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암살자’ 췌장암, 새 면역치료제 개발 길 열렸다...면역세포 암 공격 극대화

유병훈 기자 2023. 11. 1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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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사이언스 면역학’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 발표
조기 진단, 치료 어려운 췌장암
골수유래세포의 두 가지 세포 경로 활성화로 면역반응 높여
생쥐 실험에서 생존율 50%, 인간 대상 임상시험도 곧 시작
난치성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의 모식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1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면역학'에 골수유래세포의 활성을 높여 면역세포의 항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연구로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서울대

췌장암은 여러 종류의 암 중에서도 진단이 곧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어 ‘가장 독한 암’으로 꼽힌다. 조기 진단이 어려워 주로 전이가 이뤄진 후에나 발견되고, 치료법도 마땅치 않아 전 세계적으로도 사망률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파로티, 영화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도 췌장암으로 모두 세상을 떠났다. 특히 최근 항암제 시장에서 주목 받는 면역항암제로도 완치가 어렵다.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난치성 암인 췌장암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비록 동물실험이지만 생존율이 50%까지 나와서 의학계는 췌장암 정복을 위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연구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17일(현지 시각) “골수유래세포의 두 가지 경로를 동시에 활성화해 면역 반응을 높였을 때 췌장암 조직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의 뒤편에 위치한 췌장은 소화효소를 분비하고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중요 장기 중 하나다. 몸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문제가 생겨도 진단이 어려워 췌장암은 대표적인 난치성 암으로 꼽힌다. 초기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종양의 크기가 일정 수준 이상 커졌을 때만 복통, 황달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 항암 치료를 위해서는 조기 발견이 중요한 만큼 췌장암은 치료도 어렵다.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은 약 10% 수준에 머무른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췌장암 사망률은 여성에서는 폐암, 대장암 다음으로 3번째로 높고, 남성에서는 폐암, 간암, 대장암, 위암에 이어 5번째로 높다.

과학자들은 면역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점도 췌장암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인체의 면역 세포의 활성을 높여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면역치료제’ 기술이 발전하면서 키메라항원수용체T세포(CAR-T) 치료제를 비롯한 차세대 항암제가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면역치료제는 췌장암 같은 고형암에는 아직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형암은 암세포 주위에 혈관과 면역세포, 림프구, 신호전달분자 등이 둘러싸여 있는 환경인 종양미세환경(TME)이 척박해 면역세포가 암조직으로 침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췌장암은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심한 암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골수유래세포의 작용을 조절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았다. 골수유래세포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임상시험 전문 기업 메디라마의 문한림 대표는 “골수유래세포를 통해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하나의 세포 경로를 바꿀 경우 다른 경로가 활성화되거나 기존 면역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골수유래세포의 활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췌장암에 걸린 생쥐에 항암 효과가 있는 신호전달 물질인 ‘종양괴사인자(TNF)’를 활성화하는 항체와 암 조직 면역반응인 크론유사림프구반응(CLR) 수용체를 막는 약물을 동시에 주입했다. 두 가지 약물을 투여해 항암 치료 효과와 골수유래세포의 활성을 높이는 원리다. 두 약물은 골수유래세포가 면역세포의 활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지만 각각 투여했을 때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투여하면 면역세포가 암 조직에 침투하는 비율이 늘면서 종양 크기가 작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런 투약 방법이 암세포가 증식하고 진화하는 환경인 종양미세환경을 바꿔 면역세포가 암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도록 도운 것으로 분석했다. 골수유래세포가 만드는 ‘종양관련 대식세포(TAM)’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TAM은 종양에서 작용하는 대식세포인데 종양이 유발하는 염증에 반응해 신생혈관을 촉진하는 VEGF(혈관내피성장인자), 종양의 성장을 돕는 EGF(표피성장인자) 등을 분비한다. 일반적으로는 면역세포가 종양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데, 골수유래세포의 신호 경로가 바뀌면서 TAM이 종양을 공격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실험 결과를 보면 췌장암에 걸린 생쥐의 생존율은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 종류의 약물만 주입했을 때는 시작 후 두달 이내에 모든 생쥐가 죽었다. 하지만 두 종류의 약물을 동시에 처방하자 생존율은 50%로 크게 늘었다.

연구진은 “기존의 골수유래세포 표적 면역치료제와 달리 T세포의 활성을 높여 뛰어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췌장암에 대한 새로운 면역치료제 패러다임을 제시한 성과”라고 분석했다. 문 대표도 “이번 연구는 매우 복잡하지만 중요한 과학적 성과를 보여줬다”며 “단순히 기초과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현재 이를 활용한 면역항암제를 개발해 임상시험에 나섰다. 전이가 시작돼 기존 방법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췌장암 환자 45명을 모집해 실제 사람에서 항암 효과를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연구진은 “추후 항암제 발전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면역학’에 18일 소개됐다.

참고자료

Science Immunology, DOI: https://doi.org/10.1126/sciimmunol.adj5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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