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독일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에 간다’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저는 최근 3, 4년 사이에 책 세 권을 출간하였습니다. 2021년부터 매년 순차 발간한 ‘소통, 공감 그리고 연대’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1′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2′가 그것입니다. 그전에 수년간 구상하였지만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출간을 포기하였으나 경험하고 공부한 것을 사회에 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출간을 권유하는 지인들의 뜻에 따라 결행하였습니다. 널리 읽힐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참고 자료로 잘 활용된다면 보람 있는 일이므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위 세 권 외에 한 권이 더 있습니다. 2021년 독일 베를린 LIT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출간된 ‘Ich gehe jetzt in die Bibliothek namens Deutschland(나는 지금 독일이라는 이름의 도서관에 간다)’입니다. 이 책이 발간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직후 2013년 5월 초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일의 정치, 통일 등을 공부할 요량으로 독일로 건너갔습니다. 독일은 한국이 배우고 참고해야 할 것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일로 떠나며 페이스북에 ‘독일 도서관으로 떠나면서’라는 제목으로 독일로 떠나는 이유와 함께 인사를 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망하여 황폐해진 독일이 전범 국가의 불명예를 씻고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을 이루고,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건전한 사회규범과 타협과 배려의 문화를 바탕으로 모범 국가로 변모한 독일을 공부하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자료를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저는 독일로 떠나갑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도서관을 찾는 심정으로…. 특히 우리에게는 통일 준비와 통일 후 과제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젊은 시절에의 추억 여행에 그치지 아니하는 미래 여행입니다”라고 썼습니다.
베를린에 머무는 동안 페이스북에 독일에 관한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귀국 후 한동안 쓴 신문 칼럼에 독일에 관한 내용이 많이 포함되었습니다. 저의 독일인 친구 크리스토프 홀렌더스 박사가 이를 알고 글들을 몇 개 번역시켜 읽어 본 뒤,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독일에 관심이 많은 전직 한국 총리가 독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독일인에게도 흥미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 글들을 번역해 보내주면 기자 출신인 자기 아내가 원고를 가다듬어 잘 정리할 것이고, 전 주한 독일 대사 한스울리히 자이트 대사가 출판사를 물색하는 등 출판에 관련한 모든 일은 자기들이 맡아 처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책 제목은 제 페이스북 제목을 따라 정했습니다. 특히 자이트 대사는 제가 보낸 번역 원고를 읽어 보고서 독일 외교관 필독서라고 평가하며 책 서두에 저와 한국을 소개하는, 이례적으로 긴 에세이를 신이 난 듯 작성하여 게재하였습니다. 이런 경위로 베를린에서 쓴 페이스북, 신문에 연재한 칼럼 가운데 독일이 언급된 것과 제가 2013년 독일 체재 중 대학 등에서 강연한 원고를 한데 묶어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독일어로 된 책이기에 한국인에게는 별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독일인에게는 유익하였던 것 같습니다. 독일인에게 선물로 이 책을 건네면 우선 깜짝 놀랍니다. 제3국의 전직 총리가 바라보는 독일에 관한 이야기이니 흥미 있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 새로 부임한 게오르크 슈미트 주한 독일 대사에게 책을 선물하였더니, 놀란 표정으로 책을 훑어보며 신기해하였습니다. 제가 당신들에게 익숙한 독일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메모지에 한자 사자성어 ‘魚不見水(어불견수)’라고 적어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중요한 것인데도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도리어 그것을 깨닫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즉,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이 보는 독일에 관한 이야기는 독일인이 보지 못하는 독일을 보게 해준다는 취지로 답을 건넨 것입니다. 독일 대사가 써놓은 달필의 한자 사자성어를 보고 감탄을 하였더니 이제는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이라고 쓰고, 자신이 좋아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 책이 우리나라 공공 외교에 작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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