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말은 틀렸다
[미디어오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진리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보통 넷 중의 하나다. 첫째, 열심히 일한 소득을 모아서 부자가 되는 방법, 둘째, 집값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방법, 셋째, 주식이 올라서 부자가 되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속을 받아서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이 중에서 어떤 식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가장 사회적으로 바람직할까? 물론 열심히 일한 소득을 모아서 부자가 되는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금은 오히려 노동 소득에만 원칙을 강조한다. 집값이나 주식이 오르거나 또는 상속을 받아서 부자가 될 때는 단 한 푼의 세금을 내지 않을 때도 많다. 즉,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노동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고 고쳐 써야 한다. '부동산 투자 소득', '주식 투자 소득', '상속을 통한 소득'에는 상당 부분 세금을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양도세가 전셋값을 자극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부동산 양도세는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것으로 분석돼 서민들의 부담 완화를 위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아마도 부동산 양도세가 전셋값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근로소득세 때문에 물건값이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근로소득세를 없앨 수는 없다. 부동산 양도세는 양도할 때 발생하는 거래세가 아니다. 구매 가격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양도할 때, 발생한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양도소득세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적용한다면, 부동산 매매 소득에도 소득세를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1세대 1주택자는 원칙적으로 12억 원까지는 비과세다. 즉, 6억 원에 산 부동산을 12억 원에 팔아서 6억 원을 벌어도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 물론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는 있다. 집을 팔면 다른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양도소득세를 내면 같은 가격의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없다는 이유다.
다만, 6억 원을 노동소득으로 번 근로소득자가 집을 사려고 해도 세금을 내고나면 6억 원의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도 맞는 얘기다. 오해하지 마시라. 1주택자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 세법은 빚이 6억 원 있는 무주택자가 근로소득으로 6억 원을 벌어도 세금을 내지만, 1주택자가 주택 매매 차익으로 6억 원을 벌면 한 푼의 소득세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지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최근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완화하자는 주장이 언론에서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대단히 독특한 나라다. 즉, 내가 삼성전자에 투자해서 1억 원을 벌어도 1억 원의 양도소득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소득으로 1억 원을 벌면 수천만 원의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상장주식 양도차익에만 세금을 면제하는 것은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이 줄곧 있었다. 특히, 재벌 등 대주주의 특혜는 지나치게 컸다. 그래서 100억 원을 초과한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의 양도차익부터 세금을 부과하다가 그 기준을 점차 낮춰 현재는 종목당 10억 원 초과 지분 보유자의 양도차익에는 20%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전체 주식 10억 원이 아니라 종목당 10억 원이다.
포트폴리오 투자 원칙 등을 고래해 보면 특정 종목에 10억 원의 지분을 보유한 사람은 다른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금액까지 합치면 100억 원이 넘는 일이 많다. 몇몇 언론은 “10억 원을 보유했다고 대주주인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소득 있는 대주주만 세금이 있다”라는 말은 없다.
대주주만 주식 양도소득에 세금을 내던 과거에서 이제는 종목당 10억 원이 있는 큰 부자도 세금을 내는 조치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다. 주식 양도소득도 다른 근로소득만큼의 세금을 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모든 주식 양도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이 이미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다만, 그 시행 시점만 2025년도로 연기되었다. 2025년도부터 전체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과세가 되기로 확정된 상황에서 대주주 기준을 더욱 완화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을 저해한다. 시장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세금보다 예측가능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속세가 지나치게 높다는 기사가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일단 상속세를 한 푼이라도 냈으면 상위 4%에 속한다. 2021년 기준 상속이 발생한 사람 수 대비 실제로 상속세를 낸 사람은 4%에 불과하다. 일단 기본공제 5억 원에 배우자가 살아있으면 5억 원을 추가로 공제받는다. 10억 원까지는 한 푼도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즉, 근로소득으로 5억 원을 벌면 수억 원의 세금을 내지만 5억 원을 상속받으면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속세율이 최대 60%라는 오보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과표 30억 원 초과부분에만 50%가 적용된다. 세율은 절대로 50%를 초과할 수 없다. 물론 대주주 주식에 형성된 경영권 프리미엄 가격을 반영하는 조항은 존재한다. 이는 상속 재산의 가격 평가를 경제적 현실에 맞추는 조항이지 세율을 인상하는 조항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해 상장주식을 상속하는 재벌의 실질 상속세 부담은 매우 낮다. 만약에 100억 원의 자산과 60억 원의 부채를 상속한다면 상속재산은 40억 원이다. 그러나 순자산 40억 원을 보유한 법인을 만들고 이를 상장시켜보자. 갑자기 상속 재산이 20억 원이나 10억 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8배가 조금 넘는다. 즉,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은 80%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CJ(0.48), KB금융(0.43)처럼 순자산 대비 시가총액이 절반도 안 되는 기업도 허다하다. 이마트(0.19) 처럼 20%도 안 되는 기업도 여럿 있다.
즉, 재벌은 저평가된 주식가격을 통해 실제 순자산 가치의 절반이나 1/5도 안되는 가격으로 상속가액을 평가 받는다. 주주의 권리를 무시하고 주가 관리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재벌 3세의 상속세 부담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정리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부자가 되려면 근로소득을 모으거나, 주택가격이 오르거나, 주식가격이 오르거나 상속을 받는 방법이 있다. 근로소득을 통해 1억 원을 벌면 1천만 원이 넘는 세금을 낸다. 그러나 1세대 1주택자라면, 주택 양도차익으로 1억 원을 벌어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 주식양도차익으로 1억 원을 벌거나 1억 원을 상속받아도 내는 세금은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근로소득세율이 OECD 국가보다 높은 것은 아니다. 누구나 세금을 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부작용이 없는 세금도 없고, 모든 세금 감면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부문에 세금을 면제해 준다면 그만큼 누군가는 더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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