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공화국, 돈 없는 서민 노린다] 1-1 신종 로또사기 체험해보니

이문수 기자 2023. 11.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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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번호는 미끼에 불과
추후엔 불법 도박 누리집으로 이끌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판돈 걸게 해
사기 대상자 대부분은 농민이나 자영업자 같은 서민들
철저하게 익명의 가면 속에 숨어
잠재적 피해자 정신적으로 지배

농민, 자영업자와 같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최근엔 로또 번호를 무료로 알려주겠다고 꾄 후 불법 도박으로 유도하는 신종 사기가 독버섯처럼 번져 나간다. 충북 청주에 사는 한 귀농 청년으로부터 비슷한 수법으로 수억원의 피해를 봤다는 제보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유사한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조직과 비대면으로 접촉한 후 실제로 어떻게 피해자를 양산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기자의 체험, 피해자 사례, 전문가 조언을 토대로 신종사기의 종류와 방식, 사기범의 전략, 피해 예방법 등을 네차례에 걸쳐 파헤쳐본다. 

로또 당첨번호를 무료로 알려주겠다는 홍보성 문자
로또 전문가라 자칭한 사람의 네이버 밴드 화면
로또 당첨번호를 공유하는 단체 대화방과 연계된 사행성 게임 누리집 화면

◆로또 번호는 미끼에 불과했다=8월초 오전 출근길에 한통의 기괴한 문자를 받았다. ‘몇회차 로또 프리미엄 10조합 번호 무료나눔 즉시 공유해드립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몇일 전 한 농민으로부터 로또 당첨번호를 미리 알려준다고 접근한 후 사행성 도박에 발을 담그게 해 수억원을 잃었다는 제보를 들은 직후다.  

문득 그들의 수법이 궁금했다. 추가 피해를 막으려면 새로운 형태의 사기 행각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기범이 안내하는 길로 순순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먼저 스마트폰 문자 안 웹주소를 눌렀다. 누르자마자 네이버밴드로 이동한다. 밴드 상단엔 ‘로또의 신 이상준’이라는 문구가 크게 걸려 있다.  화려한 수식어로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겠다’는 홍보 문구가 이목을 끈다. 전형적인 ‘로또 번호 사기’ 방식이다. 

로또 번호를 받으려면 또 다른 웹주소를 눌러 이동해야 한다. 이번엔 카카오톡 1대1 오픈채팅방이다. 여기에도 ‘로또의 신 이상준 TV’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채팅 참여하기를 누르자 대화방이 뜬다. 자신을 이상준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5주 연속 당첨을 달리고 있는 로또 분석가입니다. 수익 보시도록 정성껏 상담 도와드릴게요~”라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대화방 프로필 사진 속 ‘이상준’은 행복해 보인다. 가족이 여행 도중 단란한 오후를 보내는 모습이다. 아마도 프로필은 예비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사진을 도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화방 속 남자는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가며 로또 분석 방법, 당첨자 사례 등을 공유해준다. 사기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마드(유목민)’가 따로 없다. 그가 두개 웹주소를 알려준다. 하나는 1000여명이 들어가 있는 단체 대화방, 다른 하나는 사행성 도박을 할 수 있는 ‘ 베트맨(BETMAN)’이라는 이름의 누리집이다. 

알고 보니 로또 번호는 미끼에 불과했다. 대화방은 한마디로 대화방 속 사람들을 사행성 게임으로 유도하는 공간이다. 베트맨이란 이름의 누리집에서는 야바위 수준의 간단한 게임이 이뤄진다. 판돈을 걸고 홀짝이나 1·2·3번 가운데 하나를 맞추면 확률에 따라 금액을 가져가는 식이다. 대화방에서는 게임이 이뤄지기 몇분 전 게임 당첨 방식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513회차 세번의 게임에서 걸어야 할 것은 홀수, 3번, 1번입니다”라고 일러주면 참여자는 그 말대로 미리 환전해놓은 포인트를 판돈으로 건다. 

◆사기의 비극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시작한다=사행성 게임이 끝난 후 참여자 일부는 몇만원의 돈을 땄다며 대화방에서 환호작약한다. ‘어~~정말 돈을 딸 수 있는 건가?’라고 미혹될 찰나! 정신이 번쩍 든다. 

네이버밴드→1대1 대화방→단체 대화방→도박 누리집을 거치는 동안 내 개인정보가 죄다 털린 것이다. 대화방에서 나이와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해당 누리집에서는 회원가입을 할 때 주민등록번호(앞자리)·주소·계좌번호 등을 기재해야 했다. 

반대로 이상준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사람의 정보는 하나도 없다. 복기해보니 ‘우리 만남은 전부가 비대면’이었다. 유사시 경찰에 범인의 몽타주라도 넘겨야겠다는 생각에 어렵사리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상준 대표님 돈을 벌고 싶어서 상담하고 싶은데요. 만날 수 있을까요.”

“대화방에서 상담 가능하세요. 굳이 찾아오실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목돈이 있는데 선생님 믿고 좋은 곳에 투자하고 싶어서요. 가까우시면 꼭 찾아뵙고 싶어요. 전 서울에 살아요. 연락처라도 알려주시겠어요?”

“아 그러세요~아쉽게도 대부분 직원이 외국 출장중이라서요. 다음에 제가 서울 가면 따로 연락드릴게요.”

피해자의 비극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시작한다. 나는 그를 모르고, 그는 나를 안다. 금전 문제를 포함해 수틀리는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그에게 읍소해야 하고, 그는 언제든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로또, 천기누설은 없다=물론 로또 번호를 알려주긴 한다. 매주 금요일 오후 10개의 조합을 대화방에 있는 개개인에게 뿌린다. 기자도 7~8차례 걸쳐 번호를 받아봤지만 5등 당첨조차 되질 않았다. 

기실 ‘로또 당첨번호 예측’은 완벽한 사기다. 가령 과거 당첨번호를 분석해 숫자를 조합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비조건부 확률’을 ‘조건부 확률’인것 마냥 호도하는 행위다. 쉽게 말해 이미 나온 확률값이, 앞으로 나올 확률값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대략 814만분의1. 신의 영역에 인간이 도전장을 낸 것 자체가 난센스! 비상식이다. 

단체 대화방에서도 로또 번호가 공개된 날 장탄식이 이어진다. ‘5주 연속 당첨을 달리고 있는 로또 분석가’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1000명 가까운 사람 가운데 당첨자는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피해자 대부분은 돈 없는 서민이었다=사기범이 만들어놓은 대화방은 거대한 공동체다. 서로 일상을 공유하며 친밀감을 형성한다. 게임이 끝나거나, 로또 번호가 나온 날은 위로의 말을 주고 받느라 하루에도 수천번의 대화가 오간다. 일상이 분주하게 돌아가는 직장인은 대화에 끼어들 틈도 없다. 

익명성이 보장돼서일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이도 많다.  농지 사기를 당했다는 농민, 대출 빚에 허덕인다는 자영업자, 아기 분윳값도 내기 어렵다는 주부, 월급이 쥐꼬리만하다는 직장인…

이처럼 대화방 속 잠재적 피해자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다. 급전이 필요한데 비빌 언덕이 없는 사람들이 로또와 불법 도박에서 마지막 희망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억원을 탈취해가는 사기꾼의 먹잇감으로는 힘없는 사람들만 남는다. 자산가에겐 몇백만원은 없어도 그만인 푼돈이지만, 서민에게는 당장 생존에 필요한 마지막 동아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대화방에선 수시로 ‘솎아내기’ 작업이 이뤄진다. 이른바 반체제 인사를 대화방에서 추방시키는 일이다. ‘로또가 왜 당첨되지 않느냐’며 따지는 사람, ‘지금 하는 게임이 불법이 아니냐’고 물어본 사람, 오랫동안 사행성 게임에 참여하지 않아 수익성에 별반 도움이 되지 사람은 모조리 강퇴(강제 퇴장)된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에선 대화방 운영진의 발언은 하나의 교조가 된다. 예를 갖춰 대답해주는 것은 기본이요 ‘사또 밑에 이방’처럼 그 세계의 질서를 잡는 이도 나타난다. 

이미 심리적으로 주도권을 뺏긴 대화방 사람들은 사기꾼의 꾐에 넘어가기 딱 좋은 상태로 변한다. 운영진은 하루에도 몇번씩 개인 상담하라고 선전한다.  사행성 게임을 할 때 ‘개인 솔루션(과외)’를 해주겠다고 한다. 최소 500만원은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 수익은 원금의 2~3배가 기본이라고 했다. 

이제서야 사기범의 민낯이 드러났다. ‘무료 로또번호 나눔’으로 환심을 산 후 건당 500만원이 넘는 불법 도박으로 유도하는 것, 이것이 최종 목적지였다. 대화방 1000명 가운데 100명이 건당 500만원짜리 사행성 게임에 2번 정도 참여해 돈을 잃었다고 가정하면 피해액은 10억원(100명*2번*500만원)에 이른다. 비슷한 대화방을 여럿 운영하고 있다면 피해 규모가 얼마나 불어날지 도무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전화로 “나에게 투자하면 2~3배 이득을 보게 해주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에게 선뜻 거액을 송금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황당무계한 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가상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익명의 가면이 이렇게나 무섭단 말인가. 

11월16일 오후 5시. 개미지옥 같은 대화방에서 사기꾼의 함정에 빠진 이들이 여전히 상냥한 메시지를 올리는 중이다. 

“대표님~말씀하신 500만원 거의 다 모아갑니다. 이번 주 안으로 개인 솔루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표님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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