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이룬 '한국 최초 챔피언'…"LPBA는 새로운 도전"

박대현 기자 2023. 11. 1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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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당구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이신영은 LPBA에서 커리어 2막을 연다. ⓒ PBA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지난 9월 한국당구는 낭보를 전했다.

무대는 튀르키예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 주연은 이신영(43)이었다.

이신영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준준결승에서 세계 최강이자 세계랭킹 1위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제압했다.

국내 당구계가 들썩였다. 클롬펜하우어는 그간 한국 선수에게 '철옹성'으로 군림한 인물.

과거 이미래, 한지은이 철옹성에 막혀 분루를 삼켰다. 이신영 역시 3전 3패로 약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초반부터 치고 나갔다. 30-14로 완파했다.

결승 상대 역시 난적이었다. 세계 5위 니시모토 유코(일본).

"2차례 만났는데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일본의 강자였다. 이신영은 굴하지 않았다. 2전3기 끝에 웃었다. 30-18로 눌렀다.

한국당구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역사에 '이신영' 이름이 새겨졌다.

이신영은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당구를 2008년께 시작했다. 입문 때부터 목표는 하나였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라면서 "최초 우승 타이틀을 간절히 바랐는데 그 꿈이 이뤄져 정말 기뻤다"며 환히 웃었다.

▲ 이신영은 "세계선수권대회를 우승하지 않았다면 계속 도전했겠지만 이루고 나니 (새로운) 과녁이 필요했다"며 LPBA 도전 배경을 밝혔다. ⓒ PBA

한 달도 안 돼 다시 '뉴스' 중심에 섰다. 전격 프로행 선언. 3쿠션 세계 챔피언의 여자프로당구(LPBA) 진출에 당구계와 언론, 팬이 집중했다.

"평생의 꿈인 세계 정상에 오르고 새로운 동기 부여가 필요했다. 더 큰 무대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강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우승하지 않았다면 계속 도전했겠지만 이루고 나니 (새로운) 과녁이 필요했다"며 도전 배경을 밝혔다.

"먼저 프로에 진출한 동료들이 테이블이나 룰이 달라 적응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조언해 줬다. 다만 '경험'만한 적응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빠르게 진출을 결심했다."

프로 데뷔전은 녹록잖았다. 2경기 만에 종료했다. 첫 경기는 1.100의 에버리지로 무난히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예선 2라운드에선 15-17로 무릎을 꿇었다.

"많이 당황스러웠다. 첫 경기는 공이 (조금) 잘 맞아 수월히 풀린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날은 다르더라. 생각지도 않던 뱅크샷 중요성이 갑자기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적잖이 당황했다."

"초이스부터 흔들렸다. '이거 잘못 치면 상대한테 좋은 공 가는데' 생각이 확 들더라. 과거엔 (일정 부분) 정해진 초이스가 있었다면 지금은 '과거처럼 쳐도 되나' 혼돈이 온다."

"1점제 경기만 하다 2점짜리 뱅크샷을 공수에 걸쳐 고려해야 하니까(웃음). 여러 상황 변수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 느꼈다."

데뷔전을 마치고 '스리쿠션 제왕' 최성원(46)에게 전화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물어봤다. 최성원 조언은 명료했다. "아예 리셋을 해야 한다" 강조했다.

"(프로행을 결심한 뒤) 최성원 선수에게 많이 물어보고 조언을 듣는다. 이번에도 전화하니 '내가 그랬잖아. 만만히 보면 안 된다고. 그냥 리셋을 해야 해' 말하더라. 그간 공 치던 패턴을 머릿속에 아예 그냥 싹 잊어버리고 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말해 줬다. (데뷔전을 치러보니) 그 말이 정답임을 알았다."

한국 여자당구는 선수층이 얇다. 늘 선수가 부족하다. '체육'과는 동떨어진 길을 걷던 이신영의 당구 입문 계기가 궁금했다.

"2008년쯤 처음 큐대를 잡았다. 그냥 재미로 시작한 건데 (실력이 조금씩 늘고) 어쩌다 보니 동호인 경기도 나가게 됐다."

"스물아홉 살에 IMF가 터졌다. 주변에서 결혼을 엄청 하더라. 그때만 해도 결혼을 필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경제적으로도 불황이 오니까 여성들이) 결혼을 서둘렀다. 내 부모님께서도 '너도 얼른 결혼해서 자릴 잡으라' 말씀하셨고."

"나는 그게 싫었다. 사람마다 삶을 추구하는 방향이 다 다르지 않나. 가정을 꾸리는 삶보다 내 인생을 좀 더 살고 싶단 바람이 더 컸다. 내가 이룰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주위를 살폈고 그때 운명처럼 당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자당구는 선수층이 앏다. 이걸로 도전을 꾸준히 이어 가면 뭔가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결심 이후) 여기까지 오게 됐다. 정말 쉬는 날 없이 치열하게 달렸다. 집-당구장-집-당구장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활도 비슷하다. 당구장을 한 곳 운영 중인데 오전 9시 반에 나와서 손님 없을 때 연습하고 장사하고 그렇게 밤 12시까지 상주한다. (12시에 마감하면) 그때부터 청소하고 뒷정리하고 집 들어가면 보통 새벽 2~3시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오전에 당구장 나오고. 특별한 외부 일정은 거의 없다. 늘 15시간 넘게 당구장에 있는 삶"이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목표가 높다. 부러 꿈을 크게 잡는다. 다만 특정 상대를 겨냥한 과녁은 아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부단히 채찍질하기 위한 원대한 꿈이다.

"목표를 높게 잡는 편이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나태해지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큰 꿈을 그리는 게 습관이 됐다. 보편적으로 '우승이 목표입니다' 말하기보단 그보다 더 (이루기) 힘든 목표를 설정하는 성격"이라면서 "너무 소극적인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과하게 적극적이고도 싶진 않다. 중용의 마음으로 새로운 무대에서 하나하나 꿈을 이뤄가고 싶을 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LPBA 최다 우승이나 에버리지와 같은 여러 기록들, 김가영 선수가 했던 '퍼펙트 큐' 등에 조금 욕심이 난다. 그리고 당구대 안팎에서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는 것도 중요한 표적"이라며 해사하게 웃었다.

이신영은 당구 입문 시절부터 꿈꾼 세계선수권대회 제패를 15년 만에 이뤄냈다. 프로 선수로서 꿈을 듣자 LPBA 입성 15년째의 그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이신영은 또 한 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LPBA 관전 포인트가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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