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많은 빈곤층, 줄줄 새는 복지
매슈 데즈먼드 지음
성원 옮김
조문영 해제
아르테
세계 경제 1위 대국인 풍요로운 미국에 의외로 빈곤자들이 많다는 뉴스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렇다고 해도 충격이 가시는 건 아니다.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서 일 것이다.
미국인 18명 중 1명은 ‘지독한 빈곤(deep poverty)’ 속에 살고 있다. 빈곤선 소득 기준의 절반 이하로 살면 지독한 빈곤으로 간주한다. 2020년 기준 빈곤선은 1인 연간 6380달러(약 830만원), 4인 가족의 경우 1만3100달러(약 1700만원)였다. 연방정부의 빈곤선을 기준으로 1970년에는 미국 인구의 12.6%가 가난했고 1990년에는 13.5%, 2010년에는 15.1%, 2019년에는 10.5%가 가난했다. 경기에 따라 약간의 오르락내리락이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 가난은 지속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인은 무려 3000만 명에 이른다.
흔히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해서는 좌·우파가 서로 상대방의 접근 방법이 틀렸다고 논쟁을 벌인다. 그런데 이 책은 편향적 시각이 아니라 가난 타개를 위한 현실적, 실용적 대안을 모색하고 보수, 진보 어느 쪽이든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양 진영 모두 경청할 만한 대목이 많이 나온다. 지은이가 직접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현장의 실상을 파악하고, 사회과학적 연구를 접목한 ‘가난 종식 선언서’다. 철저히 통계와 데이터에 기반한 ‘가난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가난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다양한 데서 찾고 있다. 민주당, 공화당 할 것 없이 그동안의 연방정부 구호예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단순히 복지 규모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배분 과정에서는 줄줄 새는 바가지였다. 2020년 빈곤가정일시부조로 배정된 1달러 가운데 가난한 가정이 직접 받은 돈은 22센트에 불과했다. 복지재정 316억 달러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 수중에 현금 형태로 쥐여 준 금액은 71억 달러뿐이었다. 청소년 사법행정 자금, 금융 문해력 증진, 그 외 빈곤 경감과는 별로 상관없는 각종 활동에도 빈곤가정일시부조 자금이 들어갔다.
산업화된 나라에서 매우 낮은 임금을 주는 곳 중 하나가 미국이다. 노조는 힘을 잃어 가고 많은 기업은 우회적인 고용을 찾는다. 애플 관련 노동자 75만명 중 직접 고용된 사람은 6만3000명 정도일 뿐이다. 오늘날에는 임시직 소개소들이 누가 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이런 현상 때문에 고용과 노동자의 소득은 더욱더 불안정해진다. 노동뿐만 아니라 주택, 금융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불리한 조건으로 더 큰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주자와 싱글 맘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가난을 뿌리 뽑기는 쉽지 않다. 하나의 입법만으로 단칼에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국과 미국의 사회적 상황은 여러모로 다르기도 하다. 그러나 지은이가 이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빈곤 해결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사회도 멍들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치권이 이념적 소모전을 지양하고 냉철하게 대처해야 진정한 빈곤대책이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책은 그 길로 가는 실마리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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