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출신 대표님의 ‘기습공탁’…“돈 대신 엄벌을” [주말엔] [형사공탁 1년]②
하지만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신설되면서, 피해자 인적사항 대신 사건번호 등만 적으면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절차는 간단해졌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새 제도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KBS는 형사공탁 특례 시행 1년을 앞두고, 관련 판결문 988건을 분석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형사공탁 악용 실태와 개선 방향을 연속 보도합니다.
1. [형사공탁 1년①]전직 조폭 두목의 살인…3억 5천만 원 맡기고 '4년 감형'
2. [형사공탁 1년②]연예인 출신 대표님의 '기습공탁'…"돈 대신 엄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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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형사공탁 1년④]판결 988건 최초 분석…절반 이…
지난달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임이자 의원은 연예인 출신 중소기업 전 대표 30대 A 씨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질의를 할 예정이었지만, A 씨는 결국 국정감사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임이자/국회 환경노동위원
"엉망입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괴롭힘이 아주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이 양반의 행태를 보면 아주 악질입니다."
취재진은 전 대표 A 씨로부터 수년 동안 폭행과 강제추행 등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임직원 15명을 만났다.
■ 재떨이 물 먹이고 라이터로 지지고…"남동생 같아서" 성추행?
직원 1: 대표님이 저에게 여직원 "000과 사귀냐"고 물었고 안 사귄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내가 000이랑 뽀뽀해도 돼? 자도 돼?" 이러는 거에요. 상관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표정이 굳더니 손등으로 코와 인중을 때렸습니다. 안경 벗으라고 해서 안경을 벗고 그대로 몇 대 더 맞았습니다.
직원 2: 명절 때마다 대표님 가족과 임직원 가족들이 다 함께 모입니다. 왕의 가족과 노예의 가족이 모이는 느낌이었죠. 사건 당일 이 모임에서 대표님이 자기 아버지랑 싸우다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주병을 들었습니다. 그걸 말리려고 일어나서 손을 잡은 00을 때렸고, 그걸 말리려던 저희도 때렸습니다.
직원 3: 외부 사람과의 술자리 가면 무조건 '엎드려 뻗쳐'랑 '000 박아' 시킵니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는 팔씨름이나 팔굽혀 펴기를 해보자 하며 힘자랑을 하는데 자기를 이기면 기분 나쁘다고 때리는 식입니다.
직원 4: 장난식으로 툭툭 뺨을 때리는데. 장난이 아니라는 건 맞아보면 알죠. 모욕감을 많이 느끼죠.
직원 5: 충성심을 보이래요. 그러면서 "너 라이터로 지지면 버틸 수 있어?" 그러더니 손등 위에 라이터를 대는 겁니다. 살이 다 탔어요.
직원 6: 500ml 종이컵에다가 담뱃재를 계속 털어요. 그런 다음 소주 같은 걸 붓고 충성도를 보이라며 재떨이 물을 마실 것을 강요합니다.
여성 직원들은 자주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호소했다.
직원 7: 술 취해서 함께 길을 가다가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노래방에서는 테이블 위에 멀리 있는 무언가를 집는다고 허리를 숙인 적이 있는데, 그때 또 성추행을 했습니다. 그런 뒤에는 여럿이 모인 데서 장난처럼 추행 사건을 언급해요. "내가 얘를 00했대. 남동생 같은가보다" 이런 식으로요.
직원 8: 술 먹고 나면 2차로 저희 집에서 술을 더 먹거든요. 제가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항상 바지를 벗고 팬티만 입은 채로 술을 먹습니다."형이니까 괜찮잖아" 이러면서요. 술자리에서 여성 직원들을 옆자리에 앉게 하고, 허벅지나 이렇게 팔뚝을 만지고….
직원 9: 차에서 대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보고 타라고 해서 탔어요. 왜 울었냐고 묻더니 갑자기 "나랑 잘래?" 이러시는 거예요.
직원 10: 사내 연애를 하는데 남친이랑 한번 써보라며 의약품을 주고는 "써봤냐? 다르지 않냐? 좋았냐?" 물어요. 남자친구에게는 제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좋겠다"고 말합니다.
견디다 못한 직원들은 2021년을 전후해 회사를 줄줄이 퇴사했다. 회사 설립 때부터 경영에 깊숙이 개입한 임직원들마저 상해 사건으로 회사를 떠났고, 지분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시작되면서 피해자들은 A 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를 시작했다.
■ "쇄골 친 거 아니냐?" 혐의 부인…선고 전 '기습 공탁'
20대 여성 직원 김 모 씨 역시 2019년 A 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회사 대표인 가해자를 매일 마주쳐야 하는 게 두려웠고, 피해 사실을 가족들이 알까봐 사건 당시 곧바로 대응하지 못했다.
두 달 뒤 도망치듯 퇴사했고 3년이 흐른 지난해 A 씨를 형사고소했다. 물증을 확보해 가까스로 A 씨를 법의 심판대 위에 세웠지만, 김 씨는 A 씨로부터 여전히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A 씨가 혐의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기 때문이다.
공판 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 씨를 향해 A 씨 변호사는 "00이 아니라, 쇄골을 친 게 아니냐?"고 물었다.
A 씨는 김 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의를 시도하는 대신 '형사공탁'을 했다. 폭행과 강제추행 2건은 각각 천만 원을 공탁했고, 또 다른 폭행 건에 대해서는 500만 원을 공탁했다. 3건 모두 선고 5~8일 전 이뤄진 '기습 공탁'이었다.
'기습 공탁'이 이뤄지면 피해자의 방어가 쉽지 않다. 피해자가 법원으로부터 직접 공탁 통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 앞으로 공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뒤늦게 공탁 사실을 알고 양형에 반영되는 걸 막으려면 피해자가 직접 법원을 찾아 '회수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피고인은 공탁을 걸지만, 피해자는 "공탁을 당한다"고 말한다.
A 씨의 기습 공탁은 1심 선고에서 모두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3건 모두 300만 원 이하 벌금형만 선고됐다.
강제추행 피해자 김 모씨는 A 씨의 공탁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먹고 떨어져라, 이거잖아요. 이 사람은 이걸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것도 고작 천만 원으로..." 또 다른 폭행 피해자 역시 공탁 사실에 분노했다. "돈으로 무마하고, 돈으로 빠져나가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정민석 변호사는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된 피해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가해자들이 낸 공탁금을 수령한다"라면서도 이 돈은 결코 피해 회복의 의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엄벌해 달라는 의사를 더는 재판부에 표명할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공탁금을 수령"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수차례 A 씨에게 연락해 해명을 듣고자 했지만, A 씨는 응하지 않았다. 서울 사무실을 찾았지만, 근무 중인 직원들은 전 대표 A 씨가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 '피해 회복' 위한 형사공탁, 피해자에게는 싸워야 할 '거대한 벽'
1심 선고가 내려진 3건 외에도 임직원 4명은 A 씨를 상해와 강제추행 등 혐의로 고소했고,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번에도 A 씨가 기습공탁을 할까봐 가슴 졸인다. A씨의 일방적 공탁이 양형에 반영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강제추행 피해자 김 모씨
"피해자가 저뿐만이 아니잖아요. 저는 000가 사회초년생들, 어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의 왕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더 느껴지더라고요. 재판부가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정말 공감한다면, 공탁금 필요 없으니까 정말 그냥 죄 지은 만큼 벌 받게 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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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kantap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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