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사미'된 정책금융… 설 자리 잃은 특례보금자리론·청년도약계좌

강한빛 기자 2023. 11. 18.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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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오락가락 정책에 금융권 혼란③] 긴 만기에 매력도 글쎄… 취지 빗나갔단 지적도

[편집자주]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갑질' 발언 이후 상생금융 압박이 커지면서 은행 가계대출 금리가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가계빚 축소'와 '이자부담 경감' 목표가 상충해 은행권은 혼란을 겪는 모습이다. 연초에 이어 올 11월에도 금융권은 '상생금융 시즌2'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서민들을 위해 내놓은 정책금융상품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 판매가 중단되는 등 반쪽자리 신세로 전락했다.

청년도약계좌 포스터./사진=뉴스1
◆기사 게재 순서
①"이젠 내리라고?"… 수시로 뒤집는 정책에 속앓이 하는 은행들
② '이자장사' 뭇매에 상생금융 보따리 푼다… 대환대출·이자감면 고민
③'용두사미'된 정책금융… 설 자리 잃은 특례보금자리론·청년도약계좌

#. 내년 1월 청년희망적금 만기가 도래하는 직장인 김철민(32·가명)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적금 만기 후 올 6월 출시된 청년도약계좌로 갈아타기가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장장 5년짜리 상품인데다 금리 매력도가 낮아 선뜻 가입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금리가 더 높은 시중은행 적금이나 짧게 목돈을 굴릴 수 있는 인터넷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청년희망적금 유지도 힘들었는데 대출이자를 갚기도 빠듯하고 내후년 결혼 계획까지 있어 청년도약계좌에 꼬박꼬박 돈을 넣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다.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 청년 금융정책 청년도약계좌의 인기가 점점 식어가고 있다. 2030세대의 목돈마련을 돕겠다는 취지에 맞춰 등장했지만 정작 가입자인 청년층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정책 취지가 빗나갔다는 지적을 받는 건 특례보금자리론도 마찬가지다. 서민의 내 집 마련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무색하게 가계부채 급증의 주범으로 몰리며 반쪽짜리 정책금융이라는 꼬리표를 면치 못했다.


"5년 언제 넣나" 청년들 반응은 '글쎄'


청년도약계좌는 5년간 매달 최대 70만원을 적금하면 최고 연 6% 금리에 정부 지원금을 보태 최대 5000만원의 목돈을 모을 수 있게 설계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나온 '청년희망적금'과 유사하지만 만기가 2년 더 길고 월 최대 납입액도 20만원 더 크다.

최대한 길게 목돈 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지만 반응은 시원찮다. 서민진흥금융원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 간 청년도약계좌를 개설한 청년은 4만4000명으로 8월(12만5000명) 대비 64.8% 급감했다. 지난 10월까지 총 가입자 수는 금융당국이 올해 목표치로 제시한 306만명의 13.8%(42만2000명)에 불과하다.

가입이 저조한 배경으로는 긴 납입 기간이 지목된다. 고금리·고물가에 나갈 돈은 늘었는데 5년 동안 돈을 넣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오르면서 금리 경쟁력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광주은행 '텔레파시적금'(이하 12개월 만기 동일)은 최고 연 6% 금리를, 전북은행 'JB 카드 재테크 적금'(정기적립식)의 경우 최고 연 5.50%를 제공하고 있다. 물론 금융당국은 중도 해지를 막기 위해 청년도약계좌를 담보로 한 대출(적금담보부대출)을 운영하기로 하는 등 정책 보완에 나선 상태지만 소득이 적은 청년층에게는 적금을 유지하는 대신 내야 하는 대출 이자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목소리다.

직장인 A씨는 "요즘같이 돈 쓸 일이 많고 고금리 시기에는 이자가 높은 상품에 가입해 짧게 돈을 굴리는 게 이득인 것 같다"며 "5년 동안 꾸준히 돈을 넣을 만큼 여유가 있는 청년들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책 실패 비난 가중되는 특례보금자리론


사진=뉴스1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정부 취지가 무색하게도 반쪽짜리 정책에 그쳤다는 쓴소리를 듣고 있다. 서민의 주거 안정을 이루겠다며 정부가 야심차게 내놨지만 부동산 시장의 불쏘시개 역할만 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월30일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은 연 소득에 상관없이 최대 9억원의 주택을 담보로 5억원까지 빌릴 수 있는 정책금융상품이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과 비교해 금리가 연 4%대로 저렴하고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포함되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공급액은 2월 1조5000억원 수준에서 3월 7조4000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 8월까지 매달 4조~5조원 가량이 지급됐다. 지난 10월 말까지 41조7000억원이 공급됐다. 수요가 몰리면서 출시 후 약 8개월 만에 공급목표인 39조6000억원을 초과했으며 금융당국은 지난 9월27일 이후부터는 일반형 공급을 중단하고 서민·실수요층을 위한 우대형만 취급하도록 했다.

결국 가계대출 확대의 도화선이 됐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월24일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오기형(더불어민주당·서울 도봉구을) 의원은 최준우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에게 "특례보금자리론이 DSR 제한에 대한 편법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며 "결국 가계대출 확대에 주범이 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수요 예측·부작용 고려 못했나


일각에서는 사전 수요 예측 실패, 정책금융의 뼈대 마련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금융의 의미는 결국 실효성과 제도 취지와의 합치가 중요한데 이 같은 과정이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청년도약계좌의 인기가 생각보다 시들하자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0월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보고서를 통해 "기여금 소요액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적정수요를 감안한 감액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청년도약계좌의 출시 및 운영을 위해 편성된 예산은 총 4999억9400만원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가계부채는 양적 관리도 중요하지만 상환능력 등 질적 관리도 중요하다"며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DSR이 빠져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점이 가계부채를 끌어올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강한빛 기자 onelight9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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