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결혼·출산 장려하라"…마오 이전 가부장제로 퇴보
거꾸로 가는 중국 여성 정책
외국계 기업에서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는 미혼 여성 린샤오칭(38)은 “부모님조차 결혼은 인생의 선택이라며 강요하지 않는다”며 “몇 해 전 유행한 드라마 ‘겨우 서른(三十而已)’ 속 신세대 여성에 열광하는 요즘 가부장 문화는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2000년생인 사회 초년생 왕첸첸(23)은 “풍족한 생활 조건과 개방된 교육을 누려온 ‘링링허우(2000년대생)’는 결혼과 출산 모두 전통을 거부한다”며 “특히 치솟는 육아·교육비와 노후를 걱정하는 부모를 보면 출산은 사치다. 아이를 위해 노후를 희생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딩쉐샹 부총리 “여성은 가족 이끌어야”
최근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섰다. 지난달 30일 시 주석은 중국의 최대 여성조직인 전국부녀자연합회(부련) 신임 지도부를 집무실인 중난하이로 불러 “새로운 유형의 결혼·출산 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부련 지도부에게 “전통 가족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전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9일 “이는 시 주석의 보수적인 사회관과 일맥상통한다”며 “과거 시 주석은 ‘좋은 아내와 좋은 어머니’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가부장적 사회 규범을 장려했다”고 전했다. 앞서 2일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인구 위기와 경제 둔화에 대한 해법으로 중국공산당이 여성을 전통적 역할로 되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이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조하자 마오쩌둥 이래 중국공산당이 추진해 온 여성정책이 퇴보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중국의 1호 법률은 1950년 제정된 “혼인의 자유, 일부일처, 남녀 권리 평등”을 규정한 혼인법이었다. 1956년 대약진 운동이 시작되자 “여성은 능히 천하의 절반을 담당할 수 있다(婦女能頂半邊天)”는 표어가 등장했다. 여권신장을 상징하는 신조어 ‘반볜톈(半邊天·하늘의 반쪽)’이 널리 퍼졌다. 부녀자연합회 주석은 최고 지도자의 부인 대신 중국의 퍼스트레이디로 활약할 정도로 권위가 대단했다. 문화대혁명과 함께 시작된 지식 청년의 농촌 하방 역시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다. 남성과 생산량을 겨루는 여장부 ‘톄구냥(鐵姑娘·철의 여인)’ 모범 사례 발굴과 선전이 이어졌다.
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은 “남녀평등을 중국의 사회발전을 촉진하는 기본국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로 1998년 후진타오, 2003년 리창춘, 2008년 허궈창, 2013년 왕치산, 2018년 자오러지까지 5년마다 열리는 부련 개막식 축사에 “남녀평등은 기본국책”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달 23일 제13차 부련 개막식 축사를 맡은 실세 부총리 딩쉐샹(丁薛祥) 상무위원은 달랐다. 성 평등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언급하는 대신 “결혼과 사랑·출산·가족에 대한 정확한 관점을 수립해야 한다”며 시 주석의 발언을 되풀이했다. 딩 부총리는 “여성은 가족을 이끌어 사회의 좋은 공민, 일터의 좋은 직원, 가정의 좋은 성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남녀평등보다 가부장적 전통을 강조했다.
다자녀 정책 강제할 법적 기반도 갖춰
시 주석이 전통적인 결혼·출산 문화를 주문하자 지방부터 움직였다. 후난성 선전부의 SNS인 훙망(紅網)은 10월 31일 곧바로 “출산 존중, 적령기의 결혼과 출산, 건강하게 낳아 잘 키우는 육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라”며 “가정의 미덕을 고취하는 새로운 결혼·출산 문화를 지도하라”고 촉구했다. 장시(江西)성 기관지 강서일보는 13일 “저출산 현상은 사회 및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문제”라며 “출산 보장 메커니즘을 서둘러 개선하고 출산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임기 여성의 출산 의지를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다자녀 정책을 강제할 법적 기반도 갖췄다. 1982년부터 2018년 개정한 현행 헌법까지 “국가는 계획 출산{生育)을 널리 시행하여, 인구 증가를 경제 사회발전 계획과 서로 결합해야 한다”는 가족계획 헌법 규정을 갖고 있다. 30여년 동안 한 자녀 정책을 강제로 시행했던 선례에 비춰볼 때 여성의 신체와 권리를 희생하는 무리한 정책의 등장도 배제할 수 없다. 2022년 중국이 신생아 956만명 가운데 이미 둘째 비율은 38.9%, 셋째 이상이 15%를 차지했다.
중국이 가부장 사회로 되돌아가려는 배경에 인구 문제 해결과 함께 페미니즘 통제라는 포석이 깔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중국의 여성인권은 하락세다. 세계경제포럼이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향한 진전 수준을 측정한 글로벌 성별 격차 지수에서 중국은 올해 146개국 가운데 107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2년 135개 국가 중 69위에서 크게 하락했다. 당원 중 여성 비율도 개선이 더디다. 지난해 말 기준 공산당원 9804만 명 가운데 여성당원은 2930만명으로 29.9%에 머물렀다. 창당 102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은 지금까지 여성 정치국 상무위원을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지난해 20차 당 대회에서는 25년 만에 24명의 정치국원에도 여성을 배제했다.
하남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난 2021년 전직 권력서열 7위였던 장가오리 부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테니스 스타 펑솨이(彭帥·37) 사건, 2022년 농촌 인신매매로 여덟 자녀를 출산한 채 쇠사슬에 묶인 여성, 최근 낙마한 친강 외교부장의 혼외자 출산설 등에서 보듯 중국은 미투(me too)와 페미니즘에 취약한 사회”라며 “고위 간부의 여성 스캔들이 경제적 불만과 결합할 경우 체제 위협까지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페미니즘의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전통적인 여성상을 되살리려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중국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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