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차마 버리지 못한 책
“대학교 때 산 책들은 도저히 못 버리겠어요. 형편 빠듯하던 시절에, 아끼고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산 책이라서요.”
얼마 전 한 출판인에게 이 말을 듣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책장에서 꺼냈다가, 포기하고 다시 꽂아 넣게 되는 책들이 있죠. 내용과는 관계없습니다. 대개 책등을 일별하기만 해도 과거의 어떤 감정이 덮쳐오는 책들입니다. 대학 시절 산 책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지식에 대한 갈증이 가득했던 젊은 날의 자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겠지요.
일본 애서가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 나는 비교적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인간에 속한다. 고교 시절에 산 책이 지금도 여러 권 있고, 대학 시절에 산 책은 수백 권, 아니 얼추 천 권은 아직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의 책등을 보기만 해도 내가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시기의 추억이 잇따라 되살아난다. 그 무렵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고뇌했으며 또 무엇을 기뻐했던가, 책과 함께 그런 추억들이 되살아온다. 나의 분노와 고뇌가 책과 함께 있었음을 떠올린다.”
영국 장서가 릭 게코스키는 ‘게코스키의 독서 편력’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우리는 그 책을 읽고 있던 과거의 자아라는 낯익은 이방인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의 독서 경험의 윤곽을 더듬어 가다 보면 확실하게 자신을 읽고 또 읽게 된다.”
결국 책의 소유란 우리의 자아와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 ‘나’를 버리는 일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래서 미니멀리즘의 시대에도 어떤 이들은 먼지 쌓이고 빛바랜 낡은 책들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는 건지도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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