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은 문제라 생각하지만 기저귀 가는 법은 모르는 당신께 [젠더살롱]
하나둘 조카가 생기고 있다.
엊그제까지 나랑 헛소리하면서 술 퍼마시던 친구들이 엄마, 아빠가 됐다는 소리다. 부모라는 건 되게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내 친구들이 부모가 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그래도 당장은 눈치껏 함께 기뻐해주고 있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애국자가 된 친구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하나둘 부모 됨을 경험하는 친구들 모습을 보니 애초 생각과 다른 게 너무 많다. 최근 모임에서는 엄마가 된 두 친구를 만났다. 그들 모두 부모에게 잘 하라는 철든 말과 함께 그간의 고생을 줄줄이 이야기해주는데 그 세계가 너무 낯설고 놀라워 맞장구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두 엄마들은 양손에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자유로이 밖을 걸어본 게 얼마만이던가 감탄하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밖을 거닐었다. 생각해보면 성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부모가 되는 과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학교에서도 정자와 난자, 착상과 분열 같은 것은 이야기해줄지언정, 임신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변하고 어떤 증상을 겪는지, 어떤 방법으로 출산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기저귀나 분윳값은 얼마이고, 신생아는 얼마나 자주 수유해야 하며 트림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임·출·육(임신, 출산, 육아)은 애국으로 포장된 개인사일 뿐이었다.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SRHR)를 아시나요?
임신, 출산, 육아를 비롯해서 성적 주체로서 개인의 활동과 사회적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그럴싸하게 표현하면,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SRHR)라 할 수 있다.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에서는 이를 ‘모든 개인이 전 생애에 걸쳐서 폭력·강압·차별·낙인 없이 자신의 몸과 성, 재생산에 관련하여 건강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존중받으며 관련 시설, 재화, 정보 일체에 대해 방해받지 않고 접근할 권리, 그리고 이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과 선택을 할 권리’라고 설명한다. 골치 아픈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앞서 봤던 것처럼 애국으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되면서 오롯이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겨왔던 재생산에 대한 권리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보장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이거 몰라도 수백, 수천 년 동안 알아서 잘 하고 잘 낳으며 살아왔다고, 그게 뭐 중요하냐고 말할지 모른다. 긴말할 것 없이 과거 모성사망지표를 보라 하고 싶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기 이전 약 7%의 여성이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고 한다. 역사서에서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임신하고 또 출산하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은 더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당장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 명당 모성사망자 수로 모성사망 측정을 위해 개발된 지표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표)는 2021년 기준 8.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명보다 낮은 편이지만, 1995년에는 이의 두 배인 20명에 달했다. 단지 피임 기구, 의료 기술 발달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성불평등지수(GII: Gender Inequality Index)에 괜히 모성사망비와 같은 재생산 건강에 대한 지표를 포함하는 게 아니다. 성차별적인 사회문화는 여성의 재생산 건강과 직결되어 있다. 즉 저절로 잘 낳고 잘 살았던 적 없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정도에 달할 수 있게 되었고 아직도 이게 최선이라고 말하기에는 변해야 할 지점이 많이 남았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재생산에 관심 갖는 남성 찾기
대표적인 것이 이 분야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과 참여다.
채용성차별, 성별임금격차 같은 일자리 문제나 불법촬영, 성희롱, 성폭력 같은 문제에도 남성들의 관심이 크지는 않지만 이 분야는 그 정도가 더하다. 잘 모르는 것을 넘어, 관심 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심지어는 관심을 두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편으로 어떤 맥락인지 이해한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고 육아 역시 오랫동안 여성의 역할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우리가 무성생식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성과 재생산이 어느 한 성별의 문제일 수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문제는 이런 무관심에서 출발한다. 당장 저출생 문제만 두고 봐도 그렇다. 모두가,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입을 모아 한국의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남성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나는 콘돔부터 잘 사용하는 게 그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뜬금없는가? 콘돔은 예상하지 못한 임신과 성매개 감염을 예방하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과 상대와의 관계에 대한 존중을 보여줄 수 있다. 현실부터 살펴보자. 질병관리본부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18~69세 남성 중, 성관계 시 콘돔을 항상 사용하는 비율은 11.5%였고 자주 사용은 9.8%였다. 국립보건연구원에서 2020년 발표한 '수치로 보는 여성'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피임실천방법에서 콘돔은 36.9%였다. 문제는 피임 성공률이 낮아 교육 시간에는 더 이상 피임방법이라 이야기하지도 않는 월경주기법이 35.2%, 질외사정이 32.8%라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를 비롯해서 각종 성매개 감염을 예방할 수 있거니와 비혼 여성 거의 대다수가 경험하는 원하지 않는 임신에 대한 불안을 줄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단계가 콘돔이다. 그런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상대와 최소 몇 년을 협업해야 하는 재생산에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진정 상대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책임질게”라는 말 대신 행동이 앞서야 한다. 다시 말해, 콘돔은 남성이 저출생 문제를 비롯한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대한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다.
당신은 어떤 세계관에서 살고 있나요?
콘돔을 잘 착용하는 남성이 됐다면 이제 출발선에 선 셈이니 조금씩 관심을 넓혀보자. 위에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저출생’이라는 표현은 어떤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이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껏 우리 사회는 재생산을 오롯이 여성의 일, 여성의 문제로 취급했다. 미래 세대의 인구 부족을 함께 잉태하거나 육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 여성의 출산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라며 '저출산'이라 이름 지어 문제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저출생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낙태’나 ‘유모차’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1953년부터 낙태를 불법으로 여기고 오로지 여성만 1년 이하의 징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했다. 분명 아이는 남성도 함께 만들었을 텐데 남성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법과 문화, 역사를 바꾸어내고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하여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판결을 이끌어냈고, 2021년에는 법정 명령에 따라 비범죄화됐다. 이러한 법률 변화와 더불어 여성의 죄책감과 낙인을 강화시키는‘낙태’라는 용어 대신, ‘임신중지’라는 용어로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를 바꾸어내고 있다. 최근 남성 커뮤니티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유모차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오롯이 육아의 부담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그것이 더 이상 어머니의 전용차가 아닌, 유아를 사랑하는 모두가 함께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유아차가 되게 하자는 의미다.
단지 하나의 표현이 아닌 세계관의 문제다. 용어 하나 바꾼다고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그것조차 바뀌지 않으면 다른 변화는 더욱 더딜 게 분명하니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이 과정에서 남성을 호출하고 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에 관심이 있다면, 거창한 인류 번영과 생존 문제까지도 아니고 자신을 닮은 떡두꺼비 같은 자녀를 기대하고 애정한다면 이제는 호출에 응해야 한다.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렵지 않다. 모성이나 애국으로만 이야기되어 왔던 재생산을 당신의 일로 여기고 여성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에 함께하자.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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