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화의 맛Pick 핫Pick] 먹거리 잡화점, 시대가 열리다
뿌리채소·곡물·견과류 패티에
DMZ산 우리밀로 만든 '달버거'
우리 쌀·쑥으로 만든 '맘편한쫀드기'
‘십리향’ 소포장 쌀까지
우리먹거리·시대 취향 반영한
신개념 건강 잡화점 반가워
※음식 자체의 질적 향상과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갈망하는 소비자 눈높이 사이에서 외식산업은 빛의 속도로 변모 중이다. 그러나 그 안엔 외식 자영업자의 창의성과 고단함이 육수처럼 녹아 있다. 식재료 공급 산지의 애환은 고명처럼 올라 있다. 농민신문은 외식업 최신 트렌드를 전국 맛집을 통해 짚어보는 ‘이윤화의 맛Pick 핫Pick’을 연재한다.
잡화점 하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하나의 상점을 두고 아이들은 공책과 연필 등 학용품이 필요해서 가지만 어른들은 휴지·노끈부터 반찬용 채소를 사러 간다. 동네 사람들이 필요한 생활용품은 모두 팔았다. 바로 잡화점이다.
요즘 ‘잡화점’이란 용어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마치 작은 서점 콘셉트처럼. 한때, 책을 잘 읽지 않은 현대인을 대상으로 북카페가 여기저기 생겨날 때가 있었다. 과연 이게 성공할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취향 정보에 목말라했다. 유사한 유형의 책 시리즈를 모아 놓으니 그 성향에 맞는 고객들이 저절로 모이게 됐다.
이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정보 꾸러미로만 구성되어 있다면 그곳에 가서 맘 놓고 쇼핑하고 싶어진다. 온라인 쇼핑이 소비 플랫폼의 주류가 되면서 ‘취향의 큐레이션’, ‘발견의 스릴’은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 전략인 듯하다. 하지만 방대한 정보에 피로해진 소비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그러나 가치 있는 선택지를 내미는 내 맘을 잘 아는 취향 좋은 친구 같기도 하다.
이런 게 요즘 잡화점이라 할 수 있다. 주인장의 철학에 맞는 상품 구성이 맘에 들면 그에 맞는 취향의 고객이 모인다. 주인장의 상품 구성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책·와인·옷·꽃·음식 등을 한 장소에서 팔 수 있다. 단, 주인장이 의도하는 맥락만 상통하면 된다. 우리 잡화점에 어울린다고 생각되면 이것저것 장르 초월한 진열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다.
경기도 수원의 서호공원 인근 ‘씨디피(CDP)’ 카페는 겉으로 보면 흔한 카페 중에 하나다. 하지만 들어가서 꼼꼼히 보면 볼수록 상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커피 한잔 마시러 들어갔는데, ‘햄버거도 팔고 있네!’라고 할 것이다. 햄버거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고기 버거가 아니라 뿌리채소와 곡물, 견과류로 만든 패티가 들어간 버거라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고기가 아닌데 맛이 괜찮을까 하는 채식에 대한 거부감이 있던 사람도 이 ‘달버거’를 맛보면 식감과 구성의 어울림에 빠져들게 된다.
청정지역 비무장지대(DMZ)의 대성동 평화마을에서 재배한 키 작은 우리 밀(앉은뱅이밀)을 현무암 맷돌로 천천히 갈아 밀의 풍미를 살린 브리오슈 번도 달버거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동안 달버거는 직거래 농부시장인 마르쉐에서 이미 인기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카운터 판매부스 테이블에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상품 진열이 꽤 있다. 우리 쌀과 쑥으로 만든 ‘맘편한쫀드기’가 보인다. 어릴 적 학교 앞에서 연탄불에 구워 먹던 노랑·주홍 식용색소가 들어간 알록달록 쫀드기가 아니다. 쫀드기라는 추억을 담았지만 안전한 식재료로 만든 안심 주전부리인 셈이다.
냉장 진열장 속에 ‘달그릭’ 이라는 요거트도 흥미롭다. 꾸덕꾸덕한 그릭 요거트이다. 원유 99.9%, 유산균 0.1%로 우유 자체의 고단백 식품이다. 한 스푼 뜨면 달그릭이 추구하는 요거트의 방향을 알 것 같다.
요거트 곁들이로 추천하는 잼도 요거트만큼이나 순수하다. 설탕 대신 쌀 발효당으로 만든 과일잼이다. 그래서 이름도 ‘배러댄슈거(Better than sugar)’ 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감미료, 무색소이니 당연 안심.
쌀도 판다. 벼꽃 향미! 빵 파는 카페에서 쌀을 판다고? 맞다! 이게 잡화점이다. 벼꽃 향미는 전북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했고 십리 밖까지 구수한 향이 난다는 의미로 지어진 ‘십리향’ 품종으로 만든 브랜드 쌀이다.
밥을 지어 먹어보니 어릴 적 맛보던 구수한 밥 향내가 나고 찰기가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500g 소포장부터 판매되고 쌀 포장지에는 쌀을 재배하는 논 이미지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카페 입구 한켠에는 주인장의 취향인 핑거로즈 소형 화분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자체로 매장을 밝게 해주고 고객이 사 갈 수도 있다.
커피 한잔하러 왔는데 마치 우리 먹거리와 시대 취향이 잘 반영된 로컬푸드 매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고 카페의 먹거리를 즐기고 나면 어느새 우리 몸에, 그리고 우리 땅에 보다 건강하고 의미 있는 먹거리를 만들고 소개하는 주인장의 취향을 이내 눈치챌 수 있다.
시골 식당이나 상점에 가면 주인장이 농사지은 고구마, 늙은 호박부터 포도즙까지 사장 맘대로 팔고 있다. 이런 잡화점이 요즘은 체계적인 구성으로 테마를 형성하고 있다.
건강 잡화점 카페가 궁금하다면 수원 CDP에 나들이 가도 좋겠다. 예전 농촌진흥청이 있던 자리이기에 자연 녹지 환경과 함께 하는 소풍이 따로 없다.
이윤화(음식 평론가)
이윤화는⋯
음식을 좋아하고 맛집 여행을 즐기다 직업이 되었다. 식문화전문기업 다이어리알 대표로 활동하면서 2017년부터 ‘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트렌드’를 매년 발간하고 있다. 사람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해 작은 이탈리안 식당을 열어 술과 음식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다수 컨설팅 경험으로 향토음식과 지역 식문화에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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