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로, 21km 마라톤 뛰며 본…'쓰레기'들[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3. 11. 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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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개씩 나오는 일회용 컵을 없애기 위한 '무해한 하프 마라톤' 도전기…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들렸던 "파이팅" 응원, 느리지만 멈추진 않았던 '꼴찌 동료'들, 41㎞ 지점에 놓인 '다회용컵' 급수대, 일회용컵 2만3000개 줄였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지요.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던 파란색 일회용컵들. 그래도 덕분에 일회용컵을 쓰지 않을 수 있었다. 고마운 텀블러. 물은 빼고 달리는 게 좋고, 급수대에서 받으면 된다./사진=잠깐 뿌듯하고 또 힘들었던 남형도 기자

"인도로 올라가세요, 인도로. 이제 차 다니기 시작합니다."

16㎞ 지점이었다. 경찰차 경고 음성이 확성기를 타고 뒤쫓아왔다. 교통 통제가 끝난 거였다. 숨을 헉헉대며 묵직해진 다릴 오른편 인도로 옮겼다. 뜨거운 땀방울은 눈을 찔렀고, 발목은 나무토막처럼 뻣뻣했다. 뛴다기보단 흡사 몸을 옮기는 느낌이었다. 인도 위 행인들을 피하며 생각했다. 앞선 주자들은 까마득히 멀어졌다. 삐죽삐죽 잡념이 올라왔다.

'어차피 꼴찐데 이리 뛰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

양화대교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웃음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곧 웃음기가 한강에 빠질 거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채. 텀블러를 들고 달리는 기자./사진=함께 텀블러를 들고 뛰었던, '에코런' 박상민씨

곁에서 뛰던, 속도가 비슷한 꼴찌 주자들. 더 뒤처질 것도 없는 이들. 그러나 멈추지도 않던 사람들. 그만 뛰고 싶은데, 발을 계속 움직이는 이들 때문에 또 나아가게 됐다. 그때였다.

예, 꼴찌 맞습니다./사진=뒤돌아 지하철 타고 싶은 남형도 기자...

"남형도 파이팅!"

빗방울에 젖은 바닥만 보며 뛸 무렵 불현듯 내 이름이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갤 들었다.

형광 옷을 입은 이름 모를 교통경찰관님이, 뛰던 날 응원하고 있었다. 가슴팍에 붙은 내 이름을 바라보고 환히 웃으며.

3월 봄, 엄청난 마라톤 쓰레기를 없애고 싶어서
올해 있었던 한 마라톤 대회에서, 너무나 많은 일회용컵 쓰레기가 나왔었다. 이리 많이 나오는지 처음 알았다./사진=황승용 와이퍼스 닦장 제공
'헉, 42.195㎞를 어떻게 뛰어….'

마라톤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었다. 저녁 산책도 큰 용기가 필요한데, 뛰다니, 심지어 그렇게 몇 시간씩 어떻게. 나와는 멀었던 얘기에 불을 지핀 사람. 황승용 와이퍼스(Wiperth) 닦장(38)이었다. 지구를 깨끗하게 닦겠단 사람. 그런 뜻을 가진 이들을 모은 사람. 그들과 함께 뛰며 쓰레길 줍는 사람. 그 멋진 청년의 제안이 이랬다.

"기자님, 저 가을에 마라톤 뛰어보려고요. 서울 마라톤 쓰레기를 보니 참담해서요."

보내준 사진을 보니 꽤 심각했다. 파란색 일회용컵이 수도 없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온 음료나 물을 뛰면서 마시고 그대로 던진 거였다. 함께 뛰어 알리고 바꾸잔 거였다.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 급수대로. 얼마나 좋은 취지인가. 수만 개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으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당연하죠, 저도 마라톤 뛸게요! 뛰어서 알리겠습니다."

3월 23일, 정신 차리고 보니 42.195㎞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한 뒤였다. 11월 5일에 열리는 jtbc 마라톤이었다. 첫 마라톤에 풀 코스 도전이라니. 믿는 건 그런 거였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하.

마라톤 전 372㎞ 연습…불타던 여름과 확 꺾인 가을
여름까진 외려 잘 뛰었다가, 가을부터 러닝을 제대로 못했다. 완주가 목표였는데./사진=내년에는 풀 코스를 완주할 (예정인) 남형도 기자
등록해놓고 3월엔 하나도 안 뛰었다. 4월엔 4.2㎞ 뛰었다(걸었다). 5월엔 3.1㎞ 뛰었다(역시 걸었다).

여름은 뜨겁게 보냈다. 조금씩 제대로 뛰기 시작했다. 6월엔 57.9㎞(24러닝)를 뛰었다. 실은 뛰었다기보단, 아내와 저녁마다 운동했다. 아내는 빨리 걷고, 난 그에 맞춰 뛰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그날 있었던 일, 별 게 아니던 하루를, 별것으로 만들어주던 대화들.

7월부터는 아예 직장 근처 헬스장을 등록했다. 점심마다 신발주머니를 들고 공복에 러닝머신에서 뛰었다. 뱃살을 덜덜 흔들며 고통을 견뎠다. 월말엔 발라드를 들으며 뛰는 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살이 무려 6㎏이나 빠졌다. 그리고 저녁엔 아내와 또 수다 러닝을 했다. 그달엔 89.6㎞를 뛰었다(최고 기록!).

8월에도 80㎞를 달성하고, 23번을 뛰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살짝 뛰니 1시간씩 뛰어도 괜찮았다. 그러다 8월 14일에 코로나19에 감염됐다(두 번째). 한창 잘 달리던 기세가 꺾였다. 합법적으로 뛰지 않아도 되게 됐다. 몸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가을. 페이스를 올려야 할 9월에 53.4㎞로 외려 꺾였다. 꽤 많이, 아니, 너무 힘든 일이 뜻하지 않게 생겼다. 당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이어져 10월엔 21.4㎞, 겨우 여섯 번 러닝을 했다. 그것도 거의 걸어 다녔다. 1㎞당 페이스가 11분을 넘겼다.

마라톤 전에 뛴 러닝 거리가 372㎞. 그러나 대회 직전에 너무 안 뛰어서, 거의 잊고 지냈다. 큰일이었다.

고심하던 새벽 4시 반…'그냥 뛰지 말까' 싶었다
첫 마라톤 대회. 집으로 온 물품들. 옷은 평소 입고 달리던 걸로 입었다. 사진 상단은 걱정하는 아내의 발(찬조 출연)./사진=내일 큰일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형도 기자
그 사이 황 닦장은 착실히 뛰었다. 그 역시 마라톤 풀 코스는 처음인데, 무려 38㎞까지 뛰어봤다고 했다(대단). '무해런' 단톡방에 들어와 놓고 잠수 타던 나와 달리, 성실히 크루를 이끌며 열심히 뛰고, 매달 함께 훈련했다. 그걸 보며 죄책감을 느끼며, 또 죄책감만 느끼고 말았다.

10월 21일. jtbc 마라톤 사무국에서 종이 상자가 왔다. D그룹, 풀코스, 남형도라고 쓰여 있었다. 에너지 내라고 먹는 젤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아랫배가 저릿했다. 동봉된 콧구멍을 뚫어주는 사탕만 냠냠 먹고 '아직 10일이나 남았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11월 4일. jtbc 마라톤 하루 전날이 됐다. 황 닦장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진짜 큰일났다. 코 앞이다. 망했다. 아내가 "내일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다. 급히 변경한 내 야심 찬 계획을 아내에게 들려줬다.

"음, 그러니까 인생은 마라톤과 닮았다잖아. 제한 시간이 5시간인데, 난 그걸 한 번 넘겨볼 생각이야. 10시간을 걸어서라도 완주한다, 그런 거야. 느릴지언정 멈추지 않겠다, 그런 메시지인 거지."

아내는 뭔 소린가 하며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그보단 마라톤 번호판 뒤에 붙은, 위급 시 필요한 혈액형 등을 적으란 걸 보고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냐며, 무리하다 큰일난다며, 그냥 뛰는 시늉만 하고 오라며. 늘 대충하고 몸 챙기라는 내 편.

자정 무렵에 이불을 덮었다. 불안감이 엄습하던 새벽, 잠을 자다 깨다 했다. 그냥 뛰지 말까, 어차피 완주도 못할 것 같은데 아예 하지 말까. 그런 생각이 분주히 오갔다.

텀블러까지 챙기고…그냥 하자고, 늘 그랬듯
마라톤 당일, 비가 이미 내렸었던 새벽. 어쨌거나 뛰어보기로./사진=복장만 다 갖춘 남형도 기자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뜨자마자 맘을 굳혔다. 그냥 뛰자고, 해보자고, 망해도 거기 가서 망하자고, 지금껏 그랬듯이. 이불 안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손에 쥐고 뛸 텀블러를 챙겼다. 강릉 행복이네가 선물해준 귀여운 '진돗개 텀블러'였다.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았다(이건 담을 필요 없었는데). 애초 전해야 하는 메시지는 잘 전하겠다고. 일회용 컵을 줄이자고. 지구를 아끼자고. 다름 아닌 지구에서, 지구를 딛고 뛰고 있으니까.

11월 5일, 마라톤 대회 당일. 비가 내릴 거라 했다. 다행히 아직이었다. 월드컵 경기장 앞에 도착하니 엄청난 마라톤 러너들이 모여 있었다. 크루끼리 사진도 찍고, 응원을 온 가족도 있었다. 메시지도 못 보낼 정도. 소변보기 위해 15분씩 기다려야 했다.

마라톤에서 나오는 수많은 일회용컵 쓰레기를 걱정하며, '무해런'을 하자고 다짐한 이들, 황승용 와이퍼스 닦장(왼쪽)과 페이스메이커 김태일씨(가운데), '에코런' 박상민씨(오른쪽). 41킬로 지점 다회용컵 급수대까지 뛰자고 했건만./사진=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남형도 기자

가볍게 뛰는 사람들을 따라 몸을 풀었다. 풀 코스인 D그룹은 다들 노련해 보였다. 단단하게 갈라진 다리 근육들 사이에서, 연두부 같은 내 종아릴 보니 맘이 외려 편해졌다. '내려놓음'이란 책 제목이 생각났다.

"기자님! 잘 주무셨어요?"

황 닦장과 몇 번 전화 통화한 끝에, 인파를 뚫고 어렵게 만났다. 평소 뛰며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줍는 '에코런' 박상민씨와, 페이스 조절을 도와줄 김태일씨까지. 넷이 함께 뛰기로 했다. 박씨는 텀블러를, 김씨는 다회용컵을 들고 있었다. '무해런 크루' 답게.

"저를 편히 버리고 가세요"
출발이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주말이었다./사진=이때까지만 해도 불행을 예상치 못했던 기자
출발이었다. 오전 8시20분쯤부터 살살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만큼, 나란히 뛰는 이들이 많았다. 20분쯤 뛰니 양화대교가 나왔다. 다 건너가니 4㎞를 지났다고 나왔다. 너른 도로를 뛰며 가을 한강을 바라보니 좋단 생각을 했다. 앞에 닥칠 역경을 생각지 못하고.

연습이란 건 무척 정직해서, 매일 뛰던 6~7㎞ 구간을 넘어가니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함께 뛰는 이들이 날 빨리 버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맨 꼴찌로 좀 여유 있게 뛰어볼 요량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함께 뛰어주었다. 응원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때부터 꼴찌가 되기로 맘먹었다면, 꼴찌도 어려웠을 것 같다고.

김태일씨가 달리면서 들고 있었던 실리콘 다회용컵. 이게 무게도 덜 나가고 좋은 것 같다./사진=철로 된 텀블러를 들고 헉헉거리는 남형도 기자

47분쯤 뛰니 여의도에 도착해 있었다. 황 닦장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이때다 싶어 잘 뛰는 박씨와 김씨를 먼저 보냈다. 내 속도대로 뛰며 '제3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마포대교에서 다시, 나와 황 닦장을 위해 천천히 뛰어주던 이들과 만났다(정말 괜찮은데요, 제발 저를 버려주세요!). 다시 파이팅했다.

10㎞ 지점인 급수대까진 다시 함께 뛰었다. 엄청난 일회용 컵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 게 보였다. 이를 사진과 영상으로 찍으며 기록하는 사이, 황 닦장과 박씨, 김씨, 일행들이 멀어졌다.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 괜찮으니 먼저 가세요!" 마침내 바람대로 버려졌다.

꼴찌로 뛰었기에 바라본…어마어마한 '쓰레기'들
한 번 마시고 손쉽게, 너무 많이 버려지는 일회용컵들./사진=남형도 기자
다들 앞서가고 앞서갔다. 뒤처지고 뒤처졌다. 어차피 늦은 것. 맘이 좀 편할 줄 알았는데,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내 뒤에 누군가 있는지, 진정 꼴찌가 된 건지. 사회화된 인간의 본능 같은 거였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계속해서 상상하던 꼴찌 그룹에 속하게 됐다.

빨리 뛰는 이들이 정신없이 남기고 간 것들. 맨 뒤에서 뛰니 그런 걸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 마라톤을 뛰기로 맘먹었던 취지대로. 온갖 '쓰레기'들이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체온 유지를 위해 가져왔다가 너무 많이 버려진, 우비며 일회용 비닐들. 생각하면 바꿀 수 있다고./사진=남형도 기자

출발할 때부터였다. 비 소식이 있어 다들 '비닐 우비'를 입고 왔다. 체온 유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온갖 비닐 우비들이 바닥에 굴러다녔다. 발에 자꾸만 걸려 넘어질 뻔한 이도 있었다. 조금 더 달리니 에너지를 나게 해주는 젤을 먹고 버린, 비닐 쓰레기가 또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머리나 얼굴에 물을 뿌릴 수 있게 나눠준 일회용 스티로폼들. 바닥에 널려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마포대교에선 하얀 스펀지들이 엄청나게 굴러다녔다. 이게 뭔가 싶었더니, 박상민씨가 "더울 때 땀 식히라고 물에 적셔 주는 건데(쥐어짜면 물 떨어지는), 프로 마라토너가 아니면 크게 필요 없는 것"이라고 했다.

텀블러를 들고 뛰는 게 계속 번거롭다가, 10㎞ 급수대에서 비로소 뿌듯했다. 주변으로 일회용컵이 어마어마하게 버려져 있었기에. 뚜껑을 열고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일회용 컵 하나를 아꼈다. 방법이 없는 게 아녔다. 지나갈 때 환경미화원이 일회용 컵을 쓸고 있는 게 보였다. 급수대마다 같은 광경이었다. 유해한 달리기였다. 지구 입장에서는.

41㎞ 지점, 유일하게 깨끗한 급수대…'다회용컵' 2만3000개의 '감동'
60명의 와이퍼스 봉사자, 활동가들이 함께 준비한 '다회용컵' 급수대. 물을 마시고 다시 컵을 회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곳. 바닥이 깨끗해서 아름다웠다./사진=와이퍼스 제공
마라톤 대회 전 구간에서, 깨끗한 급수대는 '딱 한 곳'이었다. 거기가 유일했다.

41㎞ 구간에 설치된 '다회용컵' 급수대였다. 일회용컵이 아닌, 세척해 다시 쓸 수 있는 컵 2만3000개가 놓였다. 이를 위해 황 닦장과 아내 노수아씨, 60명의 와이퍼스 활동가들이 긴 시간 애쓰고 준비했다.

황 닦장은 27㎞부터 인대 통증으로 남은 15㎞를 걷고 뛰었다. 급수대가 41㎞ 지점에 있기에, 거기까진 무조건 가야겠다 맘먹었을 거다. 그리고 41㎞ 지점을 넘어 42.195㎞ 풀 코스를 모두 뛰었다.

다회용컵 급수대가 설치된 건, 국내 마라톤 대회 사상 세 번째였다. 9월에 한 번, 11월에 한 번. 두 번은 모두 와이퍼스가 했다. 10월에 열린 춘천 마라톤에서도 다회용컵 2만개가 쓰였다.

지구를 깨끗하게 닦겠다는 사람들. 황승용 와이퍼스 대표(왼쪽)와 멤버들./사진=와이퍼스 제공

막바지에 다다른 1만5000명의 풀 코스 참가자들은, 다회용컵에 담긴 물을 마신 뒤 던졌다. 덕분에 주변이 깨끗했다. 비에 젖은 깔끔한 바닥은 아름다웠다.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거였다. 누군가 그걸 고민했고 상상했고 실행했고, 마침내 할 수 있단 걸 보여줬다.

한 마라톤 참가자는 "다 마신 종이컵 버릴 때 맘이 불편했는데, 다회용 컵과 회수용 풀 설치한 것 정말 좋았다""환경의 취지에서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했다.

무해한 러닝. 내년 대회에선 조금 더 나아지기를. 더 깨끗한 지구를 딛고 달릴 수 있기를./사진=와이퍼스 제공

와이퍼스는 이를 담은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리고 이리 남겼다. "내년 jtbc 마라톤은 모든 급수대를 다회용컵으로 운영하면 어때요? 찬성한다면 '좋아요' 눌러주세요."

해당 게시글엔 3만4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포기하고 싶을 때 하프까진 뛰어보자며 독려해준, 고마운 60대 러닝메이트분. 고맙습니다./사진=딱 하프까지만 버텼던 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얘기하다 말았던 첫 마라톤 도전 이야기. 힘들었지만 하프 마라톤(21.0975㎞)을 완주했다. 과정이 이랬다.

17㎞ 지점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절반은 뛰고 나머진 걸었다. 1㎞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때마침 비가 쏟아졌고 쫄딱 맞았다. 가뜩이나 힘든데 몸이 더 무거워졌다.

19㎞를 넘어갔을 땐 진짜 그만하고 싶었다. 다리엔 점점 감각이 무뎌져 왔고, 왼발엔 통증이 느껴졌다. 텀블러에 있던 물도 다 마신 뒤였다. 중간중간 멈출 수 있는 횡단보도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다음엔 풀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약속하는 건 아니다)./사진=남형도 기자

20㎞를 지났을 때, 앞에서 계속 뛰던 젊은 남성이 포기하는 걸 봤다. 그는 코스에서 벗어나, 오른쪽 좁은 길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나도 마침내 멈출 명분이 생긴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우리, 하프까지만 뛰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깝잖아. 이것도 대단한 거예요. 주말에, 비 오는 날 아침에, 20㎞를 넘게 뛰었는데 살면서 뭘 못하겠어요. 그렇지요?"

곁에서 나란히 뛰던 60대 여성 러너의 진심 어린 응원이었다.

그 말대로 멈추지 않았던 그의 발 덕분에, 나도 끝까지 뛸 수 있었다.

이윽고 다다랐던 하프 지점, 21.0975킬로미터 거리. 첫 마라톤이라 더 뿌듯했다./사진=기록은 '비밀'인 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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