했다. 곳곳에 흘러가는 말을 붙잡아 기록하면 거기서부터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막연하게 상상했다. 전국 이슈를 지역으로 끌고 오거나, 혹은 지역 이슈를 확장시키는 주제를 두고 토론한다면 콘텐츠의 경쟁력도 있을 거라고 봤다.
두 번째 이유는 취재원 확보다. 인터뷰 대상으로 매번 ‘쓰는 사람만 쓰는’ 언론이 문제라고 느꼈다. 정치·복지·여성·장애 등 이슈마다 기자들이 연락하는 인물은 정해져 있다. 업계 전반의 고질적 문제이지만 특히 비(非)서울은 풀이 더욱 적다. 언론이 ‘안전빵’을 고집하면서 문제가 더욱 고착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모임 패널을 섭외할 땐 ‘미디어 노출 빈도가 낮으면서 자신의 일이나 활동에 고민이 있는 사람’을 찾으려 노력한다. 시민단체 말단 실무자, 초임 교사 같은 이들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대학 내 모임 등 각 이슈와 관련된 단체에 알음알음 물어서 패널을 구한다. 실제 기사가 어느 정도 쌓이자 동료 기자, 지역방송 등에서 참가자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부탁이 오기 시작했다.
부지런히 마이크 수를 늘리는 ‘정공법’
현장이 생기지 않는다면 직접 이야기판을 까는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부산일보〉의 ‘산복빨래방’, 〈경남신문〉의 ‘심부름센터’ 같은 경우, 기자들이 직접 주민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모았다는 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담고 있다. 충북 옥천의 사회적기업 고래실이 발간하는 전국 유일의 군 단위 월간지 〈월간 옥이네〉가 시도한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은 더 본격적이다. 기자들이 직접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해 조례 제정 운동과 변화까지 만들어냈다. 〈경향신문〉은 이를 다룬 기사에서 ‘선수로 뛰는 기자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역 언론의 공론장 역할’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실체화한 보도들에서 난 절박함을 읽는다.
‘씨부려대구’를 계속하는 마지막 이유는 나를 위해서다. 주제마다 새로운 이를 섭외하며 ‘너, 내 동료가 돼라’는 마음으로 전한다. 지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래,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에 항상 지역 생태계의 안위를 살핀다. 주체들을 엮어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 궁리하게 된다. 결국 지역 언론이 살 수 있는 정공법은 부지런히 마이크 수를 늘리는 것이다.
김보현 (<뉴스민>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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