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라, 청년농이 간다!”
[강성곤의 뭉근한 관찰]
한농대서 열린 스피치 대회
‘농업 강국’의 꿈을 보았다
“‘회사서 눈칫밥 먹고 그것밖에 못 버나? 소를 키워보게. 그보단 나을 걸세’. 해운 회사서 해외 영업을 하다가 타의로 식품 회사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하던 저는 우연히 한 축주(畜主)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됩니다. 고민 끝에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우 농가로 변신했습니다. 축산농 40%가 연 소득 1억원을 넘긴다는 기사도 한몫 했죠. 그런데 제가 소를 키운 후부터 한우값이 폭락하는 거 있죠?”
지난 8일 전주시 콩쥐팥쥐로 1515 한국농수산대학교(한농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이상기후, 농어촌 안티에이징, 무기반(無基盤) 농업인들의 영농⸱영어 활동을 주제로 제1회 스피치 대회에 임했다. 나는 심사위원으로 갔다.
42세 최창익씨는 축산학부 한우 전공 1학년이다. 그는 15년 직장 생활을 접고 다시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축산 농가가 가격결정권에 철저히 소외되는 시스템에 불만을 품고(?) 한우의 물류와 판로 쪽에 혁신을 꿈꾸고 있다. 결국 대상을 거머쥐었다.
한농대는 1997년 개교했다. 작물산림학부⸱축산학부⸱원예학부⸱농수산융합학부에 19개 전공이 빼곡히 특화되어 있다. 어류 양식 전공은 캐비어 알도 키우고, 말[馬]산업 전공은 미래 레저에 맞춰 승마용 말을 전문 연구하는 독특함도 갖췄다.
전원 기숙사 생활. 학비⸱기숙사비⸱식비, 전액 무료다. 대신 6년 이상 농어업에 종사해야 하는 조건. 과문한 탓에 이곳을 몰랐다. 진즉 알았다면, ‘자유로운 영혼’이라 자부하지만 내 눈엔 늘 ‘방황하는 자아’로 비친 아들놈을 억지로라도 한농대에 욱여넣었을 것이다.
최우수상 선민지(20)씨. 원예학부 채소 전공. 중학생 때 자유학년제 진로탐색 기간 중 아프리카 기아 난민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기로 마음먹는다. 식량구호품을 전달하는 영상을 반복해서 보다가 직접 가성비 높은 새로운 식품을 개발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한농대생이 되었다. 고향 구례를 덮친 홍수 때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가는 소들의 모습을 클로즈업시킨 파워포인트는 농업⸱기후⸱인간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체 사이클임을 강조하며 큰 반응을 얻었다. 그는 이론⸱실기⸱현장, 3박자를 갖춘 학교 수업에 100% 만족한다며 반드시 꿈을 이루겠노라 포부를 밝혔다. 문득 구례 화엄사 각황전 앞 오롯한 존재감을 뽐내는 석등을 떠올렸다. 선민지. 왠지 글로벌 식품 업계의 빛나는 이름이 될 것만 같다.
“딸아. 너는 농업의 길을 가라. 네가 성공 사례를 만들어라. 네가 농업으로 성공하면 주위 친구들도 농촌으로 올 것이고 자연스레 청년들이 늘어날 것이다.”
아빠 사진을 보이며 이야기를 풀어간 농수산융합학부 농수산가공 전공 1학년 조승하씨는 우수상이다. 친환경 녹차 외길만 걸어온 대한민국 신지식 농업인 조현곤(63)씨. 딸을 농촌지도사로 키우는 게 꿈이었다. 아빠와 딸은 지금 드넓은 보성 차밭에서 한국차의 세계화를 목표로 의기투합하고 있다. 부모는 원래 경남 진주생. 딸은 애오라지 차(茶)에 미친 아빠 때문에 전라도 보성이 고향이 된 셈. 조씨네는 타지에서 고생도 많았으나 이웃들의 도움으로 이젠 대농(大農)의 기반을 굳혔다. ‘농업은 확실한 블루오션’이란 제목으로 공모전⸱기자단⸱인턴십 등으로 활동한 경험을 풀어내며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바로 파워포인트(PPT)란 놈이다. 결선 진출자 10명의 학생은 모두 PPT를 사용했으니 가히 프레젠테이션의 대세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성과 재고의 시각도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 존 스웰러 교수는 어떤 정보가 말과 글로 동시에 제공되면 이를 처리하기가 되레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실 그런 경험이 적지 않으리라. 설명 들으랴 그림 보랴 우리 뇌가 너무 바빠지지 않느냐 말이다. 게다가 사진 이미지에 너무 집중하게 되면 청중과의 아이 콘택트에 소홀하게 돼 주목과 몰입에 지장을 주기 쉽다.
또 하나 안타까운 대목은 ‘자기 언어의 비대칭’이란 것으로 이야기 내용은 흥미로운데 음성이나 전달력 등이 부족한 경우와 보컬이나 표현력은 좋은데 스토리가 평이한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 내용과 자기표현 연출력이 균형을 이루어야 좋은 스피치다.
아쉬운 사실로 마무리한다. 내가 주목한 학생은 따로 있었건만 마무리 시간 조절에 실패해 하위권에 머물고 말았다. 강원도 홍천농고를 졸업한 채소 전공 최상원(20)씨.
“‘농사짓지 마라. 돈이 안 돼. 사서 고생하는 거다’. 할아버지는 늘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실제로 아버지는 중국집에서 일하셨어요.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고요. 하지만 저는 벼농사 말고도 고추⸱깨⸱옥수수, 이런 작물이 좋아요. 언짢은 게 정치가⸱사업가란 말은 있는데 농업가는 없더라고요. 농업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농업을 계획하고 경영하는 농업가가 되어서 할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농업은 6차 산업이다. 1차 생산, 2차 제조⸱가공, 3차 유통⸱관광⸱서비스의 총합이다. ‘농업 강국 코리아’의 꿈이 영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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