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드래곤, 라이온즈도 봐주세요" LG 구광모 비상 본 이재용의 선택은 [줌 컴퍼니]
삼성 팬들, '이재용 등판' 기대감 높아져
그룹 총수 '친근한 이미지' 개선 효과 있지만
국정농단 파문, 낮은 홍보효과 등 부담
“재드래곤 회장님, 라팍(대구삼성 라이온즈파크의 애칭)에도 와주세요. 왕조 재건 의지를 보여주세요.”
한국프로야구(KBO) LG(003550) 트윈스의 극적인 29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곁에서 지켜본 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마음은 여느 해보다 쓰리다. ‘가전 맞수’로 90년대 이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온 LG 트윈스가 올해 우승과 함께 새로운 왕조 건설을 노리고 있는 반면 2000년대의 최강 팀 중 하나였던 삼성 라이온즈는 올 시즌을 8위로 마감했기 때문.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명가 재건의 키워드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을 애타게 찾고 있다. 대외 행보를 자제해오던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한국시리즈 기간 적극적인 행보로 야구팬들로부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모습을 본 삼성 관계자들도 내심 신경이 쓰이긴 마찬가지다.
이 회장과 구 회장은 모두 열렬한 야구팬이었던 선대회장의 뒤를 이은 3세대 대표 기업 총수로 선친 못지 않게 야구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보여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구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내 왔던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구단 창단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직접 구단주를 지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과감한 투자를 앞세워 삼성 라이온즈를 2002년 이후 7번이나 한국시리즈를 우승한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아들인 이 회장은 어린 시절 야구장에서 시구를 했을 뿐 아니라 2000년대에 꽤 자주 경기장을 직관하며 삼성 라이온즈 팬들 사이에서 ‘승리의 JY’로 인기를 모았다.
야구 사랑이라면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도 만만치 않았다. 자처해 LG 트윈스의 초대 구단주를 맡았던 구 선대회장은 1998년 “우승하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주겠다”며 당시 8000만 원에 달하는 롤렉스 시계를 내걸기도 했다. 구 회장은 선대회장만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차명석 단장을 중용하면서 ‘뚝심의 야구’를 뒷받침했다.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LG 트윈스를 상징하는 유광 잠바를 입고 세 차례나 경기를 관람해 팬들 사이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구 회장은 이번 한국시리즈를 계기로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마케팅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40대 총수’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대외 활동을 꺼린 탓에 대중적인 이미지가 높지 않았다.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후 한 번도 잠실구장을 찾지 않았던 구 회장이었던 탓에 한국시리즈 전까지만 해도 팬들 사이의 기대감이 그리 크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총 5차전 중 3번이나 경기장을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팬들과 함께 경기를 관람하며 ‘반전 이미지’를 심었다. 심지어 그룹 총수인 구단주로서는 드물게 수원 원정 경기장까지 찾았다. 경기장에서 심판 판정에 같이 반응하고 휴대폰으로 다른 관객의 사진을 찍어주는 등 친근한 모습으로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최근 정반대 행보다. 일단 이 회장은 구 회장과 달리 구단주를 맡고 있지 않다. 삼성 라이온즈의 운영은 삼성 관계사인 제일기획이 맡고 있고, 구단주도 유정근 대표이사가 이름을 올렸다. 이 회장은 2015년까지는 야구장을 종종 방문하면서 애정을 드러내 왔지만, 2016년 준공한 삼성 라이온즈의 새 구장인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는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다.
여기에 2015년 일부 선수의 해외원정 도박 파문, 기업 홍보효과 부재 등을 이유로 모기업의 투자가 크게 줄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암흑기로 들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라이온즈 팬들이 이 회장을 애타게 찾는 것은 언젠가 이 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야구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는 프로스포츠 특성 상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삼성 내부에서도 삼성 라이온즈 팬을 중심으로 LG 트윈스와 구 회장의 행보를 부럽게 보는 분위기도 일부 감지된다.
꼭 LG 트윈스와 구 회장의 사례 때문이 아니라도, 삼성 내부에서는 야구단 운영과 관련한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좋든 싫든 그룹 총수와 프로야구단이 동일시되는 분위기가 있는 현실에서 과거 ‘일등주의’로 전 프로스포츠 종목을 석권하던 시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팬들의 바람이 현실이 될지는 미지수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속에 승마용 말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큰 고초를 겪었던 이후 이 회장에게 ‘스포츠 사업에 지원하자’는 말은 꺼내기조차 어려운 금기가 됐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기 한파 등으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단 지원 논의는 배부른 소리로 치부될 뿐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가 스스로 애정을 쏟아내지 않는 한 경영 현안과 거리가 먼 스포츠단 지원 같은 얘기를 먼저 나서서 꺼낼 참모는 없다”며 “내부에서도 이 회장에게 스포츠 지원 관련 얘기는 금기어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 회장 뿐 아니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SSG 랜더스의 구단주로 주목을 받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로서 구단 운영에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는 등 대외적인 이미지 쇄신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는 남아 있다. 17일 부당합병 등 재판의 결심을 마치면서 사법 리스크에서 다소간 자유로워진 이 회장으로서는 본격적인 경영 행보와 함께 대외적인 이미지 개선에도 신경쓰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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