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K-명당’에서 힐링하는 만추 여행[수토기행]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2023. 11. 18.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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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지기(地氣)가 돋보이는 가평 보리산 청리움(아래)과 맞은편으로 천기(天氣)가 굳센 장락산이 음양으로 짝을 이루고 있다.
경기 양평과 가평은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서울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명승지들이 적지 않은 곳이다. 양평 쪽 남한강과 가평 쪽 북한강이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명소들을 형성한 이곳에서는 풍성한 스토리가 담긴 자연기념물과 21세기 ‘K-명당’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 공존하고 있다. 수도권 명당지로 늦가을 여행을 즐겨보자.》

● 장락지맥에 서린 용봉(龍鳳)의 기운

수령 1100년을 넘어가는 은행나무. 용문사를 대표하는 곳이자 양평의 상징물이다.
단풍마저 저물어 가는 무렵의 여행은 겉치장 없이 속살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맛이 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열매를 땅에 수북이 뿌려놓은 채 몸매를 드러낸 용문사 은행나무(양평군 용문면)가 바로 그런 곳이다. 키 42m, 뿌리 부분 둘레가 15.2m에 이르는 이 은행나무의 수령은 11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제30호)이자 양평군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노거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약 2∼3가마(350kg)의 열매를 맺는 암나무다.

역사가 오래된 나무이다 보니 따라붙은 사연도 다양하다. 불교의 고승 의상대사, 마의태자 등 신라시대 인물들이 심었다는 전설들이 전한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세종대왕이 이 나무의 진가를 알아보고 ‘당상관’이라는 벼슬을 내려주었다. 세조 때 벼슬을 하사받은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보다 이른 시기에 관직에 진출한 나무다.

근대에 들어서는 대일항쟁기인 1907년, 일본군이 정미의병(丁未義兵)의 소굴인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은행나무만은 화마를 피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때부터 화재로 소실된 사천왕전(四天王殿)을 대신하는 천왕목(天王木)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또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때마다 이 나무가 소리로 이를 알렸다는 신령스러운 스토리도 있다. 조선의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 큰 나뭇가지 하나가 부러졌고, 8·15 광복과 6·25전쟁 때도 나무가 구슬픈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곳이 풍수적으로 명당 터임을 알려주는 증거다.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은 용문사 경내에서도 가장 기운이 굳센 곳 중 하나다. 이런 기운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로 소문나기 마련이다. 이 은행나무는 벼슬을 받은 ‘고귀한 존재’인 만큼 출세나 명예 등의 소원 기도처로 유명했다. 또한 풍성한 은행 열매가 자식 생산을 의미한다고 해서 출산과 풍요의 신목(神木)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오기도 했다. 지금도 은행나무를 보호하는 철책 주변으로는 소원을 빼곡히 담은 종이들이 무수히 걸려 있다.

용문사를 품고 있는 용문산(1157m) 역시 예사로운 산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용(龍)’이 출입하는 ‘문(門)’이라는 뜻으로 미르(용)산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봉황산이라고도 불렸다. 최고의 지존(至尊)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의 뜻을 다 품은 산인 셈이다. 이 산의 지맥은 북쪽으로 봉황의 꼬리인 봉미산을 거쳐 가평 쪽의 보리산과 장락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즐기는 등산객들도 적지 않은데 일명 ‘장락지맥’으로 알려진 코스다.

● 소설 ‘풍수전쟁’의 배경인 보리산 청리움

먼저 보리산에는 한컴그룹(한글과 컴퓨터)이 설립한 복합 라이프 플랫폼인 ‘청리움’(가평군 설악면)이 있다.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공간’임을 의미하는 청리움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가평의 청정 자연에 접목시켜 자연 속에서 스마트 라이프를 구현하려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청리움 본관 위의 오하산방. 김진명의 소설 ‘풍수전쟁’에 묘사된 명당 집이다.
재충전 힐링 프로그램으로 관공서와 기업체의 연수 장소로 인기를 끄는 청리움은 사실 소설 ‘풍수전쟁’의 배경이기도 하다. 소설가 김진명이 이곳을 방문한 뒤 영감을 받아 글감으로 썼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보리산과 장락산의 기이한 관계, 보리산 곳곳에 맺힌 구룡혈(九龍穴) 터, 오하산방 등이 모두 이곳에 실재하고 있다. 오하산방의 주인인 ‘오하산인’으로 묘사된 인물 역시 김상철 회장을 가리킨다.

실제로 이곳은 대단한 명당 터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방문한 혜거 스님(동국대 동국역경원 원장)은 황룡농주(黃龍弄珠·황룡이 여의주를 갖고 노닌다는 뜻)의 혈터라고 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청리움 기와지붕 위의 와송.
청리움은 유럽의 어느 소도시를 방문한 것 같은 이국적 느낌을 주면서도 철저히 한국적인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400년 수령의 모과나무, 맛이 진한 토종 된장과 간장이 담긴 장독대, 기와집 지붕에 핀 와송(瓦松), 목·화·토·금·수 오행(五行)별로 분류해 놓은 식물과 나무, 심지어 긴 꼬리가 특징인 토종닭까지 진귀한 한국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청리움에서만큼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우리 것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며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장락산의 통일교 성전인 천정궁. 미국 국회의사당처럼 생긴 모습이 인상적이다.
청리움에서는 저 멀리 건너편으로 장락산이 보인다. 보리산 청리움의 시각에서는 장락산이 복을 불러오는 안산 역할을 하고 있다. 장락산 품에 안긴 백색 건물이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오는데, 돔형 지붕이 마치 미국 국회의사당을 연상케 한다. 바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성전인 ‘천정궁’이다. 통일교 창시자이자 풍수에도 밝았던 고(故) 문선명 총재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호수와 산야가 조화를 이룬 곳으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곳”이라고 자부했던 곳이다. 아쉽게도 장락산 천정궁 일대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서 멀리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보리산과 장락산의 해발 높이가 똑같이 627m라는 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두 산은 쌍둥이 산으로 비교되곤 한다. 장락산이 대체로 바위로 이뤄진 골산(骨山)이어서 영적 혹은 종교적 감흥을 일으키는 산이라면, 보리산은 흙으로 이뤄진 육산(肉山)으로 풍요와 휴식에 좋은 산이라는 해석이다. 장락산에 종교 시설물이 들어서고, 보리산에 기업체 연수 시설이 들어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 한강변의 명당 박물관

수종사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양수리) 전경.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지점이다.
장락산 아래 청평호의 쾌적한 수변 풍경을 즐긴 후 북한강변을 따라 서울 쪽으로 가다 보면 남한강과 합류하는 두물머리(양평군 양수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수령 400년)와 바로 옆 고인돌에서 잠시 쉬면 가평과 양평 쪽 산과 강의 기운을 종합적으로 취기(取氣)하는 느낌이 든다.

이어 본격적으로 한강이 시작되는 강변로에 위치한 서양악기 박물관 ‘프라움악기박물관’(관장 김정실)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4679㎡(약 1415평) 부지에 중세 유럽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박물관은 출입구부터 웅장한 분위기를 준다. 1층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음악과 악기들이 소개돼 있다.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엔 18∼19세기에 제작된 그랜드 피아노, 하프, 바이올린 등 명품 악기들이 즐비하다.

김정실 관장은 런던, 파리, 빈 등 유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경매장을 돌며 진귀한 서양 고전 악기를 수집하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을 두루 탐방한 끝에 이곳에 악기박물관을 세웠다고 한다.

프라움악기박물관 정원에 있는 청석 거북상. 명당 터로 소개된 이곳은 빼어난 한강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박물관 정원에는 매우 재미있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지기(地氣)는 평균 0.5G(가우스)이나, 이곳은 17G로 생기 터이며 지기가 매우 왕성한 터’임을 증명하는 어느 풍수단체의 팻말이 눈길을 끈다. 그와 함께 강 건너편으로 영험한 검단산을 바라보는 청석 거북도 함께 조성돼 있는데, 거북을 어루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거북 머리가 반질반질할 정도다.

한편 김상철 회장의 부인인 김 관장은 지난해 경기 남양주시의 저소득 홀몸노인을 위해 3000만 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1996년 이후 지금까지 사회적 약자층을 대상으로 27억 원 넘게 기부해 왔다. 풍요 명당의 진정한 주인은 풍요를 베풀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것 같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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