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을 떠도는 유령들[김창길의 사진공책]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침몰할 무렵, 프랑스에서 축문(祝文)이 울려 퍼졌다. “망령(revenant)은 올 것이다. 늦지 않게 올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올 것이다.” 자크 데리다의 목소리였다. 학계는 술렁였다. 정치적인 사건에 말을 아꼈던 철학자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불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데리다의 입에서 ‘마르크스’니 ‘유령’이니 하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귀를 막으려 해도 들려오는 어떤 노래 때문이었다.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 울려퍼지는 자유주의의 승전가. 일본계 미국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부르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이라는 광시곡인데, 후렴구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장송곡이 반복됐다.
<마르크스의 유령들>(그린비)의 1막에서 데리다는 햄릿의 독백을 낭송한다. “시간이 이음새에서 어긋나 있다(The time is out of joint)”. 어긋난 시간의 장막 틈새에서 유령이 등장한다. 한반도의 무대 위에 ‘공산전체주의’라는 허깨비가 배회할 무렵, 사진작가 김신욱은 동해로 향했다. 러시아의 옛 망령을 불러내기 위해서였다. 유령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y Donskoy, 1359~1389)’. 몽골의 킵차크한국과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모스크바 공국의 영웅이다. 위대한 이름은 늦더라도 되돌아온다. 북극해의 얼음을 뚫고 부상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몸집으로. 1980년에 진수된 세계 최대 핵잠수함의 이름을 소비에트 연방은 ‘드미트리 돈스코이(TK-208)’라고 불렀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대한해협에서도 등장했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함대에 밀려 블라디보스토크로 퇴각하던 러시아 발틱함대의 순양함 이름도 돈스코이였다.
“5월27일 오후 4시30분경 일본군은 상황에 따라 순양함이나 수송함에 사격을 가했는데, 그 사격은 매우 정확했다. … 마지막으로 날아온 포탄이 배 뒷부분에 있는 연통에 명중했다. … 이때 울릉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령은 울릉도로 방향을 바꿔 섬 부근에 가서 격침시키겠다고 밝혔다.” (원희복, <보물선 돈스코이호 쫓는 권력 재벌 탐사가>, 공명)
돈스코이라는 이름이 한반도의 무대에 재출현한 것은 새천년의 마지막 달이었다. 경향신문 원희복 기자는 2000년 12월5일 ‘보물선을 찾았다’는 특종을 1면에 내민다.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최대 추정치 50조∼1백50조 원 상당의 금괴를 싣고 울릉도 근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발틱함대의 수송함 돈스코이호의 선체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보물선 뉴스는 뉴욕타임즈 등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되며 세상을 술렁이게 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돈스코이호의 보물이 러시아로 귀속될 것임을 밝히며 외교 문제로 급부상했다. 발굴 사업을 맡은 동아건설은 파산에 직면했지만, 돈스코이호가 발견됐다는 뉴스로 주식이 폭등했다.
동해의 유령은 반복해서 출현했다. 2018년의 돈스코이호 보물선 발굴 사업이 폭등시킨 것은 주식이 아니라 비트코인이었다. 김신욱 작가가 돈스코이라는 망령을 접하게 된 것은 바로 2018년도의 사건이다. 그는 비평가 진중권이 해석한 데리다의 유령론을 떠올렸다. 유령은 “아직 실체는 없지만, 분명히 현실의 층위 위에 얹혀서 아른거리는 어떤 형상, 존재하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부재한다고 할 수도 없기에 섬뜩하게만 느껴지는 이 형상”이다.
뮤지엄한미 삼청별관에서 오는 12월까지 열리는 김신욱 작가의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은 ‘실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아 일종의 유령’을 찾아 나서는 사진전이자 사진집 제목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찍겠다는 야심 찬 기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북부 하이랜드의 거대한 호수에 공룡이 산다는 신화를 <네시를 찾아서(2018~2020)>라는 제목으로 사진에 담은 이력이 있다. 지난해에 찾아 나섰던 것은 <한국 호랑이(2021~)>였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가 협잡꾼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겠다. 솔깃한 소재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켜 유명해지고 싶은 얼치기 작가 말이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섣부른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김신욱 작가의 보물섬에는 우리 눈을 현혹시키는 금화 한 닢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섬에는 쓰레기만 보인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가 사진에 담고자 했던 것은 보물이 아니라 유령이었던 것이다.
유령은 실체가 없다. 살과 피와 뼈가 없다. 냄새도 없을까? 아무튼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유령의 형체다. 여기서 우리는 언뜻 상관없을 듯한 햄릿의 유명한 독백에 대한 번역을 잠시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한국에서 흔히 알고 있는 “사느냐 아니면 죽느냐”라는 문장 말이다. 영문으로 “to be or not to be”인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으로 풀이되는 해석이 항상 정답일 수는 없다.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모범 답안 하나를 제시한다. “존재하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가”. 프랑스인의 영문 해석은 ‘유령론(Hantologie)’으로 이어진다.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배회하는 것이 유령이다. 유령론은 존재론을 넘어선다.
유령은 가끔 목격된다. 아이들 장난처럼 유령은 하얀 망토를 뒤집어쓰고 출현한다. <햄릿>의 허깨비 왕은 갑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 형체가 없는 유령은 무언가를 뒤집어써야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유령의 실체가 아니라 하얀 망토와 갑옷뿐이다. 하지만 유령은 우리를 볼 수 있다. 데리다는 이렇게 “우리를 응시하는 이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면갑(面甲) 효과”라고 설명한다. 투구의 일부로 얼굴을 가리는 껍데기가 면갑이다.
유령은 말을 건다. 면갑을 쓴 허깨비 왕은 햄릿을 노려보며 말한다. “나는 네 아비의 유령이니라!” 햄릿은 유령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철갑에 가려진 왕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표현에 따르면, 햄릿은 유령의 목소리에 ‘내맡겨져’ 있다. 그렇다면 돈스코이라는 유령은 어떤 말을 했던 것일까? 나는 보물선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들은 돈스코이의 목소리에 내맡겨진다. 발틱 함대의 병사들에게 지급할 금화와 은화 그리고 금괴가 돈스코이호에 실려 있느니라! 진위가 증명되지 않은 유령의 말은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주식이 폭등하고 가상화폐 시장이 술렁였다. 신기하게 바라볼 이유는 없다. 비트코인이나 주식 역시 화폐와 마찬가지로 교환가치만 있을 뿐이고 사용가치가 없는 사물(thing)이라는 점에서 허상이기 때문이다. 칼 마르크스는 상품도 물신(物神)이라 했다.
“죽은 사람의 궤짝 위에 열다섯 명의 뱃사람 / 어기여차 / 그리고 럼주 한 병!”
영국 블랙힐 항구의 벤보우 제독 여인숙에서 해적 노래가 울려 퍼진다. 타르가 발린 머리와 오른쪽 뺨에 칼자국이 새겨진 선장 빌리의 궤짝에는 보물섬으로 향하는 지도가 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의 서막은 그렇게 올랐다. 김신욱 작가의 보물섬 전시장 입구에도 지도와 같은 단서들이 제공된다. 한반도에 흩어져 있는 보물에 대한 기사들, 보물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 그리고 나침반을 대신하는 태블릿 PC, 그리고 탐색일지…. 관객들은 이것들을 배낭에 짊어지고 보물섬 탐험을 떠난다. 돈스코이호의 침몰을 지켜본 울릉도, 러·일전쟁 승전탑이 있는 취도, 일제 육군 대장 야마시타가 숨겨놓은 금괴가 있다는 부산 문현동과 중죽도, 그리고 제주의 산천단…. 하지만 사진 어디에서도 보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전쟁의 상흔들만이 지워지지 않은 채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풍경들. 일제 58군 사령부가 주문했던 제주도를 찾았던 김신욱 작가는 이전에 방문했던 제주도와는 다른 장소로 느껴졌다. 작가는 노트에 적는다. “이 비극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이 모든 인과관계가 시간이 지나서 단지 보물과 숨겨진 금괴 등으로 단순화되어 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실이….”
같은 공간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르다. 인문지리학자 ‘이 푸 투안’은 “공간에 우리의 경험과 삶, 애착이 녹아들 때 그곳은 장소가 된다”고 했다. 이른바 공간(space)의 개념과는 다른 ‘장소(place)성’인데, 김신욱 작가가 지속적으로 사진에 담고자 했던 내용이다. 그가 주목했던 장소들은 이음새가 어긋난 경계의 지점들이다. <경계지(Edgeland)>에 등장하는 경기도 파주 초평도는 지리적으로는 임진강 남북의 중간에 있는 작은 섬이며, 정치적으로는 남한과 북한의 경계에 있는 민통선 지역이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에 등장하는 섬이라는 공간도 육지와 바다의 모호한 경계가 되는 작은 장소이다. 경계지에서 시간은 종종 이음새가 어긋나 있다. 충분한 애도가 없었기에 시간은 더이상 앞으로 흐르지 못했던 것이다. 어긋난 시간의 틈새는 때로는 소란하다. 김신욱 작가가 찾아다녔던 보물섬에는 역사의 비극과 금괴를 둘러싼 풍문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보물섬: 출몰하는 유령들>의 본막에 등장하는 사진들은 그러나 고요하다. 전작 <나이트 워치(The Night Watch)>에서 느껴지는 심령주의적 분위기도 흐르지 않는다. 보물섬 사진들은 배우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희곡의 무대처럼 보인다. 김신욱 작가는 관객들에게 사진의 무대에 오를 것을 제안한다. “역사의 한 종언의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유령론’을 제안했던 데리다처럼 말이다. 보물섬의 무대에 오른 관객들은 햄릿처럼 독백을 되뇔 수도 있고, 데리다처럼 유령을 부르는 축문을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데리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아테네의 타이먼>의 한 대사를 읊는다.
“이만큼 황금이 있으면 만들 수가 있지. 흑을 백으로, 못난 것을 아름답게, 부정을 바르게. 비천을 귀하게, 늙음을 젊게, 비겁을 용기로…. 이 노란 노예는…. 늙은 문둥이를 숭배하게 하리니….”
축문이 끝나자 서서히 나타나는 보물선의 유령들. 나는 보물섬의 무대에 올라 유령의 면갑을 벗긴다. 그러나 면갑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보이지 않는 그것이 바로 욕망이라는 것을. 욕망에 다가설수록 또 다른 욕망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렇게 욕망의 유령은 올 것이다. 늦지 않게 올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올 것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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