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면[책과 삶]
실제 관련 보고서 쓰다 아이디어
“지구의 갈등이 화성엔 없길”
화성과 나
배명훈 지음 |래빗홀|304쪽|1만5800원
화성 인구는 아직 2400명이다. 화성 거주지에서 첫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광물학자는 온실 책임자가 화성으로 깻잎 대신 셀러리를 들여온다는 이유로 죽였다. 본질은 ‘깻잎이냐 셀러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냐, 화성이냐’ 소속감 차이에서 비롯됐다. 온실 책임자는 여전히 지구의 뉴스, 노래, 부동산에 관심을 뒀다. 언젠가 지구로 돌아갈 사람이었다. 광물학자는 오래 화성에 남을 사람이었다. 화성 이주 초기 단계에서 언제든 벌어질 갈등이었다.
지구에선 신병을 확보했느냐고 물었다. 화성의 정치인 희나는 “어디로 도망치는데요? 여기서는 몰래 도망가면 숨을 못 쉬어서 죽습니다”라고 일갈했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자고 아침이 되도록 그대로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살인자를 어떻게 처벌할지’였다. 희나는 “누구는 국가주의자이고, 누구는 화성 분리주의자이고, 그러면 공동체가 쪼개지는 건 금방”이라고 우려했다. 여기는 지구가 아니었다. 화성이었다. 피의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누가 판단할 것인가. 지구 법정에서 원격으로 할 것인가. 항소 기간 피의자는 어디에 있나. 희나는 ‘화성에는 화성의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정거장에 있던 희나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모래 폭풍을 뚫고 화성 거주지로 내려간다.
한국의 SF를 안착시킨 배명훈 작가가 화성을 다룬 <화성과 나>를 출간했다. 화성으로 인간이 옮겨가 산다면 벌어질 만한 일들을 6편의 연작소설로 묶었다.
소설은 의외의 지점에서 태어났다. 2020년 외교부의 연구 의뢰가 시작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 선언을 하고, 아랍에미리트연합도 100년 뒤 화성 도시 건설 계획을 내놨다. 외교부는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정치·사회·국제는 어떨지를 연구해보자고 했고, 배명훈 작가에게 맡겼다.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 학·석사를 졸업해 국제정치를 아는 SF작가였다. 배명훈은 전작 <첫 숨> <빙글빙글 우주군> 등에서 화성을 다룬 적이 있다. 배명훈은 2년간 ‘화성의 행성정치 : 인류 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를 수행했다. <화성과 나>는 보고서에 상상력과 재치를 덧입혀 문학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희나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 ‘붉은 행성의 방식’은 화성의 초기 정착 시기, 즉 화성의 ‘고대사’에 해당한다. 화성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언가 먹고산다는 뜻. 알약 같은 우주식량만 먹을 수 없으니. ‘위대한 밥도둑’에선 간장게장이 먹고 싶은 이사이의 열망이 그려진다. 화성에는 바다가 없다. 화성의 미래 식자재 30년 계획에 꽃게 같은 수산물이 있을 리가 없다. 바다와 같은 인공 생태 환경을 만들려면 커다란 수조가 필요하고 방사선 차단 시설까지 준비해야 한다. 꽃게는 화성에선 꿈도 못 꿀 재료다.
주인공은 간장게장을 얻기 위해 지구에서 갓 넘어온 정치 세력과 화성 토착 정치 세력 간 힘겨루기를 활용한다. 화성의 정치는 ‘컬링’에 비유된다. “토착 세력이 모여서 새로 날아올 돌의 권한 행사를 제한하는 장치를 하나씩 만들어. 그것 때문에 전에는 한 엔드에 4점씩 따 가던 지구팀 대표들이 점수를 조금씩 잃는단 말이야. (…) 그때부터 토착 세력이 1점을 가져가는 거지. 스틸 엔드라고 하는데 행성 정부 전략이 그거야. 모든 분야에서 역으로 1점씩 따는 거. 이게 자립의 시작이겠죠.” 지구 정체성을 화성에서도 고수하려는 세력과 연합하려는 미래식량지원 구성위원장의 정치적 위치를 이용해, 지구 음식인 간장게장을 들여오자고 제안한다. 수일이 지나 꽃게는 ‘30년 계획’에 포함된다.
우주 밖 이민간 인류가 맞이할
예상된 문제를 6편의 연작 소설로
작가의 상상력·재치 ‘반짝’
배명훈은 ‘작가의 말’에서 “아무리 힘들고 두렵더라도 지구의 국제정치를 그대로 화성에 옮겨놓지는 말기를” 바랐다. 우주가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길 바라는 그의 의도는 ‘행성 봉쇄령’에서 잘 드러난다. ‘행성 봉쇄령’은 지구로부터 공격 경고장을 받은 선장의 고민을 담았다. 지구와 화성을 이어주는 환승 셔틀 우주선 사이클러의 선장은 근지구궤도동맹의 명령서를 전달받는다. 지구에서 출발한 여행객을 태우지 말고 돌려보내라는 것. 그러지 않으면 미사일로 격추하겠다는 경고장이었다. 선장은 중얼거린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건데, 무슨 놈의 주먹이 심우주까지 날아오는 건지.’
선장과 부선장의 대화에선 “누구든 우주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도출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군인들은 우주로 가는 길을 차단하려 할 것이고, 과학자들은 열려 있길 바랄 것이다. 두 원칙이 충돌하는 지점을 ‘행성 봉쇄령’에서 표현했다”며 “연구하면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라고 했다.
‘행성 탈출 속도’에서는 지구의 엘리트주의도 비꼰다. ‘행성 탈출 속도’는 화성에서도 태어나는 이들이 생기는 시대의 이야기다. 초기 화성 이주자들은 박사 학위 3개쯤 있어야 하고 모두 수학을 잘해야 했지만, 점점 박사학위는 2개에서 1개로 줄어들고 급기야 주인공 ‘나’처럼 수학을 못하는 화성 태생 인간도 등장한다. 평범한 이들도 살 수 있는 시기, 비로소 화성 문명은 완성됐다. 그렇지만 화성에서 태어난 ‘수학 못하는 아이’와 지구에서 이주해온 ‘수학 잘하는 아이’의 사이는 벌어진다. 결국 화성에서 태어났지만 수학을 못해 따돌림당하는 아이는 지구로 탈출한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 중력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화성과 나> 역시 SF와 현실 사이의 절반쯤 정도 되는 중력을 지녔다. 책을 덮고 나면 여러 질문들이 생긴다. 화성의 국적, 음식, 생활, 교육 등 소소한 팩트를 넘어, 인간이 화성으로 이주한다면 망해가는 지구에서 이주할 곳이 있어서 낙관할까 아니면 지구를 떠나야 해서 비관할까 궁금해진다.
‘질문 도출’이라는 목표라는 작가의 의도가 달성된 느낌이다. 책은 무겁지만은 않다. 한국인의 ‘간장게장 밥도둑론’을 외국인에게 설파하는 대목, 미사일에 곧 격추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연인이 되어가는 따스한 사랑 이야기, 화성에서는 강인함이 아니라 회복력이 중요하다는 문장들은 반짝인다. 지구의 개발제한구역을 ‘그린벨트’라고 부르듯이 화성의 개발제한구역을 ‘레드벨트’라고 부른 대목도 재치가 넘친다.
배명훈은 “화성에 사람이 사는 걸 상상하니 어두운 거 같다. 행복하게 살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면서도 “멀고 막연한 우주 개발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들은 화성 사람들의 사회적인 삶까지 상상하지 않는데 독자들은 그런 측면에서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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