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좋은 것, 하지만 더 좋은 것은 와인”… 페르난도 페소아는 말했다
‘포트 와인’ 원산지 포르투
느리고 달콤한 소도시의 맛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라곤 하나 바닥보다 조금 높은 나무 판자에 가까웠고 극장은 비좁았다. 소박함은 애수를 극대화하기 좋은 조건. 연주자가 포르투갈식 기타 기타라(Guitarra)를 튕기자, 늙은 여가수가 항구의 바람소리 같은 것을 뱉어냈다. 파두(Fado). ‘숙명’의 뜻을 지닌 포르투갈 가요. 낯선 언어, 그래서 ‘파도’로 오역해도 관계없을 음정이 여름 저녁 공기에 물결칠 때, 해석할 수 없는 그 가사는 필시 배를 타고 영영 떠나간 누군가를 헤아리는 중일 것이었다.
공연 시작 전 관객들은 적포도주 한 잔을 받아들고 자리에 앉았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남는 색, 무척 달큰한 나무향이 났다. 처음엔 이것이 음악에 취하기 위한 준비 재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래의 파고에서 겨우 빠져나와 술잔에 입술을 대고서야 나는 이것이 일종의 중화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슬픔의 식후에 입안을 다독이는 물방울. 포트 와인(Port Wine). 항구의 와인. 그리고 도시의 이름.
◇멈춰있던 도시, 와인으로 달라지다
포르투(Porto) 구시가지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자 도우루강(江)이었다. 포르투의 한강, 그 위로 몇 척의 하벨로(ravelos)가 떠 있었다. 과거 강 상류에서부터 술통을 실어나르던 화물선이다. 육교를 건너 강남(江南)으로 발길을 옮겼다. 취하기 위해. 이곳의 지명에서 비롯한 술, 포트 와인 마개를 따는 것은 포르투를 시음하는 첫 동작이라 할 수 있다. 주황의 낮은 지붕마다 늙은 오크통이 목선처럼 잠들어 있는 곳.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400년 전부터 포트 와인 저장소가 몰려 있던 지역이다.
포르투는 아름답지만 잔잔한 동네다. 다소 정체돼 있으며 몇 곳의 명소로 반복 소개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포트 와인을 앞세운 1만6000여 평의 복합문화단지가 2020년 이곳에 들어서며 천지개벽이 진행되고 있다. 이름하여 ‘WOW’(World of Wine). 와인 숙성 창고가 몰려 있던 과거의 공간을 활용해 와이너리·박물관·레스토랑·호텔을 하나로 엮어낸 체험형 장소로, 도시의 특색을 적극 강조해 방문의 이유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대항해시대가 끝나고 멈춘 도시의 확장, 이를 타개하려 시(市) 당국까지 나서 협력한 야심작. 개장 후 코로나로 주춤했으나 올해 본격적인 가동을 재시작했다. 이곳에 온 이유다.
◇전쟁이 남긴 단맛… 자유의 율동
샌드맨·칼렘·크로프트·그라함…. 간판에서 보이듯 이곳 포트 와인 브랜드 대부분은 영국계 회사다. 잠깐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14세기 백년전쟁에서 패배한 영국이 프랑스에 보르도 지역을 빼앗기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와인 생산에 막심한 차질이 생기자 오랜 우방이던 이 지역을 새 와인 공급지로 택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망망대해를 건너며 와인은 거의 식초가 됐다. 그럼 포도주가 익기 전에 독주(毒酒)를 섞어보자. 브랜디를 탔더니 발효가 멈추면서 포도의 당분이 그대로 유지됐다. 도수 20도를 상회하는 달디단 신종 와인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포트 와인 선적 기록은 1678년부터 문헌에 등장한다. 이즈음 문을 연 회사 테일러(Taylor’s Port) 저장고가 이곳에 있다. 5t짜리 초대형 오크통이 놓인 어두침침한 시간의 방을 돌며 주조 과정을 일별할 수 있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제공된다. 포트 와인은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데, 첫 단계는 수확한 포도를 화강암 압착장에 옮긴 뒤 맨발로 밟는 것이다. 걸쭉해진 포도를 다시 2차로 밟는다. 이 단계가 바로 리베르다드(Liberdade). ‘자유’를 뜻한다. 대오를 이뤄 질서정연하게 밟던 첫 단계와는 달리 마구 맘껏 밟는다. 음악을 틀고 춤추고 박수를 치면서. 이 과정에서 분명 환희의 체취가 포도즙에 스몄을 것이다. 정원으로 나오니 이렇게 발효된 와인을 한 잔 나눠준다. 공작새 한 마리가 포도를 밟듯 뜨락을 거닐고 있다.
◇강남에서 차오르는 미적 환희
아침마다 갈매기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 밖의 도우루강,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가 설계한 역작 ‘동 루이스 1세 다리’ 너머로 반짝이는 포르투 구시가지. 일반적으로 포르투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저 다리 건너에 있다. 서정이 필요할 때 찾는 곳. 버스킹 명소로 유명한 히베이라 광장, 재래 쇼핑의 성지 볼량 시장, 2만 장의 푸른 타일 아줄레주(Azulejos) 그림으로 내부를 꾸민 상벤투역,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포르투 대성당, ‘해리포터’ 집필에 영감을 준 렐루서점,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 점포까지.
그래서 와인을 콘셉트로 조성한 ‘더 이트만’(The Yeatman) 호텔은 이곳 ‘WOW’의 중심이자 일반의 입맛을 강남으로 돌리려는 고심의 결과로 보인다. 탁 트인 전망은 별개로 방마다 와인 브랜드의 이름을 부여하고, 철마다 와인 행사를 주관하며, 상체가 술독에 박힌 남자처럼 독특한 와인 조형물까지 곳곳에 설치해 놨다. 호텔을 중심으로 6개의 와인 관련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와인을 완성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과소평가되는 요소가 바로 마개일 것이다. 코르크 최다 생산국답게 ‘코르크 박물관’은 독특한 볼거리다. 일본 조몬시대 토기부터 16세기 유럽의 ‘술게임용’ 술병, 우라늄을 함유해 어둠 속에서 녹색 광선을 뿜어내는 이색 술잔까지 모은 그릇 박물관 ‘브리지 컬렉션’도 맵시가 빼어나다.
400년 된 고택을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해 지난여름 개관한 ‘앳킨슨미술관’처럼 이곳 문화단지는 뜻밖의 예술적 면모로 번뜩인다. 언덕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 부서진 폐건물 모서리에 고물을 얼기설기 이어붙여 거대한 토끼를 형상화한 재기 같은 것. 강변에 누군가 종이로 대충 ‘Invisible Woman’(보이지 않는 여자)라고 적어놓고는 그 앞에 동전 담는 모자를 하나 던져놨다. 유쾌한 행위 예술, 혹은 모금(募金)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한 모금씩 와인을 홀짝이고 있다.
◇그리고 페소아는 이렇게 말했다
찬양은 여기까지. 이미 포르투를 낙원으로 묘사하는 여행자들이 넘쳐나므로. 가수들의 버스킹 공연을 중계한 국내 TV 예능을 통해 그런 낭만적 면모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이곳에도 실패와 비극은 숱하게 발생하고 있다. 어떤 도시에 경찰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나 역시 이 도시에 짐을 푼 지 사흘 만에 성질 고약한 구둣방 주인을 만났다. 호텔 방에서는 손도 대지 않은 와인잔이 깨진 채 침대 발치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평생 불운과 동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누군가 일러주려는듯이.
페르난도 페소아(1888~1935),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꼽히면서도 살아서는 단 한 번의 눈길도 받지 못했던 남자. 불안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사내. 그가 1931년 시에서 “인생은 좋은 것이지만 와인은 더 좋은 것”이라 노래했을 때, 그러나 그것은 냉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와인잔을 돌리면 회오리치던 술이 잔에 닿아 천천히 흘러내리는데 이 흔적을 ‘와인의 눈물’이라 한다. 도수와 점성이 높을수록, 그래서 포트 와인에 가장 많은 눈물이 맺힌다. 눈물이 진할수록 그 맛은 더욱 깊다는 성질. 성급히 비유하면 진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과학적 현상에서 인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사랑처럼, 결코 식어서는 안 되는 것
현지 주민들은 저녁 식사만 3시간 넘게 한다. 정어리와 대구, 통문어, 에그타르트…. 이 미식의 천국에서, 나는 페소아가 시에도 남겼던 ‘포르투풍 내장요리’가 먹고 싶었다. “사랑을 주문했는데, 어째서 식은 포르투풍 내장 요리를 가져다준 거냐고? 차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데… 절대 차게 먹는 게 아닌데, 차게 나왔다고.” 그 서민의 음식을 트리파스(Tripas a moda do Porto)라 한다. 돼지 창자, 콩·감자 등을 넣고 카레처럼 푹 끓여 흰 쌀밥과 함께 먹는다. 여기엔 가난과 애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포문을 연 ‘항해왕’ 엔히크가 북아프리카 원정을 준비하던 당시, 포르투 주민들에게 식량을 요청했다. 주민들은 가진 모든 고기를 배에 실었다. 그리고 남은 내장으로 요리해 허기를 달랬다. 그러니 그것은 사랑과 다름없고, 결코 식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 상벤투역 근처 작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트리파스를 퍼먹었다. 결코 온기를 잃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석양으로 유명한 언덕, 빌라 노바 드 가이아 지구의 세하 두 필라르(Serra do Pilar) 수도원에 올랐다. 도우루강의 양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기둥의 산’. 몹시 무더운 날이었으나 해가 숙성되면 밤이 될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들떠 있었다. 포트 와인 색으로 변해가는 하늘. 마시면 달콤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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