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하고 전세보증금 가압류… ‘노란봉투법’ 있었으면?
자신의 집 보증금 가압류를 확인하던 때를 박재정은 또렷이 기억한다. 2023년 9월1일, 동료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가 우리 집을 가압류한 것 같은데 다들 한번 확인해봐라.” 박재정은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전셋집 온라인 등기를 뗐다. ‘금 4천만원, 채권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주식회사, 채무자 박재정 외 4인.’ 자신의 전셋집 등기서류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가 사측의 해고 결정에 맞선 대가였다.
“‘와, 큰일 났다’ 했죠. 통장 막히는 건 괜찮은데 전세보증금을 가압류한다는 건 저는 처음 들어봤거든요. 1월 초에 지금 집 이사 나가야 하는데 그 돈 없으면 전셋집을 못 구해요. 그 뒤로 잠을 거의 못 잡니다. 새벽에 몇 번씩 깨요. 걱정이 하도 되니까.”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이 11월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파업 노조를 상대로 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손배소)과 가압류에 제동을 거는 법이다. 경제계는 이 법을 ‘악법’이라 부르며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했고 한덕수 국무총리는 “민생과 거리가 먼 법”이라며 비난했다. 실제 소송의 칼날 앞에 서본 노동자들은 달리 말한다. 회사를 상대로 생존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수억원 ‘손배 폭탄’을 맞아야 한다면 그건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11년 일한 회사 하루아침에 잘려서
박재정은 2011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에 입사해 11년을 꼬박 일했다. 한국옵티칼은 엘지(LG)에 엘시디(LCD) 편광필름을 납품하는 일본 닛토덴코그룹 한국 자회사다. 2017년까지 연 매출액은 7천억원에 달했다. “너무 바빠 점심도 못 먹고 과자로 때우며 일할 때도” 박재정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2018년부터 한국옵티칼 매출은 3천억원대로 주저앉았다. 디스플레이 업황이 나빠진 것을 계기로 회사는 2019∼2020년 두 차례 구조조정을 했다. 운 좋게 해고를 비껴간 이들은 잔류했다. 2022년 10월, 구미 공장에 불까지 나자 회사는 청산을 결정했다. 구미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평택공장으로 옮긴 뒤 노동자 전원에게 희망퇴직을 안내했다. 직원 210명 중 193명이 퇴사하고 17명이 남았다. 박재정과 동료들은 ‘평택으로 생활터전을 옮길 테니 평택공장에서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회사가 평택공장에서 새로 뽑는다는 채용 인원에 남은 17명을 포함해달라는 거였다.
회사는 거절했다. “구미 한국옵티칼과 평택 니토옵티칼은 서로 다른 법인이므로 고용 승계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고용승계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싸우기로 했다. 2023년 2월부터 무임금으로 10개월을 노조 사무실에 출근했다. 회사는 이들이 공장 철거를 방해한다며 퇴거불응과 업무방해죄로 형사고소하는 한편, 방해금지 가처분과 철거 지연에 따른 ‘손해액’ 4천만원 가압류를 법원에 신청했다. 8월 말 가압류가 받아들여져 박재정과 동료들의 전세보증금이 묶였다.
“제가 작년부터 핸드폰 요금도 2만원대로 줄이고 노조 사무실 와이파이 쓰고요. 보험도 몇 개 날렸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세까지 압류 받으니까 아내한테 진짜 미안하더라고요.”
사실 회사 쪽이 가압류를 신청할 때 주장한 피해금액은 4천만원이다. 회사는 노조 반대로 노조 사무실 철거가 지연된다며 8월3일(철거 최초 시도일)부터 8월24일(가압류 신청일)까지 약 3주간 8406만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세부 내역을 보면 그 기간의 공장 부지 임대료부터 철거업체 인건비와 통신비, 사무실비에 교통비까지 모두 피해액으로 합산했다. 회사는 이 중 일부인 4천만원부터 가압류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공장 철거 계획서는 아직 심사 중인데…
공장 철거는 시청 허가가 나야 시작할 수 있다. 그 전까진 업체 인건비 등이 필연적으로 지출된다. 구미시청에 따르면 공장 철거(해체) 계획서는 아직 심사 중이다. 허가가 나기 전까지 공장 철거 지연 비용은 노조 사무실 철거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은 가압류 신청서에서 쏙 빠졌다.
회사가 주장한 피해액 4천만원은 가압류 제도를 거쳐 청구액 4억원으로 몸집을 키웠다. 원리는 간단하다. 가압류는 소송이 길어지는 동안 채무자가 재산을 은닉할 가능성 등에 대비해 채권자가 채무자 재산을 미리 보전하는 제도다. 채무자가 여럿이면 누구라도 갚으란 의미로 그들 각각에게 가압류를 걸 수 있다. 한국옵티칼은 이를 십분 활용해 조합원 모두에게 각각 4천만원씩 가압류를 걸었다. 파업으로 손해 봤다는 돈은 4천만원인데 조합원들에게 건 가압류를 다 합하니 4억원이 됐다.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가압류 신청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조합원 한명 한명을 다 공동불법행위자로 봐 가압류하는 건 노사관계의 위계를 생각하면 과도한 면이 있다. 노조 활동은 개개인의 행위라기보단 노동조합이란 단체의 행위다. 특별히 개인의 불법행위가 있는 게 아니라면 손해배상 가압류는 개개인이 아닌 노동조합에 대해서만 하는 것이 맞는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법)가 말했다.
노동법 틀 안에서 노조와 사측으로 만난 관계가 민법 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채무자와 채권자 관계로 바뀌었다.
“우리가 회사에 무슨 손해를 끼쳤습니까. 공장 들어가서 집기 부수고 그랬으면 당연히 손해배상 해야죠. 그냥 노조 사무실로 출근한 것뿐이잖습니까.”
한국옵티칼의 18년차 노동자 최현환이 말했다. 그는 “사측의 일방적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게 더 이해가 안 된다”며 “가압류가 이렇게 쉽게 인정될 줄 몰랐다. 아내가 ‘당신 투쟁해도 괜찮으니 우리 모은 돈에만 피해 안 가게 해달라’고 했는데 내 집이 가압류됐다”고 말했다.
노조 쪽은 아직 부당해고에 관한 법원 판단을 받지도 않고서 노조 사무실부터 철거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다. 2015년 외국투자기업 철수로 정리해고된 하이디스 지회도 법원에서 부당해고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공장이 이미 다 철거된 뒤라 희망퇴직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옵티칼 지회가 텅 빈 공장 터라도 지키려는 이유다.
집기 부순 것도 아니고 그냥 노조 사무실 출근했을 뿐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국회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개정안 제3조를 보면 법원은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경우 조합원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 회사가 파업 등으로 손해를 봤다면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을 상대로 청구하는 것이 맞고, 조합원 모두를 채무자로 묶어 배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파업 등으로 영업에 차질이 생기면 기업이 손해액을 크게 부풀려 조합원 모두에게 배상 책임을 지우곤 했다.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억원 채무를 지게 된 조합원들은 극심한 압박감을 느꼈고 노조가 와해하기도 했다.
김제완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가압류가 들어가더라도 조합원들이 손배액을 전부 책임지진 않을 것”이라며 “회사가 주장하는 금액 중 조합원들이 ‘실제로 한 일’에 대해서만 책임지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옵티칼 사측이 부동산과 전세보증금 가압류를 신청한 노조 조합원은 10명이다. 현재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12명 중 재산이 있는 10명을 가압류 대상으로 삼았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은 이런 일이 더는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저도 손해배상 가압류가 이렇게 쉽게 되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회사가 일방적으로 주장한 걸 가지고, 공탁금만으로 우리 부동산 전체를 잡은 거잖아요. 그동안 앞서간 노동자들이 많은 탄압 속에서 얼마나 불안하게 살아왔을까, 돌아가신 분들도 진짜 압박이 엄청났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걸 막으려고 국회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만들어놨는데 지금 또 (공포가 될지) 두고 봐야 하잖아요.” 최현환이 말했다.
“빨리 이런 법이 통과돼야 저희 같은 약자들이 그나마 보호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동자도 국민이고 같이 살아야 나라가 잘 돌아가는 건데 너무 기업 쪽으로만 법이 기울어진 것 같아요. 지금도 법이 허용돼 있으니까 회사가 굉장히 떳떳한 것처럼 말하거든요. 혹시 대통령님이 그렇게 (거부권 행사)하시면 약자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17년차 노동자 이희은이 보탰다.
한국옵티칼 노동자들에게 2023년 연말은 운명의 시간이다. 노사가 각각 낸 가처분 신청을 기다리고 있어서다. 11월17일엔 회사가 낸 가처분 신청 심문기일이다. 12월1일은 노조가 요청한 가압류 이의 신청 심문기일이다. 회사가 이기면 회사가 주장하는 ‘손해액’이 나날이 불어날 수 있고, 노조가 이기면 가압류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 노조가 원하는 것은 12명으로 줄어든 인원이 평택공장에 고용 승계돼 일하는 것이다.
90억, 158억, 15억, 246억원… 손배소 징벌의 역사
파업한 노조를 기업이 손배소로 ‘징벌’하는 일은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2003년 두산중공업 손배소로 목숨을 끊은 배달호 노동자를 시작으로, 2009년 쌍용자동차노조 조합원과 가족 30여 명이 폭력 진압 트라우마와 손배소 압박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 현대차가 비정규직 노조를 상대로 90억원 손배소를 제기해 인용됐으며,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손배소 압박으로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에서 2012년 또다시 158억원 손배소가 제기돼 노동자 최강서가 숨졌다. 반도체회사 케이이시(KEC) 노조 조합원들이 2016년부터 3년간 임금 30억원을 압류당했으며, 2018년 씨제이대한통운이 택배노조를 상대로 15억원, 2021년 현대제철이 노조와 조합원 641명을 상대로 246억원, 2022년 대우조선과 하이트진로가 각각 하청과 특수고용노조를 상대로 470억원과 27억원 손배소를 냈다.
노란봉투법 공포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종교단체는 11월13일 성명을 내어 “수많은 노동자와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대통령 거부권에 막혀 무산되지 않고 즉시 공포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노란봉투법이란?
☞노사 단체교섭 범위를 기존보다 확장하고 기업이 제기하는 파업 손배소에도 제한을 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기존에는 노사 단체교섭이 한 사업장 안에서만 보장돼 사내 하청 노조나 특수고용직 노조는 실질적인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원청과 교섭하지 못했다. 이들이 10년에 걸쳐 외친 ‘진짜 사장 나와라’라는 구호는 노동조합법 제2조의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법조문 개정으로 현실화됐다. 또한 기존에는 점거 파업 등이 발생하면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개인들까지 채무자로 묶어 수억원대 손배소를 물리는 관행이 지속됐다. 새 법은 손해배상의 주체를 노동조합 단체와 개인으로 분리하고 개인은 직접 한 행위에 대해서만 손해를 배상하도록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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