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택동]현실성도 없고 지켜지지도 않는 ‘김영란법 식사비’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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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자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등지의 식당에는 2만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가 등장했다.
가짓수와 양을 줄인 한정식에 맥주 한 병을 끼워 넣는 식이다.
청탁금지법에 규정된 '식사비 한도 3만 원' 때문에 매상이 줄어들 것을 걱정해 음식점 업주들이 내놓은 고육책이었다.
최소한의 구성으로 세트를 내놓으려 해도 가격을 맞추기 어려운 데다 사실상 이 조항이 사문화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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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밖에 나가서 밥 한번 먹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외식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집계 기준으로 2016년 9월 서울의 냉면 가격은 평균 8077원, 삼겹살 1인분은 1만3154원이었는데 지난달에는 냉면 1만1803원, 삼겹살 1만9253원으로 인상됐다. 서울 도심의 어지간한 식당에서 삼겹살에 반주를 곁들이면 3만 원을 훌쩍 넘고 한우는 엄두도 못 낸다. 그런데 청탁금지법에서 정한 식사비 한도는 7년이 넘도록 3만 원으로 고정돼 있다.
▷이 기준은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을 참고해서 만든 것이다.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3000원이던 시절에 만든 기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16일 “시간과 여건 등을 비춰 봤을 때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 이유다. 이렇다 보니 청탁금지법과 관련해 밥값을 기록하는 경우에는 흔히 참석 인원을 부풀려 1인당 비용을 줄이는 편법을 쓴다. 참석자 중 누군가가 증거를 모아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청탁금지법이 탄생하게 된 계기는 ‘벤츠 여검사’ 사건이었다. 내연 관계인 변호사에게서 벤츠 등을 선물 받고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기소된 여검사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 선고를 받자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대가성 여부와 상관없이 공직자가 금품과 청탁을 받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이 법이다.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대상 범위가 너무 넓어졌고 지키기 어려운 조항이 섞였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청탁금지법이 적용되는 공직자와 교육기관·언론사 종사자는 25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식사비는 물론 경조사비, 선물값까지 규제를 받는다. 경조사비는 한도가 5만 원으로 정해져 있어서 여러 사람 명의로 봉투를 보내는 ‘봉투 쪼개기’가 횡행한다. 선물은 농축수산물이냐, 명절 전후냐에 따라 상한선이 5만 원에서 30만 원까지 제각각이라 품목과 날짜를 따져 가며 보내야 한다. 애매하고 비현실적인 법은 잠재적 범법자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청탁금지법의 기준을 면밀하게 손볼 때가 됐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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