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긴축·중 불황·EU 보조금 삭감…전기차 판매량 ‘주춤’

2023. 11. 18.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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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피크아웃론 진실은
16일(현지시간) 미국 LA 오토쇼에 선보인 기아 ‘EV4’ 콘셉트 모델.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로 실내 공간을 극대화한 준중형 세단이다. [AP=연합뉴스]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 선두주자 테슬라는 올해 3분기 실적을 지난달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테슬라의 3분기 매출은 233억5000만 달러(약 30조425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했지만, 이는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었다. 3분기 순이익도 1억8500만 달러(약 2411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4%나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 16%였던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1분기 11.4%, 2분기 9.6%, 3분기 7.6%로 악화일로다. 실적 발표 직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가 추진 중인 사이버트럭(전기 픽업트럭) 양산과 멕시코 기가팩토리(전기차 생산 공장) 건설에 대해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문제는 타이밍”이라며 부정적 전망을 내비쳤다.

테슬라, 올 들어 평균 판매가 25% 인하

글로벌 판매량이 2020년 222만대, 2021년 477만대, 지난해 802만대(한국자동차연구원 집계)로 고성장세를 유지하는 듯했던 전기차 산업의 기류가 변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연간 15억대가 넘는 글로벌 판매량을 찍은 후 성장세가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처럼 전기차도 조금씩 ‘피크아웃’(경기 등이 정점을 찍고 하락 국면에 접어드는 상황)에 가까워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한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EV볼륨스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전망치를 기존 1430만대에서 1377만대로 최근 하향 조정했다. EV볼륨스는 “중국의 경기 침체, 미국의 생산 지연, 유럽의 보조금 삭감 등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 등의 통화 긴축 정책이 이어지는 것도 전기차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기업들은 차량을 비싸게 많이 팔아야 충분한 이윤이 생겨 투자를 강화할 수 있는데 고금리 환경은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도 전기차 판매량이 올해 1~10월 13만539대로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에 불과, 하이브리드차(+41.8%)나 수소차(+51.9%)가 잘 팔린 것과 대비되는 정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1~10월 전년 동기 대비 71.2% 증가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글로벌 기업들은 전기차 시장 전망을 기존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사업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미시간주에 40억 달러(약 5조2100억원)를 투입해 건설 중인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혼다와의 저가형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도 철회했다.

테슬라 모델 3
2026년까지 전기차 사업에 500억 달러(약 65조125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던 포드는 그중 120억 달러(약 15조6300억원)가량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폴크스바겐 역시 올해 3분기까지 유럽 내 전기차 주문량이 15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반토막이 났다. 폴크스바겐은 독일 전기차 공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아시아 기업들도 분주해졌다. 특히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자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은 중국은 그야말로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국의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을 적극 공략해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던 니오는 올해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61억 위안(약 1조96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위기에 처하자 이달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윌리엄 리 니오 CEO는 내부 서한에서 “향후 2년간은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비용을 줄이고 자원을 재배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니오는 전체 직원의 10%인 2700명가량을 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니오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이긴 하지만 웨이마자동차(WM모터)와 싱귤라토모터스, 레브데오 등은 중국에서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현재 50곳이 넘는 중국 전기차 생산 기업이 이 같은 구조조정 속에 2030년 무렵 10~12곳만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전기차 산업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와 미국의 기술에 밀린 일본은 도요타와 혼다 등이 리스크 커진 전기차를 뒤로 하고 하이브리드차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높던 콧대를 낮추고 가격 인하로 대응 중이다. 테슬라는 올해 들어 자사 전기차의 평균 판매가를 약 25% 낮췄다(‘모델 3’ 4만8000달러→4만4380달러, ‘모델 S’ 13만 달러→9만6380달러 등). 볼보 산하의 폴스타(한국에서 최대 15% 할인) 등도 가격 인하로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출혈 경쟁이 전기차의 피크아웃 우려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7월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가는 대당 평균 5만3633달러로 내연기관차(4만8451달러)보다 여전히 비싼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가격 인하만으로 급격한 수요 반등을 이끌어내긴 어렵고 외려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파산 위기라는 악순환만 낳는다는 지적이다. 존 장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소비자들은 4만 달러대 전기차에 익숙해지면 6만 달러대 전기차로 돌아가지 않는다”며 “전기차 가격 경쟁은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 모으는 게 아닌, 미래의 수천만 달러어치 매출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포드·LG엔솔 등 배터리 업계도 속도 조절

전기차 산업에 대한 우려 섞인 전망은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속도 조절로도 이어지고 있다. 포드와 LG에너지솔루션은 튀르키예에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을 계획했지만 11일(현지시간) 이를 철회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 속도를 고려했을 때 지금은 튀르키예에서 투자를 지속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데 포드 측과 상호 동의했다”고 전했다. 포드는 SK온과도 미국 켄터키주에서 두 번째 배터리 공장 가동을 계획했지만 이 또한 연기했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다만 관련 업계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 같은 사업 속도 조절이 피크아웃 때문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경기 전반의 침체나 고금리 환경 등에 따른 일시적 수요 둔화에 발맞춘 전략일 뿐 일각에서 제기 중인 피크아웃 우려는 너무 이르며 과도하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지금까지 전기차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가격·품질 논란 등을 동반, 분야별 경착륙이 일어나 전기차 보급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뿐”이라며 “피크아웃은 내연기관차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인데 전 세계가 여전히 탄소중립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성장이 2~3년 더뎌질 것으로 예상, 과잉 공급을 경계하면서 대응 중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은 시장 전망을 여전히 낙관, 전기차에 대한 투자를 줄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울산 전기차 공장을 통해 2026년부터 연간 20만대 생산 체제 확보한다는 기존 계획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기아도 경기도 화성에서 연간 15만대 생산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그대로 짓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총 31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완성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부사장)은 지난달 실적 발표 직후 최근 시장 상황과 관련한 우려에 대해 “전기차 수요가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위주에서 일반 소비자 위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충전 인프라 부족과 가격 부담 등 (성장의) 제약 요인이 발생 중인 것으로 (현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다 같이 생산량 조절과 가격 인하 등으로 수요 둔화기를 맞는 데 나선 상황에서 어떻게 유리한 고지를 점하느냐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그룹은 ‘규모의 경제’(생산량 증가로 평균 비용이 줄어 수익성이 강화되는 현상) 면에서 BYD 등 중국 기업이나 테슬라에 뒤처졌기 때문에 보조금의 우위를 갖기 어려운 시장에선 불리할 수밖에 없다”며 “기술 개발과 공장 건설 등의 투자 속도를 해외 기업들처럼 늦추기보다는 지금과 같이 (계획대로) 유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 재조정 여파로 납품의 불안정성이 커진 점은 우려되는 요소”라며 “장기적으로 배터리 자체 생산을 목표로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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