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퇴론' 충돌 인요한·김기현 첫 대면... '쓴소리' 공격에 '의견 달라' 방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17일 만났다. 당 지도부와 친윤석열계 '용퇴론'을 놓고 충돌해온 당사자가 얼굴을 맞댔다. 일단 "신뢰를 확인했다"며 갈등을 봉합했지만, 미묘한 입장 차를 드러내며 불씨를 남겼다.
김 대표와 인 위원장이 대면한 건 지난달 26일 혁신위 가동 이후 처음이다. 인 위원장이 '당 지도부·중진·친윤석열계 의원'의 불출마 내지 험지 출마를 강력 요구하자 김 대표는 "당대표 처신은 알아서 할 것"이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했다'던 당초 약속과 배치되는 발언에 논란이 가중됐다.
이날 자리는 김 대표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42분간 진행됐다. 용퇴론을 비롯해 의원들의 거취와 연관된 민감한 내용은 빠졌지만 양측은 뼈 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견제구를 날렸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혁신위 취지와 활동 상황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자리"라며 "김 대표는 '앞으로도 가감 없는 의견과 아이디어를 계속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특히 김 대표는 '당내 절차와 논의기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고 한다. 자문기구인 혁신위의 역할이 과도하게 부각되는 점을 지적한 셈이다.
이에 인 위원장은 "당과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 고통스러운 쓴소리라도 계속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혁신위 안건을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며 김 대표와 당 주류를 재차 압박한 것이다. 인 위원장은 면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우리(혁신위)를 뒷받침하는 건 국민이다. 국민들이 변화를 원한다"며 "변화를 위해 지금 좀 힘든 길을 걷고 있는데 꿋꿋하게 변함없이 걸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위는 당 원로들의 입을 빌려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김무성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 주변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향유한 사람들이 몸을 던져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이분(인 위원장)이 얘기한 것에 반발, 버스에 사람 동원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선거를 위해 현명한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혁신위가 '희생'을 강조하며 친윤 핵심을 겨냥하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도실용에 가까운 분들을 모신 것은 중도 표 흡수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혁신위의 방향성에 확신을 심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혁신위는 이어 발표한 네 번째 혁신안을 통해 '모든 지역구에 대한 전략 공천 배제'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도 예외 없이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기득권 세력의 '공천 전횡'을 막겠다는 의지를 못 박은 것이다. 김경진 혁신위원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핵심은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후보 선정 원칙을 정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세부적 내용은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그는 "(혁신위가 제시한) 큰 틀의 흐름을 최고위가 지지한다는 원칙은 서로 간에 이견이 없다"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와 친윤 핵심 의원들은 더 난감한 처지로 몰렸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수행실장을 지낸 이용 의원은 페이스북에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위해 뛰었던 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에 맞게 헌신하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서도 "(혁신위가) 점령군이 되어서 정권교체와 당을 위해 헌신해 왔던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친윤계 핵심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혁신위가 권한 밖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다만 인 위원장이 이들에 대한 용퇴 시한을 '12월 초'로 설정한 만큼 속도조절에 대한 교감 가능성은 남아 있다. 한 혁신위원은 "혁신위는 당대표가 임명한 기구인 만큼 혁신위가 불발되면 당 미래가 없다고 봐야 한다"며 "(당 지도부와) 당내 갈등으로 비칠 수 있는 점을 잠식하려는 시도가 잘 풀린 것 같다"고 전했다.
김민순 기자 soon@hankookilbo.com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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