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30만마리 멍멍이 살릴까…‘개고기금지법’ 연내 제정 파란불
발이 쑥쑥 빠지는 철장에서 태어나 음식물쓰레기를 먹이로 먹으며, 성견이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전기봉에 감전돼 삶을 마감하는 비참한 ‘식용견’의 비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17일 정부와 국민의힘이 ‘개 식용 금지 특별법’을 연내 제정하고 2027년부터 단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78년 개고기를 축산물에서 제외한 이후 45년간 이어져 왔던 개고기 논쟁이 마침내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법 제정되면 내년 상반기부터 단계적 추진
이날 당정이 협의한 ‘개 식용 종식 법제화 및 이행계획’을 보면, 당정은 개의 사육·도살·유통·판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을 연내 제정하고, 3년간의 유예(2024~2026년)를 둔 뒤 2027년부터는 금지 행위에 대한 단속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특별법 제정 이후에는 개를 축산법상 가축에서 제외하고, 모든 개는 동물보호법으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2024년 상반기부터는 개 식용 종식 준비와 지원 대상 확정에 들어간다. 식용견 농장, 도축·유통업체, 개고기 식당 등에 지자체 업장 신고와 함께 사육 중인 개의 감축, 시설·장비 등의 철거를 위한 ‘종식 이행 계획서’를 6개월 이내에 제출하게 할 계획이다. 개의 추가 번식·입식, 농장 신규 개설은 법이 시행되면 바로 금지한다.
개인의 취식 행위까지는 금지하지 않았는데 개인의 자유권을 침해가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물보호법은 ‘잔인한 방법’ 혹은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합법적으로 개를 취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
지자체 신고와 종식 이행 계획서를 제출한 사업자들은 철거와 전업, 운영자금 등을 지원받게 된다. 정부는 농가(1156곳)가 축산·원예업으로 업종을 전환할 경우 행정 지원과 함께 시설 신축·개보수에 필요한 자금을 저리 융자(금리 1~2%대)로 지원할 예정이다. 또 도축·유통 업체(253곳), 개고기 식당(1666곳)에도 점포철거비 최대 250만원, 전직장려수당 최대 2000만원 등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개 식용 사라진 세상, 적극 환영”
동물단체들은 이날 당정이 발표한 법제화 방안에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놓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연간 100만 마리, 현재도 연간 30만 마리가 식용으로 불법 도살되고 있다. 오늘(17일) 발표된 정부의 로드맵은 숱한 동물 학대와 불법으로 점철된 기형적 개 식용 산업에 대한 공식 제동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개 식용 종식 선포와 이행을 환영한다”고 했다.
동물자유연대 또한 “개 식용이 사라진 세상, 너무도 오랫동안 염원해왔다. 가끔 정말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많은 시민분이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온 결과, 마침내 개 식용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법 제정 이후에도 개들을 위해 노력하겠고 했다.
김건희 여사·야당도 한뜻…통과 ‘파란불’
개 식용 종식에 여야 이견이 없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도 개 식용 금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밝힌 만큼 연내 법 제정 가능성이 크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4월 동물단체와의 간담회에서 ‘개 식용 종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제인 구달 박사와의 면담 때도 같은 의사를 밝혔다. 8월에는 동물단체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개 식용 종식을 약속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또한 8일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 식용 관련 특별법’ 제정안은 모두 5건으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헌승, 안병길,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그리고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각 법안에는 식용 목적의 개 사육·도살,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재까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21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며칠 남은 않은 상황이라 최근 동물보호단체들은 시민 3만4000명의 탄원을 국회에 전달하는 등 법안 심사·통과를 촉구해왔다.
정부는 2021년 12월 국무조정실,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식약처 등 관계 부처와 동물보호단체, 육견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위원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출범 뒤 총 23차례의 회의에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 위원회의 오랜 공회전에 정부가 직접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개 식용 종식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빠른 전·폐업 위한 차등 지원책 등 보완해야
특별법은 이제 개들을 안전히 보호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개 식용 금지에 대한 여론이 무르익은 지금 국회 임기 내에 법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어웨어 이형주 대표는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오늘 브리핑에서 현재도 개식용 산업은 현행법을 어기고 있다고 단호하고 명확하게 밝혔다. 정부가 농가, 도축·유통업체, 식당 등에 상세한 전업 지원계획을 밝힌 만큼 육견협회 등은 무리한 보상 요구로 법안 통과를 방해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라 전진경 대표는 유예 기간 중이라도 빠른 사업 종료를 독려할 차등 지원책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진경 대표는 “3년의 유예 기간을 주고 똑같이 보상안을 지급한다면 누구나 더 길게 영업을 하고자 할 것이다. 그 사이에도 개들은 매해 30~50만 마리가 도살된다. 전·폐업을 빨리 신청한 업자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한육견협회 식주권·생존권 투쟁위원회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 먹을 권리라는 기본권을 강탈하는 개 식용 금지 악법 추진을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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