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러 가겠다” 살인예고 편지에 변호사들 ‘발칵’ [주말엔]

백인성 2023. 11.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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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A 씨는 지난달 외근 도중 자신에게 편지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우편물을 열어본 A 변호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노골적인 살해 협박으로 점철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A 변호사는 즉시 사무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시건장치와 CCTV를 점검한 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는 KBS와의 통화에서 "편지를 받고 저뿐만 아니라 저희 직원분들도 위험해지실 수 있기 때문에 보안장치를 새로 변경했다"면서 "돌아다니다가 주변을 자꾸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변호사 일 하면서 이런일까지 겪어야 하나 싶더라"고 말했습니다.

■ '무차별 살인 예고'에 변호사단체 비상

알고 보니 해당 인물의 살인 협박 편지를 받은 건 A 변호사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은 여성 변호사 B 씨는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사무실 잠금장치를 더 튼튼한 것으로 교체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다수의 변호사들이 동일한 내용의 협박 편지를 받아 수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편지 봉투에 적힌 전화번호의 명의를 파악했다며, 누군가 우편물 안의 인물을 사칭하는 것은 아닌지 파악 중입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여러 회원들의 민원을 접수받고 경위 파악에 나섰습니다.

김정욱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특정 사건 상대방 당사자의 행태로 추정된다"면서 "편지를 받은 변호사가 직접 고소하면 상대방에게 특정될 위험이 있어 서울지방변호사회 차원에서 고발을 검토하던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해당 변호사가 이미 관련 인물을 고소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조사 결과는 추후 확인하여 말씀드리겠다"고 회원들에게 안내했습니다.

최근 불특정 다수 변호사들에게 전달된 협박 편지


■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이후 예민해진 변호사들

변호사들이 이런 '살해 협박'에 극히 민감해진 건 지난해 벌어진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사건' 이후부터입니다.

2022년 6월 50대 남성이 민사소송 패소에 앙심을 품고 상대방 변호사가 근무하는 대구지방법원 인근 법률사무소에 휘발유 병을 들고 찾아가 불을 질렀고, 이 사건으로 방화한 남성과 당시 건물에서 근무하던 변호사와 사무직원 등 7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전에도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유명한 사례로 '석궁 사건'이 있습니다.

2007년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복직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한 뒤 재판장인 박홍우 서울고법 부장판사 집을 찾아가 집 앞에서 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쏜 사건입니다. 김 전 교수는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습니다.

2015년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를 지낸 박영수 변호사가 대리한 사건의 소송 상대방에게 흉기로 습격을 당해 목 부위에 자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70대 남성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뒤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 등을 요구하며 대법원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대법원장 관용차에 화염병을 던져 징역 2년형이 확정된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사건처럼 대량의 인명사고가 난 건 처음이었고, 변호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뾰족한 대처 방안이 없단 점입니다.

법원은 재판부와 사건 관계인을 보호하기 위해 법정 출입구에서 소지품을 검사하는 등 검문·검색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 법무법인도 경비업체를 고용하거나 방호시스템을 마련할 수도 있지만, 소규모 변호사 사무실은 현실적으로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가스총 등 호신 기구를 공동 구매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기도 했습니다.

■ "의사처럼 변호사 폭행 가중처벌" 법안 통과 미지수

대구 법률사무소 방화 사고 직후 변호사에 대한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도 발의됐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직무수행 장소에서 변호사 및 그 사무직원을 폭행·협박하는 경우'와 '직무수행을 위한 시설·기재 또는 그 밖의 기물 등을 손괴하는 경우'에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들이 국회 계류중이지만, 진척이 없는 상탭니다.


특정 직무 종사자를 상대로 한 폭행·협박 및 손괴행위를 형법에 비해 가중처벌하는 내용은 이미 의료법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포함돼 있습니다.

의료법은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의료행위를 행하는 의료인,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의료행위를 받는 사람을 폭행·협박하는 행위 △의료기관의 의료용 시설·기재·약품, 그 밖의 기물 등을 파괴·손상하거나 의료기관을 점거하여 진료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응급의료법도 △응급의료종사자와 구급차 등의 응급환자에 대한 구조·이송·응급처치 또는 진료를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그 밖의 방법으로 방해하는 행위 △의료기관 등의 응급의료를 위한 의료용 시설·기재·의약품 또는 그 밖의 기물을 파괴·손상하거나 점거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두 법 모두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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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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