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발전 경험 전수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공략 집중

정진우 2023. 11. 1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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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지난달 10일 2030부산월드엑스포 범시민유치위원회가 부산시청 광장에서 개최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엑스포 유치에 대한 소망을 담아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D-10, 열흘 앞으로 다가온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경쟁은 사실상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양자 대결 양상이다. 오는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개최지 선정 투표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정부도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막판 표밭 다지기에 돌입했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재계와 시민단체 등이 합심해 부산 엑스포 유치에 전력을 다해온 만큼 투표 당일까지 한 표라도 더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각오다. 정부는 막강한 오일 머니의 힘을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에 밀려 초반 불리했던 판세를 점차 뒤집으며 9회말 2사 후의 끝내기 홈런과 같은 막판 역전을 꿈꾸고 있다.

최대 관건은 많은 표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표심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선진국들이 주로 모여 있는 북반구 지역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개발된 국가들이 지구 남쪽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유래된 말로 아프리카 55개국과 중남미 20개국, 동남아시아 11개국, 중앙아시아 6개국, 태평양 도서 지역 16개국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국가 중 상당수는 경제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국제정치적으로도 미국과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은 물론 러시아·중국 등 권위주의 진영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며 독자적 행보를 보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부는 특히 182개 BIE 회원국 중 가장 많은 49개 회원국이 있는 아프리카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28일 BIE 총회에서의 표결은 1국 1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미·러·중 등 주요 국가들의 표심 못지않게 ‘중간 지대’에 속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전략적·개별적 이해관계가 승패를 가를 것이란 판단에서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2030 엑스포 유치전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일회성 뭉칫돈보다 장기 경제 지원 카드

정부도 이 같은 구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대응책을 강구해 왔다. 아프리카 국가들 공략을 둘러싸고 최대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의 막판 대규모 물량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한국과 부산의 강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게 정부와 재계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부는 특히 이들 국가가 경제 개발·발전과 기술 현대화에 목말라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과 21세기 최첨단 정보통신(ICT) 기술을 적극 공유하는 카드를 십분 활용하고 나섰다. 둘 다 사우디는 갖고 있지 못한 분야인 만큼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에 더해 아프리카 연합과 카리브 공동체, 태평양 도서국 포럼 회원국 등을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기술·경험 공유와 원조 확대라는 현실적·실용적 카드로 최대한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엑스포는 세계 각국이 한 자리에 모여 연대하고 글로벌 이슈와 과제를 논의하는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에 집중하면 한국의 경쟁력이 명확히 보일 것”이라며 “사우디의 개별전 전략에 대해 평가하기에 앞서 우리가 가진 경쟁력과 장점을 설명하고 각 회원국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사우디의 핵심 공약인 차관이나 금전적 지원은 일회성인데 반해 한국과의 관계 구축은 장기적 차원의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교섭 전략도 충분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런 차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은 물론 이재용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은 지난 1년 내내 세계 각국을 돌며 일대일 접촉을 통해 설득 작업을 벌였다. 경쟁국인 사우디가 주로 자국 초청 행사에 주력한 데 비해 우리는 아프리카·중남미와 태평양 도서국까지 직접 찾아가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며 정성을 다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정부는 또한 아직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부산 엑스포가 전 세계 청년들에게 문화 예술과 국제 협력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될 것”이란 점도 중점적인 홍보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전 세계 젊은층 사이에서 ‘K-컬처’ 붐이 일고 있는 분위기를 적극 활용해 부산 엑스포를 통해 미래 세대의 교류가 크게 확대될 것이란 점을 집중 홍보하는 게 예상보다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또한 사우디와 차별화되는 한국만의 강점이란 분석이다.

로마 조기 사퇴 안 해야 2차 투표서 결판

BIE 표결은 1차 투표에서 3분의 2를 득표하는 후보지가 나오지 않으면 1,2위로 후보지를 압축한 가운데 결선투표가 치러진다. 결선투표는 과반수 득표 후보지가 나올 때까지 반복된다. 현재까지의 판세로는 부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결국 결선투표에까지 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의 지휘 아래 시시각각 판세를 점검해 온 정부는 1차 투표에서 이탈리아 로마를 지지할 것으로 보이는 유럽 국가들의 표를 2차 투표에서 최대한 흡수할 경우 충분히 막판 뒤집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BIE 총회 직전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하는 것도 막판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현지에서는 로마가 투표 당일 1차 투표 직전에 유치를 포기할 경우 판세가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부산과 리야드가 1차 투표에서 곧바로 양자 대결을 벌이게 되면서 자칫 우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 외교 소식통은 “이탈리아 측을 상대로 유치전에서 중도 포기하지 말고 투표장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자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며 “우리가 접촉한 회원국들 가운데에는 한국이 2차 투표에 진출하면 지원하겠다는 나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정진우 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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