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도 치킨을 판다[일타쌍피 스토리노믹스]

박병률 기자 2023. 11.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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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OTT를 살린 K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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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무빙’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를 살렸다면 <무빙>은 디즈니플러스를 살렸다. 박인제·박윤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무빙>은 몰락해가는 디즈니플러스가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분기 디즈니플러스의 글로벌 가입자는 전분기보다 700만명이 늘어났는데, <무빙>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김소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대표는 “<무빙>은 디즈니플러스 론칭 이후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라며 “본사에서도 한국 콘텐츠를 주요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은 강풀의 동명의 웹툰이 원작이다. 초능력 가진 전직 정보요원들과 그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거대한 위험에 맞선다는 내용의 한국판 히어로물이다. 20부로 제작된 이 작품은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차태현 김희원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고3생 봉석은 하늘로 나는 능력을 가졌다. 봉석의 친구 희주는 아무리 다쳐도 금방회복이 되는 초재생 능력을 가졌다. 봉석네반 반장 강훈은 엄청난 힘의 소유자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거나 아파트 3층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다. 이런 능력은 부모들도 똑같다. 아이들은 모두 ‘정원고’에 다닌다. 그것도 한반에.

알고보니 초능력자들은 젊은 시절 국가정보원 요원으로 일했다. 이제 이들은 은퇴했고, 조용히 사람들 틈에 묻어 산다. 세상이 자신들을 잊혀주기를 바라지만, 어느날 위기가 닥친다. 전직 요원들이 하나둘씩 살해, 아니 제거를 당하고 있다. 의문의 킬러는 전직 요원들의 자녀들도 노린다. 그들의 능력을 유전받았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초능력을 갖고 있고 정보요원으로도 국가일도 오랫동안 일했지만, 퇴직 후 이들이 하는 일은 공통점이 있다. 강훈이 희수에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도 자영업 하셔”

그들도 ‘자영업’을 한다

봉석네는 남산돈까스를, 희주네는 신선한 치킨집을 한다. 강훈네는 훈이네 슈퍼마켓을 운영한다. 킬러에 의해 제거된 전직 국정원 요원들도 건강식품판매, 헌책방, 미용실 등을 하고 있다.이들이 영위하는 것은 자영업이다. 전직 요원들이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일반인과 어울려 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영업을 택했을 수도 있고, 엄청난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자영업말고는 딱히 할 것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쪽이든 자영업자가 한국사회에 그만큼 많다는 방증도 된다.

취업자 5명 중 1명은 자영업자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영업자수는 563만명으로 전체 취업자(2809만명)의 20.1%나 된다. 이같은 자영업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중 6번째로 많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은 10%가 안된다. 다만 자영업자수는 2002년 621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 줄고 있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자영업자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와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로 나뉜다. 특징적인 것은 2018년 이후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증가하고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원을 채용할 수 없는 영세한 1인 사장님들이 많이 증가한다는 것은 경제전체적으로 볼 때 썩 긍정적인 통계는 아니다. 자영업이 그만큼 어려워 지고 있다는 방증도 되기 때문이다. 돈까스를 파는 봉석네, 치킨집을 하는 희주네, 슈퍼마켓을 하는 훈이네도 모두 고용원없는 자영업자다.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은 나빠지고 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 연구를 보면 2021년 소상공인이 한 해 평균 올리는 매출은 2억2500만원으로 영업이익은 평균 2800만원에 불과했다. 한달에 약 230만원 남짓한 돈을 자영업자들이 벌고 있다는 뜻이다. 부채는 많았다. 빚있는 자영업자는 59.2%로 절반이 넘었고, 사업체당 평균 1억7500만원의 빚이 있었다.

희주는 학교에서 일진들과 17대1의 싸움을 벌인다. 합의금으로 집까지 팔게 된 희주의 아버지 주원은 프랜차이즈치킨 집을 연다. 프랜차이즈는 자영업자들의 비교적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맹점에서 제공하는 레시피와 재료를 쓰면된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희주는 말한다. “아빠 그런데 치킨집을 프랜차이즈로 하는 것은...”

디즈니플러스 제공

과거 ‘배추장사를 한다’고 하면 자영업을 의미했다. 지금은 바뀌었다. ‘치킨집을 한다’다. 그만큼 치킨집이 많다. 국내 치킨집 수는 전세계 맥도날드보다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치킨집이 이렇게 증가한데는 프랜차이즈의 역할이 컸다.

프랜차이즈,명과 암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800개, 브랜드는 1만2000개, 가맹점은 33만개에 달한다. 특히 가맹점수는 전년에 비해 무려 22%(6만4000개)나 늘어났다. 치킨과 커피전문점, 편의점은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업종이다. 프랜차이즈는 창업이 쉽지만 가맹본부에 지급해야할 비용이 크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매출이 커도 업주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이 적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유의동 의원이 공정위로 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치킨 가맹점주들이 부담하는 차액가맹금(본사의 물류 마진)은 3110만원이나 됐다. 제과제빵(2977만원), 피자(2957만원) 등도 적지 않았다. 희주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닌 셈이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서울시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는 강풀만화거리가 있다. 이곳은 <무빙>의 실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시는 이곳에 <무빙> 캐릭터 조형물을 설치했다.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인데 이 인근은 천호동 로데오거리 등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K콘텐츠는 거대 글로벌 OTT뿐 아니라 K자영업자에게도 힘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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