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문항 없어진 게 맞나" "킬러를 킬러라 부르지 못하고" 수험생들 분통
‘킬러문항 배제’ 방침이 적용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예상보다 어려웠던 수능에 일부 수험생들은 “킬러가 없어진 게 맞냐”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수능 시험이 끝난 16일 오후부터 입시커뮤니티 등에선 이번 시험의 난도에 대한 후기가 다수 올라왔다. 대부분 “9월 모의평가부터 적용된 킬러문항 배제 경향이 여전히 혼란스러웠다”는 내용이다. 입시 커뮤니티 오르비에는 “킬러문제가 없어진 것 맞냐” “킬러문항 배제의 의미=겉으로 킬러처럼 생기지 않은 문제를 내겠다” 등 비판적인 글이 줄이었다.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킬러 없어졌다는 건 말장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킬러를 킬러라 부르지 못하고” 등의 반응이 나왔다. 평가원 수능 이의제기 홈페이지에는 “교육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어 수험생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불만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EBSi 기준 정답률이 1%대로 집계된 수학 22번은 킬러문항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혁신교육센터장은 “수학 22번은 특정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유리한 문항”이라며 “30번도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에서 한 학원 강사가 해당 문제를 푸는 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정의한 킬러문항의 개념이 모호하고 작위적이어서 벌어진 논란”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6월 전까지 킬러문항은 통상 ‘수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란 뜻으로 쓰였다. 수학 영역으로 치면 주로 단답형 주관식 마지막 문제인 22번, 선택과목 마지막 문제인 30번이 해당된다. 지난 6월 교육부가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혔을 때, 입시업체들이 “수능이 쉽게 출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부와 수능 출제진의 해석은 이런 시각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정문성 수능출제위원장(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은 16일 오전 브리핑에서 “킬러문항이 반드시 ‘고난도 문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도 지난 6월 킬러문항 사례를 발표하며 “공교육 과정에서 다룰 수 없는 내용”이라고 정의했다. ‘국어와 영어는 별도 배경지식이나 전문용어가 들어간 문제, 수학은 선행 학습이 필요한 문제’라고 과목별 기준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입시업계 관계자는 “교육부가 생각하는 킬러문항의 조건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현직 고교 수학 교사도 “학생들 머릿속에서 킬러문항은 여전히 각 영역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의 입장은 변별력만 높이느라 왜곡된 과거의 킬러문항을 없앤다는 것이었지만, 학생들은 난이도를 낮추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킬러문항을 없애면서도 변별력을 유지하겠다는 교육부와 출제진의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17일 오후 4시 기준 수험생 가채점 테이터를 바탕으로 EBS, 진학사, 메가스터디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국어영역 1등급 컷은 원점수 기준 화법과작문 86~88점, 언어와매체 83~85점 사이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수능에서 국어 화법과작문의 1등급 컷이 96점, 언어와매체의 1등급 컷이 92점인 것과 비교하면 10점 정도 차이가 난다. 지난해 수능보다 3문제 정도 더 틀려도 1등급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수능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의미다.
수능 수학 영역의 난도도 어려웠던 지난해 수능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수능 수학 영역의 원점수 기준 1등급 컷은 확률과통계의 경우 91~92점 사이에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수능 확률과통계 1등급 컷은 88점이었다. 이번 수능 미적분 1등급 컷은 원점수 기준 82~84점, 기하는 87~90점에서 형성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수능 미적분의 1등급 컷은 84점, 기하는 88점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수능 변별력을 유지하면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궁극적인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치동의 한 컨설턴트는 “킬러문항이 존재했다는 건 상대적으로 다른 문제가 쉬웠다는 방증”이라며 “기존 시험에서 중위권 학생들이 포기하는 킬러문항이 한두 개였다면 이번 수능에선 킬러가 아닌데도 풀지 못한 문제의 수가 훨씬 많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수능은 학원에서는 어떻게든 대비할 가능성이 있는 또 다른 신유형의 문제여서 결국 의대 진학을 노리는 재수생들이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형학원 관계자는 “학원 입장에선 수능이 어렵고 변별력이 높을수록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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