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야 포퓰리즘 의기투합, 무방비로 폭주하는 11조원 고속철
민주당 원내대표가 대구에서 국민의힘 소속 대구시장에게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안’을 오는 1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대구시장은 “여야가 합의하고 국회가 결정하면 기획재정부는 따라오게 돼있다”고 했다.
대구(달구벌)와 광주(빛고을)를 잇는다고 해서 ‘달빛고속철도’라고 하는 이 고속철은 올 초 대구와 광주가 2038년 아시안게임을 공동 유치하겠다면서 추진해온 사업이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고, 이 법안에 국민의힘 109명, 민주당 148명, 정의당 1명, 무소속 3명 등 총 261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헌정사상 최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이 선심성 SOC 사업 공약을 남발하는데 기획재정부가 예비 타당성 조사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어왔다. 하지만 여야가 합작해 특별법을 통과시키면 기재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도 받지 않고 대형 국책 사업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대구~광주 간 철도 건설은 20년 넘게 검토했지만 경제성이 낮아 그동안 추진이 되지 않았다. 2021년 발표된 국토부의 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대구광주선이 신규 사업으로 추가됐지만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0.483에 불과했다. 정부는 달빛고속철도에 부정적 입장이다. 2019년 추산했을 때 198.8㎞의 단선·일반철도 사업비가 4조5158억원이었다. 이번에 발의된 특별법안에 따라 205㎞ 구간에 복선·고속철도로 건설하면 최소 11조2999억원이 든다.
15년 뒤 아시안게임을 공동 유치하는 데 11조원 고속철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대구~광주 간 88올림픽고속도로가 동서 화합의 명분으로 1984년 개통됐다. 2015년에 2조원 넘게 들여 이 고속도로를 확장하고 명칭도 광주대구고속도로로 바꿨다. 하지만 하루 교통량(2022년 기준 2만2322대)이 전국 고속도로 평균(5만2116대)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한산하다. 굳이 두 도시 간 철도가 필요하면 사업비가 절반 이하로 드는 일반철도로 건설해 고속 운행하면 86분 걸리는데, 고작 2분 단축해 84분 걸리는 고속철도를 11조원 넘게 들여 건설하겠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제 돈으로 어떤 일을 한다면 절대로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국회는 국가 미래에 꼭 필요한 법안은 뭉개고 검토조차 하지 않더니 이 포퓰리즘 법안은 발의 석 달도 안 돼 상임위에서 법안 심사에 착수했다. 여야 의원 261명이 무더기로 발의했으니 법안 심사는 하나 마나다. 영호남 표심을 얻겠다고 여야가 국민 혈세 11조원이 드는 포퓰리즘 사업에 의기투합하니 견제하거나 막을 장치가 하나도 없이 무방비로 폭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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