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이 "훌륭한 그래픽과 디테일, 심즈 딱 기다려"
게이머라면 한 번쯤은 '심즈'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현재 선택한 캐릭터를 표시하는 심즈의 연두색 마름모 모양 '플럼밥'은 핼러윈 인기 코스튬으로 꼽히기도 했다. 심즈 시리즈는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의 대명사이자, 대체재가 없어 만족스럽지 않아도 탈출할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게임이었다.
심즈 4가 출시된 2014년부터 어언 9년이 흘렀다. 이제야 파라라이브, 라이프 바이 유와 같은 후발 주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시점이다. 수많은 후발 주자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한국의 심즈 낭인들에게는 어쩐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 하이틴 드라마, 가령 가십걸이나 스킨스를 찍고 싶을 때도 물론 있다. 그러나 와인에 스테이크만 썰어댄 지 어언 몇 년,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 한 잔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한국 유저가 어디 있겠는가.
크래프톤 인생 시뮬레이션 '인조이' 소식을 듣고 지스타 2023 크래프톤 부스에 구름과 같은 줄이 늘어선 것은 아마 이러한 목마름 때문일 것이다. 기자 역시 심즈 마니아인 지인이 대신 체험하고 후기를 남겨달란 부탁을 받았다. 물론 흔쾌히 승낙했다.
인조이의 시연 시간은 30분이다. 솔직히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캐릭터인 조이 커스터마이징만 해도 30분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래도 게임의 전반적인 시스템을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그래픽과 커스터마이징 자유도는 입이 아프도록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끝내준다. 언리얼 엔진 5의 위용은 가히 놀라웠다. 질감이 묻어날 것 같은 보송한 피부와 은은한 블러셔, 촉촉하게 그라데이션된 립 발색은 흡사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플라스틱 덩어리 같은 10년 전 그래픽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의 세밀한 표현, 거리를 거닐 때 물체에 빛이 반사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래서 언리얼, 언리얼 하는구나"라는 생각만 든다. 지하철 역, 수많은 연등이 매달린 절, 언제 어디든 찾을 수 있는 편의점 등 현실적으로 구현된 한국 풍경 역시 안정감과 함께 몰입감을 선사했다.
전체적인 게임성은 심즈와 유사하다. 심즈 시리즈를 플레이하던 사람이라면 익숙하게 플레이할 수 있다. 플레이어가 직접 조이를 조종할 수도 있지만, 가만히 내버려두면 현재 자신의 욕구와 스케줄에 의거해 알아서 움직인다. 배속 시스템도 심즈와 동일하다.
특징은 UI가 굉장히 깔끔하고 세련됐다는 점이다. 폰트의 크기나 배치 역시 거슬리지 않았다. 가독성, 편의성 알 바 없는 투박한 외국산 게임을 플레이하다 K-게이머에게 최적화된 고향의 맛을 느끼니 일종의 감동마저 느껴졌다.
사소한 모션의 디테일이 좋았다. 냉장고 속에서 피자를 꺼내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전자렌지에 살짝 돌려 먹는다든지, 노래를 부르기 전 마이크를 톡톡 친다든지 하는 자잘한 모션에서 신경 써서 만든 태가 났다. 심지어 걷다 잠시 멈출 때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 다시 집어넣기도 한다.
다른 조이와의 상호 작용 역시 선택지가 굉장히 많았는데, "이 세계가 게임 속이라고 말하기"와 같은 메타적인 선택지도 있었다. 핸드폰 SNS로 어떻게 응대하느냐에 따라 특수 이벤트가 발생했다. 물론 이벤트가 발생해도 타이밍을 놓치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이 점은 현실과 꽤 비슷하다.
트레일러에서 보았듯 구직 활동을 통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개발 중이라 그런지 직업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퀄리티는 꽤 만족스러웠다. 분식집 매니저는 옷을 갈아입은 뒤 직접 김밥을 말고, 서빙을 하고, 계산대에서 대기하고, 테이블을 닦는 현실적인 직무 활동을 수행한다. 소품 역시 깨알같이 잘 구현했다.
시간이 부족해 건축이나 도시 편집 기능을 제대로 건드려보지는 못했다. 사실 3배속으로 조이가 뭘 하는지 구경하고만 있어도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기본적으로 배치된 가구들의 종류를 교체하거나 색을 바꾸는 정도만 시도했는데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아쉬운 점은 제공되는 화면 필터의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기대감을 품고 카툰이나 포스터화 등 다양한 필터를 적용해 봤는데 기본인 사실적 필터 외에는 눈이 아프거나 외곽 선이 뭉그러지는 등 만족스럽지 못했다. 셀피 같은 스크린샷 놀이에도 활용하지 못할 퀄리티라고 생각한다.
또한 대부분의 조이는 쭉 뻗은 늘씬한 체형에 곧은 자세로, 이목구비와 피부색, 헤어 스타일, 옷차림은 다르지만 한 틀에서 찍혀 나온 듯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뚱뚱하거나 깡마른 조이, 허리가 굽은 노년 조이 등 조이의 구현 패턴에 변주가 있으면 조금 더 실감나는 세계가 될 것 같다.
30분의 시연이 종료되고 크래프톤 부스를 나오며, "뒤틀린 황천의 동양풍 유저 제작 아이템을 검색하며 슬퍼하던 사람이 이 게임 개발자가 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평소 심즈를 플레이하며 느끼던 갈증을 속 시원하게 저격하는 게임이었다.
지금도 출시가 기다려질 정도지만, 다양한 직업과 상호 작용, 돌발 이벤트 등을 풍성하게 구현한다면 분명 K-심즈를 넘어 새로운 인생 시뮬레이션 장르 대명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조금 개발이 늦어져도 좋으니 아쉬움 없이 높은 완성도로 출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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