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0원’→野 7000억 ‘이재명표’ 예산…경제활성화 효과 물음표
“지출액 증가 매우 미미, 소비 진작 효과 거의 없다”
어차피 써야 하는 학원비·병원비 예산으로 10% 보조해주는 꼴
이른바 ‘지역화폐’라고도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부터 추진해 온 대표적인 ‘이재명표’ 예산인데,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예산안에 ‘0원’을 반영해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역사랑상품권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예산으로 발행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내년에 경제성장률 3%를 달성하려면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측면은 거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용자가 상품권을 학원비 등 다른 명목으로 써 민주당이 기대한 대로 ‘골목상권 활성화’가 아니라 정부·지자체 예산으로 학원비나 병원비를 보조해 줄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野, 文정부 때보다 1000억 늘려 편성 추진…이재명 “지원 의무화할 것”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일부 지자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이다. 지자체 경계를 넘어가면 쓸 수 없다. 소매점에서 1만원어치의 물품을 살 수 있는 1만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통상 9000원에 살 수 있어서 주민들은 10% 정도 이익을 본다. 차액 1000원은 정부와 지자체 예산으로 보조한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지자체는 국비 지원이 시작된 2018년을 기점으로 급증했고, 판매액도 크게 늘었다.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이 예산은 문재인 정부 때 편성된 2022년도 예산에서 6053억원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처음 편성한 올해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했다가 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여 3525억원 반영됐다. 민주당은 올해에도 정부가 전액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하자 반발하며 지난 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예산 7053억원을 증액시킨 예산안을 단독으로 의결했다. 다만 예산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해 여야 협상 과정에서 증액 여부와 규모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편성을 반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발행 주체가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국비는 원칙에 따라서 (지원을) 그만 하고, 지자체 자율적 판단과 책임 하에 발행하는 것이 맞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190개 지자체 중 국비 지원 여부와 상관 없이 지역 예산만으로도 발행하겠다는 곳이 188개라는 조사 결과도 언급했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지난 2일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3% 성장률 회복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쌍끌이 엔진’으로 연구개발(R&D)과 미래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총수요 부족을 개선하기 위한 소비 진작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말한 ‘소비 진작’을 위해 지역화폐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게 이 대표 주장이다. 그는 “이미 소득지원과 경제 활성화라는 이중 효과가 증명된 지역화폐로 신속히 내수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지역화폐 발행과 지원을 의무화해 ‘계속 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을 반드시 편성하도록 ‘대못’을 박겠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미사어구에 불과한 지역사랑상품권 정책 목적 배제해야”
지역사랑상품권이 이 대표 주장과 발행 목적처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로 재임하던 2020년 경기연구원은 지역사랑상품권을 이용해 경기도 소상공인 매출이 월 평균 206만원 증가했고, 지역사랑상품권 결제액이 100만원 증가할 때 매출액은 145만원 늘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일부 역내(域內) 소매업 매출이 증가하나 인접 지역 매출이 감소한 데 따른 효과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것은 국가 전체 후생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당시 “얼빠진 국책연구기관”이라고 비난했다.
그 뒤 정부 예산 지원을 등에 업은 지역사랑상품권이 더 많이 쓰이면서 효과를 더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도 쌓였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의 윤상호 연구위원은 비씨카드와 지역사랑상품권 운영 대행사 코나아이가 제공한 경기도·인천시 거주자 2018~2020년 결제 자료를 금융보안원을 통해 결합했다. 이 자료로 지역사랑상품권의 소비 행태 변화와 소비 진작 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지난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윤 연구위원이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에 대해 내린 결론은 “지역사랑상품권 도입·사용에 따른 주민 지출액 증가 정도는 매우 미미하고, 소비 진작 효과는 거의 없다”이다. 주민들이 대형할인점에서 주로 구매하던 물품·서비스 중 일부를 동네 슈퍼마켓에서 대체 구매하는 소비 행태 변화는 있지만, 지출액 자체는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대책으로 윤 연구위원은 “미사여구에 불과한 지역사랑상품권의 정책 목적을 배제하고, 지역 내 소상공인·자영업자 경쟁력 강화로 목적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행차 방문한 외지인이 지역사랑상품권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만들어 소비처를 소상공인·자영업자 매장으로 유도하는 방법 등을 언급했다.
◇하나로마트·종합병원·주유소가 지역사랑상품권 결제 상위 차지
윤 연구위원이 지역사랑상품권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적다고 지적한 근거 중 하나는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업종이 생필품 판매업종이 아닌 요식업, 교육·학원업, 의료업 등에 집중된다”이다. 학원비나 병원비는 지역사랑상품권이 없더라도 어차피 써야 하는 돈이기 때문에, 정부·지자체 예산으로 10% 할인 효과를 주더라도 소비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도 비슷한 지적을 했다. 송 의원은 지난해 지역사랑상품권을 많이 발행한 지자체인 전북 익산(5174억원), 충북 청주(4194억원), 전북 군산(4074억원), 충남 천안(3952억원) 등 4곳의 2020~2022년 결제 데이터를 행안부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지역사랑상품권은 주로 농협 하나로마트나 종합병원, 주유소 등에서 사용됐다. 익산은 3년 간 결제액 1위는 하나로마트, 3위는 원광대병원이었다. 청주는 3년 간 충북대병원이 결제액 상위 3~4위에 들었다. 군산은 3년 간 결제액 2위가 주유소였고, 천안은 3년간 순천향대병원이 결제액 4~8위로 나타났다.
송 의원은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와 전혀 달리 특정 업체로 상품권 매출 쏠림 현상이 과도하다”며 “주유소와 병원 등에 과다 사용되어 인위적 경기 부양 효과도 없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