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K-명당’에서 힐링하는 만추 여행[수토기행]
● 장락지맥에 서린 용봉(龍鳳)의 기운
역사가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따라붙은 사연도 다양하다. 불교의 고승 의상대사, 마의태자 등 신라시대 인물들이 심었다는 전설들이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이 나무의 진가를 알아보고 ‘당상관’이라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세조 때 벼슬을 하사받은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보다 이른 시기에 관직에 진출한 나무다.
근대에 들어서는 대일항쟁기인 1907년, 일본군이 정미의병(丁未義兵)의 소굴인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은행나무만은 화마를 피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부터 화재로 소실된 사천왕전(四天王殿)을 대신하는 천왕목(天王木)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또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때마다 이 나무가 소리로 이를 알렸다는 신령스러운 스토리도 있다. 조선의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고, 8·15 광복과 6·25전쟁 때도 나무가 구슬픈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곳이 풍수적으로 명당 터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용문사 경내에서도 가장 기운이 굳센 곳 중 하나다. 이런 기운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로 소문나기 마련이다. 이 은행나무는 벼슬을 받은 ‘고귀한 존재’인 만큼 출세나 명예 등의 소원 기도처로 유명했다. 또한 풍성한 은행 열매가 자식 생산을 의미한다고 해서 출산과 풍요의 신목(神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오기도 했다. 지금도 은행나무를 보호하는 철책 주변으로는 소원을 빼곡히 담은 종이들이 무수히 걸려 있다.
● 소설 ‘풍수전쟁’의 배경인 보리산 청리움
먼저 보리산에는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이 설립한 복합 라이프 플랫폼인 ‘청리움’(가평군 설악면)이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가평의 청정 자연에 접목시켜 자연 속에서 스마트 라이프를 구현하려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은 대단한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방문한 혜거 스님(동국대 동국역경원 원장)은 황룡농주(黃龍弄珠·황룡이 여의주를 갖고 노닌다는 뜻)의 혈터라고 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보리산과 장락산의 해발 높이가 똑같이 627m라는 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두 산은 쌍둥이 산으로 비교되곤 한다. 장락산이 대체로 바위로 이뤄진 골산(骨山)이어서 영적 혹은 종교적 감흥을 일으키는 산이라면, 보리산은 흙으로 이뤄진 육산(肉山)으로 풍요와 휴식에 좋은 산이라는 해석이다. 장락산에 종교 시설물이 들어서고, 보리산에 기업체 연수 시설이 들어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 한강변의 명당 박물관
이어 본격적으로 한강이 시작되는 강변로에 위치한 서양악기 박물관 ‘프라움악기박물관’(관장 김정실)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4679㎡(약 1415평) 부지에 중세 유럽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은 출입구부터 웅장한 분위기를 준다. 1층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음악과 악기들이 소개돼 있다.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엔 18∼19세기에 제작된 그랜드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 등 명품 악기들이 즐비하다.
김정실 관장은 런던, 파리, 빈 등 유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경매장을 돌며 진귀한 서양 고전 악기를 수집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을 두루 탐방한 끝에 이곳에 악기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한편 김상철 회장의 부인인 김 관장은 지난해 경기 남양주시의 저소득 홀몸노인을 위해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층을 대상으로 27억 원 넘게 기부해 왔다. 풍요 명당의 진정한 주인은 풍요를 베풀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것 같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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