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이라는 스릴러[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숨소리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한 여성의 눈꺼풀이 보이고 곧 알람이 울립니다. 지체할 겨를도 없이 일어납니다. 어린 남매를 깨웁니다. 주인공 쥘리는 시리얼로 아이들의 아침을 챙겨주고 출근 준비를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파리의 교통 파업 소식을 전합니다. 파업이 벌써 5일째 진행됐다고 합니다. ‘둥둥둥둥’ 무엇인가 긴장감을 주는 소리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엄마 파리에 있는 공원 알아?”, “나중에 우리도 갈까?”라고 묻네요.
아침에 눈을 뜨고 지금까지 쥘리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습니다. 굳은 얼굴로 아이들을 맡길 옆집으로 갑니다. 아직 여명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새벽이었네요. 옆집의 문이 닫히자 쥘리가 뛰기 시작합니다. 한국 영화 <추격자>의 질주 장면이 떠오를 만큼 급박하게 뜁니다. 쥘리는 플랫폼을 떠나려는 기차를 간신히 붙잡습니다. 그렇습니다. 쥘리는 파리 교외에 살며, 파리 시내 호텔의 룸메이드로 일하는 워킹맘입니다. 남편은 없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단 2분 사이에 벌어진 일인데, 벌써 가슴이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듭니다. 좋은 직장을 찾아 서울·수도권으로 가지만, 높은 집값에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길어진 출퇴근 시간에 아이를 낳아도 하루에 한 시간조차 서로 웃으며 얘기할 시간도 없는 삶. 파리와 서울의 삶은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907명을 대상으로 출퇴근 소요시간을 설문조사 한 결과 평균 1시간 24분이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경기권에 사는 직장인들의 출퇴근 소요 시간이 평균 1시간 42분으로 가장 길었고. 서울 거주 직장인들은 평균 1시간 19분을, 지방 거주 직장인들은 1시간 1분을 출퇴근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왕복 3~4시간을 사람으로 꽉 찬 출퇴근 차 안에서 보낸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손석구 신드롬’을 일으켰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선 경기도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밈이 되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경험에 기반한 <풀타임>은 큰 사건 없이 진행됩니다. 쥘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교통 파업이 심해지며 새 직장의 면접을 보는 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어느 하나 쉽지가 않습니다. 파업은 심해지자 쥘리는 회사에 늦고 옆집 할머니는 더 이상 아이들을 봐줄 수 없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뉴스의 한 장면일 뿐인 출퇴근과 기차 연착이라는 사건이 쥘리의 삶을 무너지게 하는 중대한 요소가 되어 버립니다. 살인마나 귀신이 나오는 영화보다 더 긴장감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차를 놓칠 것인가 탈 것인가는 쥘리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일상 스릴러’인 이유입니다.
지난해 국내 개봉해 약 1만 관객을 동원한 프랑스 영화입니다. 현재 왓챠와 웨이브에서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러닝타임은 88분으로 길지 않은 편입니다.
서울 출퇴근 경기도민 공감 지수 ★★★★★
워킹맘 스트레스 지수 ★★★★★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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