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부릅, 목엔 핏줄…피치 위에선 가능하다 [ESC]

한겨레 2023. 11. 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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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오늘하루운동] 풋살
대회 전 마지막 훈련일이었던 지난 1일 알레그리아에프에스(fs) 팀원들이 모여 감독의 말을 듣고 있다.

“언니, 너무 짜증 내는 투로 말하지 말아요.”

지난 주말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풋살대회, 우리 팀이 예선 두번째 경기를 치를 때였다. 경기장 밖에서 마구 소리치던 나는 혜린이의 한마디에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팀원들의 실수가 나올 때마다 피치 위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맨투맨 마크가 겹치는 상황을 보며 “서로 얘기를 해!”라며 소리치고, 부정확한 패스가 오가자 “패스 정확하게 하자!”라고 외치는. 글로 적으니 더 분명해지는데, 외친 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날카롭게 내지르는 말투가 문제였다. 충분히 팀원들을 북돋으며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말들이었으니까.

“가끔은 나도 내지르고 싶다”

대회만 나가면 나도 모르게 초흥분 상태가 된다. 목소리는 커지고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다. 경기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다. 경기장 안에서는 시야가 좁아지며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유발하기도 하고, 경기장 밖에서는 오히려 내 흥분을 경기장 안으로 전달해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 이걸 모르는 건 아니다. 조절이 잘 안 될 뿐….

경기장 안팎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 달리, 축구 선수 출신인 팀원 다미는 정말 차분하다. 패스를 주고받거나 경기를 조율하기 위해 서로 소리쳐 주는 것을 ‘콜 플레이’라고 하는데, 풋살에서 콜 플레이는 필수다. 패스를 받으러 뛰어들어가는 공격 상황에서도, 맨투맨 수비의 자리를 조정할 때도 서로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좋은 팀플레이를 만들기 어렵다. 다미의 콜은 그렇게 나지막하고 차분할 수가 없다. 패스를 주고 공간으로 침투하며 작은 목소리로 “언니!”하고 읊조리는데, 흥분도가 잔뜩 치솟은 경기장 안에서 오히려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쏙 박힌다. 내가 목이 쉬어라 “헤이!”를 외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 그런 차분한 콜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조금은 침착하게 된다. 그러니 무조건 목이 쉬어라 외쳐대는 콜 플레이만이 답은 아닌 셈이다. 피치 안에서의 소통도 아니고 밖에서 날카롭게 내지르는 콜이라면 더더욱.

그걸 알면서도 혜린이의 지적에 ‘쳇, 너는 안 그러냐?’라고 반문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따지려면 따질 수도 있었다. 대회에 나가면 너도나도 흥분하기 일쑤고, 혜린이를 포함해 거칠게 소리치는 모습을 안 보인 팀원은 없으니까. 하지만 뜨끔한 마음이 더 컸고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는 편을 택했다.

대회 속 치열한 승부보다 혜린이의 지적을 더 오래 곱씹은 이유는 서운해서가 아니다.(진짜다!) 오히려 이 순간을 되새기면서 나는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날것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감정의 폭풍우로 소용돌이치는 마음속과는 달리 말이다. 드러내기 어려워지는 건 슬픔도 화도 기쁨도 마찬가지지만, 그중에서도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슬픔이나 화는 더 표현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다거나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일까.

나는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감정이 휘몰아칠 때면 잠시 물러서서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인가? 나는 무엇에 화가 난 걸까?’라고 스스로 되물으며. 납득할 만한 이유가 하나씩 정리되고 나면 그제야 제법 이성적인 체하며 말을 꺼낸다. 그래서일까, 주변 사람들은 나를 갈등을 해결하고 의사소통을 잘 이끄는 사람으로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마음 편히 내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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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강원 화천에서 열린 토마토배 전국풋살대회에서 경기 시작 전, 팀원들이 모여 결의를 다지고 있다.

즐거운 축제이자 치열한 승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치는 모습. 누군가에게 이토록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건 내겐 꽤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풋살을 하면서는 가능하다. 특히 대회에 나가면 감정의 파도는 마구 요동치고 그 표현은 극대화된다. 이번 대회에서도 자꾸 우리에게만 불리한 오심을 하는 심판에게 너무 화가 났다. 분명히 상대편 발을 맞고 아웃이 된 상황에서 반대로 판정하는 심판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이 선수(상대편) 발 맞고 나갔잖아요!“ 버럭 외쳤다. 같이 뛰고 있던 자연이가 나중에 말하길, ‘큰일 났다!’고 생각됐을 만큼.

별 수 없이 날 서고 모난 모습을 보이게 되는 순간들. 그러니까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란 것은, 이런 내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어서, 이런 모습도 내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함께할 수 있는 팀이 있다는 사실을 문득 체감하곤 흐뭇했다는 뜻이다.

우리 팀은 작년 여름부터 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풋살을 시작하고 나간 첫 대회에서 나는 그저 기뻤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운동장 위에 모여 공을 찬다는 게 축제가 아니면 무엇이랴!’라고 생각하면서 감격의 눈물이 울컥울컥 올라올 정도였다. 첫 대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의도적인 파울이나 감정 실린 거친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이 즐거운 축제의 장에서?‘라고 생각했다.

나부터도 공이 나가면 우리 팀 소유가 아니어도 주워주고, 작은 부딪침에도 꾸벅꾸벅 인사하며 사과했다. 그런데 대회 경험이 쌓이면서 느꼈다. 이건축제의 장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승부의 세계이기도 하다! 승패를 두고 치열하게 맞붙는 두 팀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경기를 끝낼 수는 없는 거구나!

그렇게 피치 위에서 모난 모습을 드러내는 것, 상대편과 날 서게 부딪치는 모습까지 풋살이란 스포츠의 일부라는 사실도 배워나가는 중이다.(물론 지나친 더티 플레이는 금물!) 피치 위에서는 투지를 불태우며 치열하게 맞붙고, 날 선 모습은 그 안에서 끝내면 된다. 그래도 앞으로는 너무 짜증 내듯 소리치지 않을게, 혜린아!

글·사진 장은선 다큐멘터리 감독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에서 사회적 이슈를 담은 숏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현재는 영상 제작사 ‘두마땐필름’을 운영한다. 3년 전 풋살을 시작한 뒤로 인스타그램 @futsallog에 풋살 성장기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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