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오일 머니 앞세워 한국이 확보한 표 빼앗기 작전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결정 D-10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에 따르면 최근 한국이 표 격차를 좁히며 쫓아오는 기세에 맞서 사우디는 재차 ‘한국 표 빼앗기’ 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한국이 정상 회담이나 물밑 접촉을 통해 표심을 확보한 국가 리스트를 추린 뒤, 해당 국가들을 재차 접촉해 큰 선물을 약속하는 식이다. 한 소식통은 “오셀로 게임에서 흑이 백으로, 백이 흑으로 판세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회원국들의 표심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지난 11일 개최지 선정의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아프리카 50개국을 초청한 가운데 리야드에서 사우디·아프리카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리야드 선언’을 공동 채택했다. 사우디가 이날 정상회의에서 내건 최대 화두는 ‘경제 협력 강화’였다. 사우디 국영 SPA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정부는 이 자리에서 향후 10년간 아프리카에 250억 달러(약 32조3000억원) 규모의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에 50억 달러 상당의 개발원조기금을 제공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이에 더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도 향후 10년간 10억 달러가 넘는 프로젝트와 아프리카 개발 이니셔티브를 출범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아프리가 연합 국가의 주요 20개국(G20) 정회원 가입에 지지를 표명하고 아프리카 국가의 대사관 수도 4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2018년 아프리카 담당 장관직을 신설한 뒤 아프리카 지역에 특별히 공을 들여온 사우디가 엑스포 개최지 투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표심 확보를 위해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당근책을 제시한 셈이다.
이처럼 BIE 회원국을 상대로 한 자금 공세와 별개로 사우디는 이미 최소 78억 달러(약 10조원)의 엑스포 투자를 약속했다. 엑스포가 열리는 2030년을 목표로 초대형 허브 공항인 ‘킹 살만 국제공항’을 신설해 엑스포 부지와 직통으로 연결하겠다는 계획도 공표했다. 사우디가 이 같은 공격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는 배경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내세운 ‘비전 2030’의 핵심 이벤트로 엑스로 유치를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관광을 비롯한 산업 다각화에 나서겠다는 국가 차원의 중장기 프로젝트다. 여성의 자동차 운전과 취업 장려 등 점진적 개혁 정책을 펴고 있는 사우디로선 엑스로 유치에 성공할 경우 국가 이미지 개선 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한다. 외교 소식통은 “사우디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선 엑스포급 행사 유치는 정권의 명운과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사우디의 또 다른 강점은 다국어 방송 등 미디어 매체를 통해 급속히 확대된 글로벌 영향력이다. 현재 사우디는 아랍권 국가들을 대상으로 무려 19개의 24시간 아랍어 방송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대형 방송사인 MBC(중동중앙텔레비전센터) 그룹이 중동·북아프리카(MENA)의 아랍 세계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이들 무료 방송 채널의 시청자는 1억6500만 명에서 2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우디는 이를 아랍권 국가에 리야드 엑스포를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우디의 ‘야심’은 리야드 엑스포 일정에서도 드러난다. 통상 엑스포는 봄인 5월에 시작해 가을인 10월에 끝나는 게 관례다. 하지만 리야드 엑스포는 2030년 10월 1일 시작해 이듬해 3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마침 2031년 3월 31일은 이슬람 정기 성지순례인 ‘하즈’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슬람 달력으로 12번째 달에 하는 ‘하즈’를 다녀온 사람에겐 존경의 의미로 이름 앞에 ‘엘 하즈’라는 호칭을 붙일 만큼 성지순례를 중시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무슬림이 성지순례의 메카 중 한 곳인 리야드를 방문할 때 리야드 엑스포를 먼저 관람한 뒤 엑스포가 끝나는 날에 맞춰 ‘하즈’를 시작하도록 일정을 짠 것이란 얘기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정진우 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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